일의 일기

어차피 우승은 인플루언서

꼬우면 니가 하든가

2026.09.30 | 조회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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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빙의해보자. 소비재 회사 마케터가 주인공이다. 굳이 내 이야기는 아니다. 기실 업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달 내내 떠들어도 안 팔리던 물건이 어떤 인플루언서의 피드에 한 번 올라가면 팔린다. 우리가 쓴 상세페이지 수십 줄보다 그 사람의 한마디가 세다. 세상이 원래 이런 거긴 한데, 요즘의 마케팅은 인플루언서다.

 

그때마다 비용의 최종 도착점은 다르다. 언제는 tv, 언제는 매거진. 지금은 인플루언서다. 인플레이션의 시대, 안드로메다로 올라가는 마케팅 비용의 시대에 최종 승자는 인플루언서다.

 

예전에는 왜 그런지 잘 몰랐다. 그냥 유명한 사람이 보여주니 많이 보고, 많이 보니 팔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팔로워가 많다고 꼭 잘 파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조회수만 잘 나오고, 어떤 사람은 규모가 작은데도 기가 막히게 팔았다(고 한다). 해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 진짜 모른다.

 

아마 브랜드가 그들에게 돈을 주고 사는 건 노출만이 아닐 거다. 팔로워 10만 명의 릴스 조회수만 잠깐 빌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몇 년 동안 팬과 쌓은 신뢰를 빌린다. 브랜드가 자기 제품이 좋다고 하면 광고지만, 평소에 보던 사람이 좋다고 하면 추천처럼 들린다. 뭐.. 단순하게 보면 광고선전비인데 조금 더 인문학적 수사를 얹으면 신뢰 자본 임차료라고 해야겠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가 똑똑해졌기 때문이다. 광고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광고를 안 믿는 만큼 인플루언서를 믿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지고 보니 똑똑해진 건지,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정보 탐색 경로에 인플루언서가 떡하고 앉아있으니 브랜드사들은 거기에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광고는 의심하면서 인플루언서의 광고를 보고 산다. 똑똑해진 게 맞나? 모르겠다. 사실 너무 피곤하다.

 

AI는 이 흐름을 더 세게 만들 것 같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이미지도 만들고 영상도 만들고 카피도 쓴다. 예전에는 그럴듯한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도 돈과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점점 딸깍에 가까워진다. 저퀄리티는 평타를 치고 평타는 제법 쌔끈해진다.

 

이렇게 AI 기술 덕에 콘텐츠의 양은 많아지지만, 그만큼 관계 맺기는 어려워진다. 이 형세에 이미 관계가 있는 인플루언서의 힘은 더 커진다. 왜냐고? 신뢰 자본을 얻기가 어려워졌는데, 이미 얻었으니까. 어디든 incumbent의 메리트는 어마무시하다.

 

아무리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집행하는 브랜드사라고 해도, 인플루언서의 힘이 커지면 마냥 해피하진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브랜드사에게 매출 이외에 남는 게 없다. 브랜드사는 제품을 만들고 배송하고 CS까지 하는데, 고객과의 관계는 남의 것이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물건만 만드는 하청업체가 된다.

 

그래서 브랜드도 어느 정도는 인플루언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 대표가 릴스를 찍고 춤을 추라는 얘기는 아니다. 광고비를 끊어도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이걸 만들었는지, 왜 이렇게 파는지, 우리는 뭐를 좋아하는지 계속 말해야 한다. 제품을 팔아서 관계를 만들어야지, 계속 남의 관계를 빌려서만 팔 수는 없다.

 

쓰다 보니 이건 회사만의 얘기도 아닌 것 같다. 나도 AI로 글을 고치고 이미지를 만들고 예전에는 못 하던 것들을 한다. 이제 웬만한 결과물은 누구나 얼추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보고 다시 읽어주는 일은 딸깍으로 안 된다. 나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어야지. 어쩌면 내가 이런 글을 계속 쓰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 모른다.

 

제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맞다. 제품 너무 중요하다. 마케팅이 중요하다? 그것도 맞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마케팅이 구리면 안된다. 동시에 제품이 구리면 마케팅 해도 안 된다. 사실 이런 문장은 다 조건이나 예외가 붙는다 (마치 한국어 맞춤법과 띄어쓰기처럼 예외가 많다). 그런데 인플루언서가 갑이다라는 문장에는 예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좋든싫든 지금 시대에 어차피 우승은 인플루언서다.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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