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편지

[루아네 옹달샘] 당신의 조금 느린 하루를 위해

2026.07.21 | 조회 70 |
0
|

지금 이탈리아는 밤 10시가 넘었어요. 지난주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트레이닝을 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갑자기 움직임이 많아졌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또 새로운 도시에 잠깐 살게 됐어요. 일하는 곳에서 숙식을 제공해줘서 한동안 카타니아와 이 새로운 도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게 됐습니다.

제 숙소 앞 바다 저녁 뷰예요!
제 숙소 앞 바다 저녁 뷰예요!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카타니아에 다녀왔거든요. 당일치기로 다녀온 거라 바쁘게 해야 할 일들을 끝내느라 버스도 타고, 오늘은 만 삼천 보나 걸었어요. 이제 겨우 앉아서 오늘 월요일 편지를 지금에서야 쓰게 됐네요. 다음 주에는 꼭 월요일에 읽으실 수 있도록 잘 준비해볼게요.

오늘도 역시 카타니아에서 버스 타기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 버스를 포기할 뻔했어요. 버스 정류장 앞 전광판에 BRT5 버스가 15분 안에 온다고 쓰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버스를 타려고, 좀 더 걸어야 하는 다른 버스는 보내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스가 20분이 지나도 안 오더라고요. 오후 4시 30분에 기다리던 버스가 5시가 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오늘 온도는 38도였어요. 요즘 시칠리아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어요. 다음 주부터는 조금 가라앉을 듯해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양산 덕분에 30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한국에서 10분 안에 온다던 버스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전광판에 온다던 버스 번호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혹은 집으로 갈 때 타는 시외버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다른 곳을 들렀다가 다시 원래 노선으로 돌아온다면? 한국에서는, 서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민원이 엄청 들어오거나 빠르게 사과 인사 혹은 대처 방안을 마련했을 거예요.

카타니아의 버스는 버스 기사님들의 생체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듯합니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제시간, 제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떤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버스가 운행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12시가 넘어가면 낮잠 혹은 점심시간이 되기 때문에 버스 간격이 커지고요. 또 저녁에는 버스가 조금 늘어나는 듯하지만 주변 교통 상황에 따라 역시나 예측 불가능해집니다. 버스를 여러 번 타다 보면 조금 흐름이 읽히기도 하고, 또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그저 인정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더라고요. 오늘은 아주 간당간당했습니다.

분, 초 단위로 돌아가는 서울의 삶과 완전히 반대죠? 그러다 보면 가끔은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로 가야 할 때는 웬만하면 여유 시간을 30분 이상 잡아놔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뭐 그래도 당장 큰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사실 카타니아 사람들도 버스보다는 차나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녀요.

오늘 혹시 바쁘게 가야 할 곳이 있는데 버스를 놓치셨나요? 혹은 제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신가요?

한숨을 고르고, 충분히 괜찮으실 거라고 말해드리고 싶네요. 조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몰라요. 물론 서울에서는,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만의 리듬과 흐름이 있겠지만, 오늘 하루는 잠깐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보시면 ‘이것 또한 괜찮을지 몰라’ 하는 조금 여유롭고 느린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릴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는 조금 느린 하루가 되시길 바라봅니다.

Ciao ciao!

루아 드림

<이 편지를 쓰는 사람>

첨부 이미지

본명: 다겸

이탈리아: 루아 Rua

요가를 가르치다가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패션 디자인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이탈리아에서 패션 브랜딩을 공부하게 되었고, 지금은 시칠리아 카타니아라는 거주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누군가에게 쉼과 휴식이 되는 옹달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요가인이며, 언젠가 바다가 보이는 따뜻한 도시에서 옷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실과 매주 저녁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큰 식탁과 넓은 거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삶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꾹꾹 채워 살아가고 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루아네 옹달샘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루아네 옹달샘

시칠리아에서 잠시 머무는 마음들을 보냅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