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뭐였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캘린더'라고 답한다.
실무자 시절의 캘린더는 여백의 미가 있었다.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많지 않기도 했고, 면접관으로서 면접에 참여할 일도 없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은 굳이 캘린더에 등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뭘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알았다.
그러나 팀장의 캘린더는 달랐다. 팀장이 되고 나서는 캘린더에서 여백을 찾기 어려웠다. 빈 시간을 회의가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캘린더를 열어보면 30분, 1시간짜리 미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회의 몇 번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한동안은 이게 팀장의 숙명이라 여기고 그냥 받아들였다. 하지만 밀려드는 회의에 끌려다니다 보니, 정작 내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안의 본질에 오히려 소홀해지고 있었다. 회의가 5개 넘어가는 날은 10분 전에 부랴부랴 안건만 훑고 회의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이런 회의는 과정도 결과도 좋을 수 없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회의는 결론은 나지 않고 질의만 오간다. 결론이 안나는 회의는 또 다른 회의를 기약하게 된다. 회의는 넘치는데 팀은 느려져 성과를 내기 힘들어진다.
회의가 낭비되고 있었다. 또 하나 간과했던 건 이러한 회의 시간의 낭비는 비단 팀장 한 사람만의 낭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5명이 참여하는 30분짜리 회의인데,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냈다면 조직의 소중한 150분이 낭비된 셈이다. 팀장이 신경 써서 회의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전환점은 어느 날 캘린더를 쭉 훑어보다 문득 든 생각에서 시작됐다.
'이 회의들, 다 같은 회의가 맞나?'
이름만 '회의'로 뭉뚱그려져 있었을 뿐, 사실 성격도 목적도 완전히 다른 자리들이었다. 그래서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캘린더 속 회의들이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는 걸 알게 됐다.
1. 의사결정 회의
목표를 최종 확정하거나 사업 방향을 정하는, 명확한 결론이 필요한 자리다. 이 회의의 핵심은 '사전 준비'에 있다. 회의실에 들어가서야 처음 자료를 훑어보고 판단을 내리려 하면, 판단력은 떨어지고 잘못된 결론을 내릴 확률만 높아진다.
한동안은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채 의사결정 회의에 들어갔다가, 결론 없이 다음 회의를 기약하며 흩어진 적이 많았다. 그 이후로는 담당자가 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근거를 정리한 '사전 회의록'을 미리 공유하도록 요청했다. 나는 그걸 읽고 들어가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낸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어떤 논의를 거쳐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사후 회의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의사결정 회의는 다른 모든 회의보다 우선순위를 높게 설정했다. 팀의 속도에 직결되면서 의사결정자(팀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회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사결정 회의로 분류된 회의는 사전 회의록을 꼼꼼히 읽고 질문과 피드백을 정리해서 참석했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의사결정 회의가 진짜 '결정'을 만드는 자리가 됐다. 켜켜이 쌓여가는 회의록은 우리 팀이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2. 정보공유 회의
당장 뭔가를 결정하기보다, 사업 현황이나 조직의 학습, 회고를 나누는 자리다. 전사 실적을 공유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월말 팀 회고가 여기에 속한다.
의사결정 회의보다는 긴장을 낮추고, 참여자들이 맥락을 편하게 흡수하는 데 초점을 둔다. 예전 조직에서는 한 달에 두 번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는데, 특별히 대단한 소식이 없어도 사업과 시장 상황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는 것만으로 팀원들의 만족감이 꽤 높았다.
조직 인사이트 공유나 목표 회고 미팅의 경우, 팀원 각자가 배우거나 느낀 점이 자기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발언 시간을 고루 나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참여자로 앉아, 판단하기보다 듣는 데 더 오래 시간을 썼다.
의사결정 회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면, 정보공유 회의는 옆으로 흐른다. 팀원이 회사나 팀의 전체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

3. 브레인스토밍 회의
캐주얼한 비즈니스 토크에 가깝다. '회의'라고 부르기 애매하지만, 의외로 팀원의 생각을 편하게 들을 기회는 흔치 않다. 회의실보다는 점심 식사나 커피챗을 주로 활용한다. 직무 구분 없이 사업과 서비스에 대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던지는 시간이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곧바로 사업이나 기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자유롭게 생각을 던지고 함께 웃는 그 과정 자체가 팀에 활력을 준다. 직무는 달라도 우리는 한 팀, 팀이 달라도 공통된 하나의 서비스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는 걸 인식시켜 준다. 우리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일과 일 사이에 이런 유연한 소통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4. 불필요한 회의
위 세 가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의다. 불필요한 회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처음 만들어진 목적은 흐려진 채, 그저 관성으로 남아 있는 회의라는 것.
실제로 내 일정표를 이 기준으로 분류해 봤을 때, 놀랍게도 이런 회의가 열에 두 개나 됐다. 당장 없애도 업무에 지장이 없는 일정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정리했다.
1~3번에 해당하는 회의라도 내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건은 서면 공유로 바꿨다. 불필요한 회의만 걷어내도, 팀장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이 눈에 띄게 확보됐다.
지금 매일같이 밀려드는 회의에 치여 허덕이고 있다면, 또는 회의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회의에 끌려다니는 것 같다면. 우선 이번 주 캘린더를 열어 회의 하나하나를 이 네 가지로 분류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각 회의가 원래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아마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아도 되거나, 인원을 줄여도 되거나, 회의 자체를 없애도 괜찮은 회의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팀장의 실력은 회의 자리에서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애초에 그 회의를 왜 여는지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들어가느냐에서 갈린다.
팀장의 회의 관리는 실무자일 때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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