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시절, 가장 고민되고 시행착오도 많았던 부분이 바로 위임이었다. 아직 이른 것 같다는 생각에 적절한 위임 타이밍을 놓쳐보기도 했고, 기준 없이 섣불리 위임했다가 팀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위임은 팀장이 꾸준히 관찰하고 연구하고 시도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위임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팀장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고, 성공적인 위임을 통해 팀장이 얻게 되는 실익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위임을 고민한다는 건 '팀에 필요한 일'을 '누가' 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래서 팀장은 지금 팀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팀원의 관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누가 그 일의 적임자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과 사람을 동시에, 그것도 입체적으로 봐야 하는 셈이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 수고로움은 단지 비용이 아니다. 투자다. 이렇게 위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팀장은 팀을 더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관찰을 통해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팀원의 잠재 역량을 발견하기도 하고, 면담을 통해 팀원의 숨은 동기를 알아내기도 한다.
또한 이 일이 위임까지 고민할 만큼 정말로 우리 팀에서 중요한 일인지, 남에게 위임할 수 있을 정도로 목표와 기대성과가 분명하게 정의되었는지를 이참에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팀을 한 층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팀장도 한 단계 성장한다.
성공적인 위임 이후에도 팀장은 또 한 번 성장한다. 위임을 통해 확보된 시간은 팀장이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팀장이 마케팅 광고 기획에 직접 참여해 효율을 끌어올렸다고 하자. 이것도 분명 팀 성과에 기여하는 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 일은 팀원에게 위임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반면 근본적인 마케팅 전략을 다시 짜는 일, 우리 팀에 없는 역량을 가진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팀장이 아니면 손대기 어렵다. 위임으로 번 시간은 바로 이런 문제를 더 깊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데 쓰여야 한다.
나아가 대표나 상위 리더와의 접점을 늘려가며 전사 차원에서 우리 팀이 더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탐색해 볼 수도 있다. 팀장이 능동적인 팀원을 좋아하듯, 대표도 먼저 움직이는 팀장을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팀장의 시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현재 위치의 고민이 아니라 한 단계 위의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상위 리더나 임원의 문도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이긴 하지만) 위임은 팀장의 가장 큰 보람된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팀원의 성장이 눈에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던 일만 계속하는 팀원은 연차가 쌓여도 스스로 달라졌다는 걸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그 팀원이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 기대 이상으로 잘 수행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성장했구나 하는 게 확 와닿는다. 그럴 때 리더로서 뿌듯하고 보람되다.
그리고 동시에 위기감이 찾아온다. 내가 둔해서 위임을 안 했다면 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겠구나. 지금도 기회만 주면 달라질 팀원이 더 있는 건 아닐까.
반면 위임하지 않는 팀장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번아웃이다.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모든 결과물을 직접 검토하고, 팀원이 놓친 부분까지 본인이 메꾸다 보면 어느새 팀장의 하루는 팀원의 일로 가득 찬다. 정작 팀장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손도 못 대는 채로.
팀장은 선수가 아니라 코치이자 감독이다. 그런데 위임하지 못하는 팀장은 스스로 그라운드에 뛰어든다. 코치가 직접 공을 차기 시작하면, 정작 경기 전체를 봐야 할 사람이 없어진다.
나 역시 위임을 미루던 시기엔 매일 야근이 당연했다. 회의와 검토, 그리고 팀원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까지 떠안다 보니 다음 분기 전략을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몸은 바빴지만 팀도, 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팀장 본인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위임을 고민하고 시도해야 한다. 위임은 팀원의 성장 기회이자, 동시에 팀장이 소진되지 않고 이 역할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놓아야 팀도 크고, 나도 크고, 무엇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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