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리더인가, 팀의 병목인가?
스타트업 팀장의 낮은 보통 이렇게 흘러간다. 출근하자마자 밀려드는 팀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끝없는 유관 부서 회의를 다니느라 정작 '내 업무'는 손도 대지 못한다.
오후 6시, 팀원들이 퇴근하며 슬랙으로 결과물을 넘기기 시작한다. 그제야 팀장의 진짜 출근이 시작된다.
결과물을 열어본 당신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 피드백 주고 다시 시키느니... 그냥 내가 붙잡고 20분만 수정하면 끝날 일인데.'
결국 팀장이 밤새 팀원들의 기획서를 대신 '하드캐리'하며 싹 고쳐놓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무자 시절 에이스 소리를 듣던 팀장일수록 위임을 못 하고 스스로 번아웃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당신이 실무를 붙잡고 밤을 새우는 동안, 팀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고민할 사람은 누구인가?
팀장님이 다 고칠 거면, 전 왜 기획하나요?
마케팅 팀장 시절의 일이다. 한 퍼포먼스 마케터가 밤새 고민해 온 광고 기획서를 가져왔다. 쭉 읽어보니 30%가 아쉬웠다. 카피의 톤앤매너나 타겟팅 설정이 내 마음에 완벽히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스쳤다.
• A 선택지: 어디가 아쉬운지 설명하고, 가이드를 주고, 팀원이 다시 수정해 오도록 기다린 뒤 재컨펌하기.
• B 선택지: (귀찮고 시간도 없으니) "오, 좋은데요? 고생하셨어요"라고 칭찬한 뒤, 팀원 퇴근하고 내가 조용히 기획서를 켜서 내 마음에 들게 고쳐서 라이브 하기.
당시의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B)를 선택했다.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있었고, 팀원에게 상처 주지 않고 칭찬도 해줬으니 '좋은 리더' 코스프레를 한 셈이다. 게다가 내 손을 거쳐 광고 효율도 나쁘지 않게 나왔으니 다 좋다고 믿었다.
진실을 마주한 것은 연말 상향평가 때였다. 그 팀원이 남긴 피드백엔 뼈를 때리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팀장님은 칭찬을 자주 해주시지만, 정작 제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피드백은 주지 않으십니다. 매번 제가 낸 기획안이 최종 결과물에서는 은근슬쩍 바뀌어 있어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 딴에는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팀원에게는 '성장 기회의 박탈'이자 '무력감의 원인'이었다. 정답을 내가 다 가로채 가니 팀원은 더 이상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정작 리더가 해야 할 팀의 로드맵 구상, 타 부서 조율 같은 진짜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지 못했다.
팀 성장의 가장 큰 '병목'이 바로 나였음을 깨달았다.
‘내 기준의 100점’을 버려야 팀이 산다
상향 피드백 이후, 나는 정답을 직접 주는 것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물론 처음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안 주시고 왜 자꾸 수수께끼를 내시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팀원들도 있었다. 그래서 의도를 먼저 투명하게 공유했다. "내가 정답도 아니고, 답을 맞히라고 시험하는 게 아니라, 팀의 생각을 더 확장하고 싶어서 그렇다."라고 말이다.
위임은 일을 무책임하게 던져버리는 방임이 아니다. 핵심은 '70점의 법칙'에 있다. 팀원이 해온 결과물이 내 마음에 70%만 차더라도, 남은 30%를 내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80점, 90점으로 올릴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해결사'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코치'다.
기획서가 마음에 안 들 때 "이거 별론데요" 대신, 팀원의 뇌를 깨우고 주도권을 넘겨주는 상황별 질문이다.
신뢰와 오너십을 키우는 단계별 위임법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정립한 나만의 위임 프로세스는 '팀원의 역량과 신뢰자산의 크기'에 따라 영역을 차등 확장하는 것이었다.
1단계 : 신규 입사자를 위한 제한적 마이크로 매니징
70점의 법칙이 좋다고 해서, 스타트업에 갓 들어온 신규 입사자나 주니어에게 무턱대고 위임하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방임이 된다. 업무 맥락을 전혀 모를 때는 'How(방법)'도 구체적으로 가이드해야 한다. 초반에는 업무 프로세스를 디테일하게 가이드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팀원이 '피드백 수용력'이 좋은지, '납기일(Dead-line)'을 잘 지키는지 행동 데이터를 검증한다. 이 데이터가 쌓여 신뢰자산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간섭을 줄이고 위임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2단계 : 방향성과 데드라인 중심의 초안 얼라인
신규 입사자를 벗어난 팀원에게 업무를 위임할 때에는 '어떻게(How)'의 비중을 줄이고 '왜(Why)'와 '무엇(What)'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 일의 시작과 끝에만 나타나서 확인하면 위임이 아닌 방임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 그래서 중간 점검대(마일스톤)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구두 소통 대신 아래의 포맷으로 지라, 아사나, 슬랙과 같은 협업 툴을 활용해 소통하는 것을 권장한다.
3단계 : 역할 확대를 통한 오너십 부여 (파트리더 제도)
1, 2단계를 통해 특정 영역에서 신뢰가 완전히 쌓였고, 그 팀원이 더 큰 성장을 원할 때는 '파트리더' 같은 명확한 타이틀과 권한을 부여했다.
- 당사자 효과: 자신이 이 영역의 진짜 주인이라는 자부심이 생겨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 조직적 효과: 다른 동료들에게 "우리 조직은 저 사람처럼 일하면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구나"라는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어 팀 전체의 일하는 기준이 상향 평준화된다.
- 주의사항: 파트리더를 세울 때는 단순히 책임만 넘겨서는 결코 안 된다. 반드시 '명확한 권한의 범위(R&R)'와 그에 걸맞은 '합당한 인정(Title 혹은 보상 체계)'이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건 그대로고 책임만 많아졌다"는 부작용이 반드시 터진다.
위임도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위임이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팀원 눈에 보이지 않는 허점이 팀장의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허점이라면 즉시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경우가 아니라면, 당장의 불안 때문에 위임을 미루는 행동은 최악의 악순환을 부른다. 팀장의 일은 끝없이 많아지고, 팀원은 스스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몰라 팀 전체의 퍼포먼스가 정체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면, 불안을 딛고 위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실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를 반추 삼아 다음 위임의 성공 확률을 높인다면, 그것이 바로 팀장과 팀이 함께 성장하는 계기다. 성공적인 위임을 통해 팀원과 리더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위임의 선순환이 반복된다.
리더십이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도록 만드는 예술이다. 당신이 실무를 붙잡고 있는 동안, 조직의 거시적인 미래를 고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팀장이 실무에서 손을 떼고 잠시 외로워질 때, 비로소 팀원들이 성장하고 팀은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때로는 과감히 마우스에서 손을 떼어보자. 진정한 팀장은 팀원이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멋진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