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님은 지치거나 권태로울 때 어떤 방법으로 기분을 환기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새롭고 낯선 장소에 방문하거나 안 다녀본 길을 걷곤 한답니다. 나를 아는 사람 없는 곳이 주는 자유로움과 새로운 세계를 오감으로 만끽하다 보면 사회로부터 받던 압박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더라고요. 오늘은 영화 <여행과 나날>을 통해 로드무비라는 장르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 <여행과 나날> 중에서
각본가인 주인공 '이'는 작업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자 존경하던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도망치듯 설국의 작은 마을로 떠납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나온 터라 마땅한 숙소를 구하지 못하던 차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아주 오래된 산속 여관에 묵게 된 '이'. 무뚝뚝하고 사연이 있는 듯한 여관 주인 '벤조'의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며 밤을 보내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머리를 식히며 작업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어내지 못한 '이'는 딱히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내다 벤조를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큼지막한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지는 밤, 꿈같은 이야기를 경험하곤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라며 웃어 보입니다. 과연 그녀의 평범한 여행은 어떻게 특별한 나날이 될까요?

이렇게 주인공이 길 위에서 겪는 여정을 담은 영화를 로드무비라고 하는데요. 문학, 예술, 철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 평가받는 '오디세이아'처럼 주인공의 여정을 그려내는 플롯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사랑받아온 장르입니다. 여정 속에서 겪는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감동과 교훈을 얻고, 다양한 사건과 장소를 간접경험하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거든요.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작품'으로 자주 추천되는 영화 <그린 북>, <반지의 제왕> 시리즈,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모험담의 경우 목적지로의 이동이라는 유사한 구조 속에서 여정의 목표 혹은 목적지가 작품의 주제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 로드무비는 여정 속에서 겪는 사건과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 얻은 깨달음 혹은 교훈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아주 오래전 고대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평생 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해요. 간혹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거나 온천 요양, 신전에 방문하는 등 특정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쟁으로 인해 동서의 문화를 교류하게 된 중세에 이르러서는 성지를 순례하는 종교 관광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후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개인의 소득 증대로 여가시간이 생기며 관광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travel은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현대의 쉼, 힐링의 이미지를 가진 여행과는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19세기 기차의 탄생과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달로 고행에서 여가로 여행의 의미가 변화한 거예요.

현대에는 관광여행뿐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이동 수단과 숙소, 식사와 방식까지 결정하는 자유여행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적인 경험을 추구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 플랫폼이나 '한 달 살이' 등 낯선 장소에서 일상적인 경험을 하기 원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국내 여행보다 해외로 나가기를 원하는 걸까요?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의 폭발과 국내 저가 항공사의 해외 노선 확장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의 회복을 넘어 올해 연간 여행객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야놀자 리서치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경험 측면의 요인으로 '해외여행이 더 강한 일상탈출의 느낌'이라고 답한 응답자 수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 야놀자 리서치 인사이트 vol.32 [그림 4]](https://cdn.maily.so/du/leadnight.official/202512/1765904346096885.png)
반면 국내 여행이 제공하는 경험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 대비 만족감이 낮다는 인식이 있다고 해요. 비싼 여행 물가도 문제지만 기꺼이 소비하고 싶은 경험적 가치를 발굴해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단순히 국내 관광산업의 위기를 넘어 막대한 외화 유출을 어떻게 내수 소비로 유도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과 다양한 개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홍석원, 장수청, 최규완(2025), 해외여행의 동기와 국내여행 재도약 방안: 한국인의 여행 심리를 중심으로, Yanolja Research Insights, Vol.32."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K-콘텐츠가 해외 매체의 주목을 받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건 또 다른 이야기죠.
타임지는 케데헌을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낸 작품”으로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싱어롱 상영회가 연일 매진됐고,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 관객들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극장에 몰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타임은 케데헌이 K-팝, 아이돌 문화, 팬덤이라는 요소를 별도의 설명 없이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한국적인 설정이나 맥락을 굳이 풀어내지 않아도, 글로벌 관객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 매체는 “2013년 〈겨울왕국〉 이후 이렇게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든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하며, 케데헌의 확장성을 짚었습니다.
케데헌이 타임지 표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제 K-콘텐츠의 성과를 단순한 흥행 수치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음악과 팬 참여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말이죠!


국가유산청과 ‘쿠키런’이 손을 잡고 특별전을 선보였는데요, 제목은 <쿠키런: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아서>. 대한제국 시기 외교 공간으로 쓰였던 덕수궁 돈덕전을 배경으로 쿠키런의 쿠키들이 잃어버린 국가유산을 찾아 나서는 설정입니다.
전시는 쿠키들의 여정을 따라 공간을 이동하는 구조입니다. 돈덕전 내부에는 대한제국 황실 유물과 함께, ‘사라진 유산’을 쿠키런 세계관으로 재해석한 대형 일러스트와 미디어 아트가 곳곳에 배치돼 있어요. 실제 유물 옆에 캐릭터가 등장하는 연출 덕분에, 역사 전시 특유의 거리감도 덜하다는 평이 있습니다.
익숙한 쿠키런 캐릭터들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도슨트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고, 어느 순간 전시를 ‘보고 있다’기보다는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기분에 가까워집니다. 익숙한 게임 캐릭터 덕분에 전통과 역사 이야기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공부하듯 보는 전시라기보다는, 잘 만든 세계관 하나를 천천히 산책하는 느낌이랄까요?
<쿠키런: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아서>는 12월 9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진행됩니다. 국가유산을 설명하지 않고,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전시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떠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
- 에디터 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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