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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싫어 이런 삶 새장 속의 새처럼

[229th night] 뮤지컬 <엘리자벳>

2026.11.04 | 조회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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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나잇
229th Night 🌙
229th N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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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뮤지컬 <엘리자벳>이 이번 달 15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4년 전 <엘리자벳>을 처음 관람했던 에디터 리지도 이번 공연 소식을 듣고 빠르게 공연장을 다녀왔는데요! 에디터 리지는 <엘리자벳>을 볼 때마다 주인공 '엘리자벳'이 백성들에게 좋은 황후였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삶에는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뮤지컬 속 엘리자벳은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번 레터에서는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이자 오스트리아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이하 엘리자베트)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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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L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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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살아온 엘리자벳은 어느 날 외줄을 타다 떨어지는 사고를 겪으며 ‘죽음’과 마주하게 돼요. 엘리자벳을 사랑하게 된 죽음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고, 이후 그녀의 일생 동안 그 곁을 맴돌게 되죠. 한편,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또한 사냥터에서 만난 엘리자벳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그는 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벳을 자신의 황후로 선택하는데요. 엘리자벳의 비극적인 삶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의인화했다는 점이에요. 황후가 된 엘리자벳은 엄격한 황실의 규율에 얽매이며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잃게 됩니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잃는 비극을 겪으며 점차 깊은 고통에 빠져요. 그런 그녀의 곁을 맴돌던 죽음은 자신만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며 끊임없이 엘리자벳을 유혹합니다. 그렇다면 평생 자유를 갈망했지만 죽어서야 자유를 얻은 엘리자벳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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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실제 모델인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는 1837년 바이에른의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루도비카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뮤지컬 속에서 엘리자벳을 부르는 애칭인 ‘씨씨’ 역시 실제 그녀가 사용했던 애칭이었죠. 바이에른 국왕의 외손녀였던 엘리자베트는 귀족 가문의 자녀였지만,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아버지의 영향으로 엄격한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성장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수영과 승마, 체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자유분방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언니 헬레네와 엘리자베트 ⓒ 위키백과
언니 헬레네와 엘리자베트 ⓒ 위키백과

시간이 흘러 1853년, 소피 대공비는 자신의 아들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신붓감으로 자신의 조카이자 엘리자베트의 언니 ‘헬레네’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프란츠 요제프가 헬레네가 아닌, 언니를 따라온 엘리자베트에게 반한 것이죠. 결국 프란츠 요제프는 어머니의 뜻과 달리 엘리자베트에게 청혼했고, 1년 후 엘리자베트는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 EMK뮤지컬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emk_musical
ⓒ EMK뮤지컬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 @emk_musical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살아온 엘리자베트에게 엄격한 규율과 예법으로 가득한 황궁 생활은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특히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와의 갈등이 깊었죠. 결혼 후 엘리자베트는 두 딸을 낳았지만, 소피 대공비는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양육을 직접 맡았습니다. 그러던 중 1857년, 엘리자베트의 헝가리 방문 중 첫째 딸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벌어졌어요. 이 사건으로 엘리자베트는 어머니로서의 자질마저 의심받게 되었죠. 이후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태어났지만, 소피 대공비가 그의 양육까지 맡으면서 엘리자베트는 또다시 자녀를 직접 키울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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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황태자를 출산한 이후, 우울감과 식욕 부진, 소화불량, 구토, 불면증 등 여러 건강 문제를 이유로 황궁을 떠난 엘리자베트는 장기간 해외에 머물며 요양과 여행을 이어갔어요. 하지만 오랜 여행에도 그녀의 우울감과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간혹 황궁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자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남짓에 불과했고 아이들은 다시 소피 대공비의 곁으로 돌아갔죠. 이처럼 황궁에서조차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엘리자베트의 소외감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이후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소피 대공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엘리자베트는 황궁에 정착하지 않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방랑 생활을 이어갔어요. 이러한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황후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누리면서도 정작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외면했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당대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유명했지만, 그만큼 외모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어요. 1859년 이탈리아 전쟁 발발 후 황제가 이탈리아로 떠나자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외모관리에 집중했습니다. 172cm의 큰 키에 가느다란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치약처럼 짜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코르셋을 단단히 조이고, 다이어트를 일상적으로 실천했다고 해요.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꾸는 데에도 매일 약 3시간을 들일 만큼 외모 관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죠. 이뿐만 아니라 우유로 전신 목욕을 하거나 와인 마사지, 고기 팩 등 다양한 미용법을 시도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 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도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엘리자베트는 30대 이후 새로운 초상화를 제작하거나 사진을 촬영하는 것조차 꺼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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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아버지의 별세를 시작으로, 엘리자베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1898년까지 약 10년 동안 연이어 소중한 가족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어요. 아들 루돌프 황태자를 떠나보낸 데 이어 언니 헬레네와 어머니 루도비카, 여동생 소피 샬롯마저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특히 엘리자베트와 프란츠 요제프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루돌프 황태자는 30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개혁적인 자유주의 성향을 지녔던 루돌프는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아버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어요. 결국 정치에서 점차 멀어진 그는 술과 여성 편력에 빠졌고, 매독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궁전에서 오래 지내지 않는 엘리자베트는 아들을 지지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요. 게다가 아들의 정략결혼을 반대하며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아 루돌프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죠. 이후 루돌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깊은 슬픔에 빠진 엘리자베트는 검은색 상복만을 고집하며, 소수의 수행원만을 대동한 채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루돌프 황태자가 세상을 떠난 지 9년 후, 엘리자베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탈리아 출신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의 습격을 받았어요. 당시 루케니는 칼로 엘리자베트를 찔렀지만, 평소 단단히 조여 입던 코르셋 탓에 그녀는 부상의 심각성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엘리자베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지의 호텔에서 만 60세의 나이로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어요.  

ⓒ 리드나잇 자체제작
ⓒ 리드나잇 자체제작

당대 여성으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은 살 수 없었던 엘리자베트. 평생 자유를 갈망하며 황궁 밖을 떠돌았던 그녀에게 진정한 행복은 끝내 닿을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몰라요. 뮤지컬 <엘리자벳>의 대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처럼,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의 황후도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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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닌텐도 
  ⓒ 닌텐도 

구글에 '젤다의 전설'을 검색해 보셨나요? 결과 화면 오른쪽 아래에 마스터 소드가 보이는데요, 눌러 보면 링크의 외침과 함께 화면이 1998년의 구글로 돌아갑니다. 느낌표 달린 옛 로고와 파란 링크만 늘어선 단출한 화면이에요. 1998년은 구글이 설립된 해이자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처음 나온 해거든요.

그 <시간의 오카리나>가 28년 만에 풀 리메이크로 돌아옵니다. 11월 5일(목) 닌텐도 스위치 2로 발매돼요. 소년과 청년 시절을 오가며 하이랄을 누비는 이야기로, 지금의 3D 젤다에서 당연하게 쓰는 ‘Z 주목' 조작이 처음 등장한 작품이기도 하죠.

닌텐도 개발자 인터뷰에는 재미있는 비하인드도 담겼어요. 원작 개발 당시 최종 보스전 음악이 너무 밝아서 조심스럽게 얘기했더니, 작곡가 콘도 코지가 다음 날 바로 지금의 곡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워프 포인트를 넣어 봤다가, 길 위에서 멈춰 서며 얻는 발견을 놓치게 된다며 결국 전부 뺐다고 해요.

겉모습은 새로워져도 경험은 그대로 지킨 이번 작품, 28년 전 하이랄을 기억하는 분도 처음 가 보는 분도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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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시네마  
  ⓒ 롯데시네마  

13년, 정말 길었죠. 2013년 <극장판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신편] 반역의 이야기> 이후 소식이 끊겼던 '마마마'의 신작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극장판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발푸르기스의 회천>이 11월 4일(수) 국내 개봉했어요. 일본에서는 이미 누적 관객 150만 명을 넘긴 화제작입니다.

이번 작품은 <반역의 이야기>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바로 이어지는 정통 속편이에요. 마도카를 향한 마음 때문에 악마가 된 아케미 호무라,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세계에 다시 내려선 마법소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신보 아키유키 감독, 각본가 우로부치 겐, 캐릭터 원안의 아오키 우메까지 시리즈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다시 뭉쳤고, 제작도 원작을 만든 샤프트가 맡았어요.

일본에서 먼저 보고 온 관람평에 따르면 상영 내내 눈과 귀가 즐거운 고퀄리티 작화와 음향이 돋보인다고 해요. 다만 이야기가 완결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가까워서,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습니다. 끝을 기대하기보다 다음 장의 문을 연다는 마음으로 보면 좋겠어요.

국내에서는 롯데시네마 단독으로 2D, MS4D, 광음시네마 포맷 상영 중입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마도카의 세계, 이번 주말 극장에서 만나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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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플러스에서 리뉴얼 전 뮤지컬 <엘리자벳>을 볼 수 있어요!

- 에디터 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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