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자 밖으로

증명하는 삶에서 접촉하는 삶으로

2026.03.22 | 조회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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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함선은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Generated by Gemini

나는 탁구를 즐긴다. 빠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공이 오는 방향, 회전, 속도 — 그것을 온몸으로 읽는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지금 이 공, 이 순간만 있다. 그래서 탁구는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연습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연습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했다. 나 자신 안에서.

나보다 점수가 조금 높은 상대와 2대 2까지 갔다. 마지막 세트는 듀스까지. 결국 졌다. 다음 게임 상대는 나보다 점수가 낮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몸이 이미 풀려 있었다. 나를 증명할 기회를 이미 놓쳤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 느낌이 나를 지금에서 끌어냈다. 눈앞의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뭔지 모를 좌절이 남아 있었다. 나중에야 보였다. 좌절의 무게는 패배 자체가 아니라, 패배가 건드린 어떤 오래된 질문에서 왔다.

나는 충분한가. 그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녹화되는 삶

그 구조는 탁구장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머릿속 어딘가에 항상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말은 괜찮은가. 이 행동은 적절한가. 이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는가.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떼기 어려운 것도, 모임을 준비할 때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탁구에서 이기지 못하면 힘이 빠지는 것도 — 같은 구조였다. 살아있음이 흘러야 할 자리마다 검열이 먼저 들어서 있었다.

티머시 골웨이(Timothy Gallwey)는 '이너 게임(The Inner Game of Tennis)'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실제로 해내는 것은 잠재력에서 방해를 뺀 것이다.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능력이 내면의 간섭에 막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막힘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 만든 이미지와 나 자신을 동일시했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단순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죄책감을 도구로 사용했고, 죄책감이 올라오면 그것을 내 도덕성의 증거로 삼아 안심했다.

 

작은 상자 안의 안전

돈을 많이 받으면 안 된다. 성지순례는 괜찮지만 그냥 놀러가는 여행은 부적절하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눈에 띄지 않게, 작게 살아야 안전하다.

한국에 갈 계획이 생겼을 때, 아내와 딸이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딸은 이미 우리를 위해 모아놓은 돈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예스를 하지 못했다.

우리가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것을 누군가 알면 어떻게 볼까. 그 두려움이 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 있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이미 저 멀리 — 남들의 시선 안에 가 있었다. 이것이 끝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 눈길 속에 살고 있으면, 지금 눈앞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태풍이 무서워 항구에 묶여 있는 거대한 함선. 함선은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룩함은 관계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이 내 깨끗함에 관심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내 진실함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닐까.

거룩함은 깨끗함의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상태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딸이 모아놓은 돈으로 제주도 여행을 기쁘게 받아들일 때 — 그 순간에도 '하나님, 이것도 당신의 선물이군요'라고 연결되어 있다면, 그 순간은 이미 거룩한 순간이다. 반대로 아무리 흠 없이 살아도 그 삶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이미지 관리일 뿐이다.

나우웬(Henri Nouwen)은 말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완벽하게 수리된 마음이 아니라 상한 마음이라고. 하나님,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이것도 당신 앞에 내어놓습니다. 이 고백이, 흠 없는 침묵보다 더 거룩한 예배일 수 있다.

탁구에서도, 기도에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깊이 듣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망쳤다'는 말에는 정보가 없다. '공이 길게 나갔다'에는 배움이 있다. 하나는 나를 닫고, 하나는 나를 연다.

 

피가 흐르는 선장

그런데 내려놓는다는 것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멍에는 혼자 메는 것이 아니다. 함께 메는 것이다. 주님을 의식하는 순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 느슨한 틈에서 다른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나보다 더 깊은 곳에서 오는 것, 사랑에 잇대어 움직이는 것. 함께 탁구를 치는 법. 함께 글을 쓰는 법. 함께 사람들을 안내하는 법. 그것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 흠 없는 박제가 되고 싶지 않다. 피가 흐르고, 가끔은 흔들리기도 하고, 듀스 끝에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 결국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 생명력 있는 삶은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다. 두려움이 올라올 때 그것을 알아차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삶이다.

나는 사람들의 평판을 지키며 살고 싶지 않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 그 중심이 잡히는 자리에서, 작은 상자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 안에 살고 있는가.

그 시선을 거두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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