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

일상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2025.09.27 | 조회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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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침묵 속에서 발견한 진리

하나님은 하늘 위에만 또는 나의 마음 속에만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내가 매일 마주하는 모든 물질 속에, 모든 관계 속에, 심지어 가장 고통스러운 갈등 속에도 계신다. 어제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책을 다시 읽다가, 이 깨달음이 새롭게 마음 깊이 새겨졌다.

그가 말한 대로, 물질과 영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나의 일상—그 모든 작은 실패들과 좌절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기쁨들—이 모두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소의 은총 - 실패가 주는 가르침

나의 에고가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힘을 잃고 작아져서 상황을 내 뜻대로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더 이상 받지 못할 때이다. 내가 존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재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 때, 좌절과 슬픔과 분노가 올라온다. 이런 무력함과 작아짐을 나는 오랫동안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샤르댕의 "축소의 수동성" 개념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내가 작아질 때, 실패할 때,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알아주지 않을 때, 질병이 들 때, 죽음을 맞이할 때—이 모든 diminishment의 경험들이야말로 하나님이 나를 더욱 온전하게 빚으시는 거룩한 도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자칫 운명론적 체념이나 수동적 포기로 오해될 수 있다. 하지만 샤르댕이 말하는 축소의 수동성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진정한 신뢰이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냥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한 후에 하나님의 더 큰 뜻에 자신을 맡기는 성숙한 영성이다.

이런 순간에 센터링 침묵기도는 파도 치는 바다 속에 닻을 내리는 것과 같다. 파도는 여전히 치지만, 나는 더 이상 표류하지 않는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가장 연약한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붙들려 있고 지탱받고 있다는 것을.

“고요는 파도가 없는 데서가 아니라, 닻이 단단히 내려진 그 자리에서 찾아온다.” generated by Perplexity
“고요는 파도가 없는 데서가 아니라, 닻이 단단히 내려진 그 자리에서 찾아온다.” generated by Perplexity

렉시오 디비나의 확장 - 삶을 읽는 법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렉시오 디비나는 내 영성생활의 중요한 축이다. 나는 일상 또한 그 자체가 하나님의 두 번째 성경임을 깨닫는다. 매일의 사건들, 만나는 사람들, 예상치 못한 상황들 모두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다.

고대 수도자들은 양피지에 새겨진 글자들을 정성스럽게 읽어내는 동시에,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애썼다. 그들에게는 성경 텍스트와 삶의 텍스트가 하나로 어우러진 거대한 렉시오 디비나였던 것이다. 나 역시 이 두 개의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고 들으려고 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센터링 침묵기도나 환영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고요히 한 후, 그 고요함 속에서 현실을 직면한다. 도망가지 않고 서 있을 때, 그 사건과 갈등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를 삶(Life) 자체로 확장하는 것이다—성경의 글자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순간을 거룩한 텍스트로 읽어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을 듣는 것이다.

권력과 무력함의 역설적 가르침

내가 한국에서 목회자로 살 때, 나는 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권력 속에서 나는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폭력적이었는지 모른다.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남성으로서, 교회에서는 목회자로서, 나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생명을 살릴수도 있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는지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소수자가 되었을 때, 언어와 문화와 인종으로 인해 힘없는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나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주는지, 또한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진정으로 한 영혼으로 존중받지 못할 때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반대로 작은 인정과 따뜻함이 얼마나 큰 희망을 줄 수 있는지. 마치 계단을 내려와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설적 은총이다. 나의 무력함이 나에게 새로운 인식론적 특권을 주었다. 이제 내 안에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힘이 있을 때의 찰리(Charlie Kirk)와 같은 모습—자신의 신념에 확신하며 반대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사람. 그리고 힘이 없을 때의 타일러(Tyler Robinson)와 같은 모습—억압받고 무시당할 때 폭력적 충동을 느끼며 상황을 강제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

나 안의 찰리, 나 안의 타일러

미국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가 22세 청년 타일러 로빈슨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접하면서 묵상할 때, 나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했다. 내 안에 찰리도 있고 타일러도 있다는 것이다.

찰리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특정 집단들—성소수자,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언어를 사용했다. 선한 의도였지만 그 말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타일러는 그런 혐오에 지친 나머지 "그의 증오는 협상할 수 없다"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내가 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나는 찰리처럼 내 신념의 옳음을 확신하며 반대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던졌다. 내가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그 말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동시에 내가 무력한 위치에 있을 때, 나는 타일러처럼 그 상황을 강제로라도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사람을 없애거나 상황을 뒤집고 싶은 폭력적 마음이 솟구쳤다.

이런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진정한 영적 성장의 시작이다. 그래야만 어떤 위치에서든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랑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설교자의 겸손 - 하나님 말씀의 협력자

이런 권력과 무력함의 역동은 교회 안에서도, 심지어 설교자의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 한 목회자가 영성지도를 위해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설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장로님 때문에 화가 난다고 했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야 한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미묘한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제단 앞에서 향을 피우며 자신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내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반대 의견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

진정한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의 소유자가 아니라 협력자다.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처럼, 성령의 선율에 자신의 목소리를 맞춰가는 사람이다. 그분의 음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열어놓을 때, 내가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려는 에고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진정한 협력 관계 속에서 온전한 나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삼중적 현존 - 분열된 자아의 통합

내 안의 이런 모순과 분열, 찰리와 타일러 같은 극단적 모습들을 마주하고 나니, 어떻게 이를 통합할 수 있을까 하는 중요한 질문이 일어났다. 그때 깨달은 것이 하나님의 현존을 세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이었다:

  • 나의 존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 내 안의 모든 모순과 어둠까지도 품으시는 분
  • 나의 관계와 일상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 갈등과 화해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
  • 이 사회와 세상과 우주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 모든 분열을 치유하시는 분

이 삼중적 현존을 깊이 인식할 때, 내 안의 분열된 모습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사랑 안에서 통합될 수 있음을 본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과정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열고 들으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나 자신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이루는 핵심적 태도다.

미래와의 협력 - 내면의 깨어있음을 통한 창조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어떤 내면의 태도와 능력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한 깨어있음(awareness)을 가질 때, 폭력이 아닌 사랑을 택할 수 있고, 거기에 근거한 새로운 미래가 떠오를(emerge) 수 있다.

내 안의 찰리와 타일러를 인식하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충동을 느끼는지 알아차릴 때, 그 순간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그럴 때 무한한 가능성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 나 자신의 내면 역동에 대한 깨어있음을 통해서 온전하고 새로운 미래를 오게 할 수 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나의 내면을 깨어서 보고, 그 상황과 관계 속에서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고, 이 세상 속에서 화해와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게 될 때, 새로운 창조적인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쉽게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분의 일하심을 분별해나가는 것이다.

놀라운 협력자로의 부르심 - 상처받은 치유자

이 모든 성찰을 통해 나는 깨닫는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 놀랍게 일하신다는 것을. 내 안에 어떤 역동이 있는지를 깨어있게 인식하고, 일상과 우주 속에서 함께 하시며 운행해 나가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깨어있게 의식하며, 나 자신을 온전히 거기에 내어맡기는 선택을 매일의 기도와 분별을 통해서 성실하게 한 걸음씩 해 나가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받고, 때로는 폭력적 충동도 느끼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할 때, 내가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고요한 시간과 일상의 모든 사건과 관계들을 통해 하나님을 찾아가는 시간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이 상처 많은 세상에 당신의 비폭력과 사랑을 전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함께 이뤄 나가신다.

이것이 샤르댕이 말한 우주적 그리스도의 신비요, 상처받은 치유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이다.

주님, 제 안의 모든 역동—찰리와 타일러, 권력욕과 무력감, 사랑과 증오—을 깨어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일상의 모든 순간과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운행하시는 당신의 현존을 의식하며 살게 하시고, 매일의 기도와 분별을 통해 나 자신을 당신께 온전히 내어맡기는 성실함을 주소서. 제가 받은 모든 상처와 실패, 심지어 폭력적 충동까지도 당신의 치유와 사랑의 도구로 변화시켜 주시고, 저를 통해 이 세상에 새로운 창조적 미래가 펼쳐지게 하소서. 이 우주 전체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가는 그 놀라운 일에 저를 협력자로 사용해 주소서.

묵상을 위한 질문들:

  • 내 안의 '찰리'와 '타일러'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며, 이 둘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떻게 통합할 수 있을까?
  • 나는 매일의 기도와 분별을 통해 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구체적인 방법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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