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난 처음부터 쉽게 가려고 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요령을 피우며 쉽게 가려고 해도 충분히 그렇게 했을텐데, 나는 어김없이 늘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정면돌파 같은 것.
조금은 융통성이 부족한 것일지도 몰랐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 눈 앞에 있는데에도 옆으로 돌아가거나 하지 않고 바로 직면했다.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방금 식빵이의 마지막 책산을 하던 중 맞딱뜨렸다. 꽤나 사소한 것인데
식빵이를 책산 하고 들어가던 중 우리 집 공동현관문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두명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빌라에 사는 한 남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관경을 보고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동현관문 쪽으로 식빵이와 이동하거나 아님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동선의 혼선을 막았을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은 바로 정면으로 식빵이와 향했다. 결국 그 좁은 공간에 동선이 혼잡해졌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단숨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들도 조금은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당장 식빵이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우선적으로 생각이 들어 그들을 피한다거나 동선을 겹치지 않게 한다는 등의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나는 늘 이런식이었다.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
쉽게 가려고 하지 않았다. 늘 조금은 어려운 쪽이었다. 요렁껏 그들을 피해서 갈 수도 있는 일인데 누구를 맞딱뜨리는 일에는 피하는 쪽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는 타입이라서 그런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으! 또 저사람이네?! 하면서 피하는 법이 없다. 그냥 그사람을 보고도 못본척 굳이굳이 지나가는 편이지. 이런 내 성향 때문에 나는 늘 잦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피하면 그만인데 그러지를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냥 반응을 하지 않으면 된다 라고만 생각하면서 살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순간, 어떤 장면을 맞이해도 그 첫 반응을 하지 않으면 기억에 각인되지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어떤 글을 보고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만 난 애초부터 반응이 문제가 아니라 내 우주의 펼쳐지는 스크린이 문제인 것 같았다. 멀티버스 나라는 사람의 여러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난 믿고 있는데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 식빵이와 그리고 21세기 2025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내 첫 번째 우주이지만, 다른 멀티버스의 내 다른우주에서는 내가 다른 직업으로 다른 환경속에서 다른 가족들과 살아갈 수도 있는 꼴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바꿀 수 있는데 그 방법이 나의 생각(상상)을 통해서만 오직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뜬금 없는 시각이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밖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식빵이와 조용히 뛰어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 그런데 집에 가려던 순간 난데없이 그것도 아주 조용히 중학교 남학생(내가 왕따 당해서 전학갔던 그 학교)의 학생들이 우리집 앞에 서있었더랬다. 이건 무슨 얘기일까?
난 늘 숨기고 살았던 과거가 있다.
남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던 내 아픈 과거의 이야기.
조금씩 에세이에서는 옛날 이야기로 가끔씩 들어나곤 했지만.
나의 카르마(무의식)은 아직 중학생에 갇혀있다.
나또한 왕따 피해자 였기 때문에 아직도 그시절 내가 가장 무서워 했던 그 남학생들의 모습을 가슴 속 카르마로 가둬두고 살기에 그게 시각화가 된 것이다. 그것도 이 늦은밤 그 시점에서 뜬금없이 그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해를 가하거나 무서운 언행을 저지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나는 살짝 겁을 먹었던 것은 사실이다. 난 아직도
중학생들을 무서워한다. 그때의 그들은. 그때의 그들은 이제 중학생도 아니고 다큰 어른에 나만큼 다른 모습으로 자랐을테지만, 여전히 나는 중학생들을 보면 무섭다.
무의식 정화.. 그래 말이 쉽지. 어떻게하면 옛날 안좋았던 기억들을 모두 정화할 수 있을까? 특히 왕따를 당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나는 사실 방법을 알고 있다.
네빌고다드의 교정용 가위치기가 대표적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바꾸는 것이다. 관련 카페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성공사례가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중학생 때 그때에도 늘 피하는 법이 없었다. 무슨 성질인건지 늘 끝까지 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것들에게 따를 당하면서, 난 절대 따같은 건 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면서 생각하면서 자존심 상해하면서 늘 자존감을 지켰다. 전학을 갔고 아주 잘다녔다. 지금 그 아이들의 이름을 sns에 쳐볼 생각도 못하면서 잘 살지만, 아직도 그때가 꿈속에 떠오른다. 그냥 잊고 살아보지만 카르마는 보통 바꾸기 힘들다. 그치만 내 세상에 스크린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상상) 필요하긴 하지만 그 생각(상상)또한 내 카르마가 꾹꾹 눌러져 막혀있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의 무의식 카르마가 있는 법이니 늘 그것을 정화하는 명상을 하면서 카르마를 씻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안좋은 일이 반복되거나 자꾸만 인생의 봉변을 맞이한다면 내가 하는 상상과 생각을 조심해야하고 억눌린 카르마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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