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꿈을 찾는 사람들

<꿈의 기억>에 대하여, 토요지기 Y가 쓰다

2024.04.13 | 조회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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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꿈은 정신이다. 꿈을 잃어버리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정신: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아빠! 안 잘래요. 안 졸려요."

 벌써 동화책 두 권을 읽어주고, 마지막 책이라고 약속한 책을 덮자 아들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밤 열 시가 다 되어가는 시계를 보며 기훈은 난처한 듯 아들 건우를 보며 말했다.

 “건우. 지금 안자면 꿈 도깨비가 나타나서 건우 꿈을 먹어버릴지도 몰라.”

 “꿈 도깨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타났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건우가 더 얘기해달라고 기훈을 졸랐다.

 꿈 도깨비는 기훈과 건우가 사는 작은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속 도깨비였다. 사람들 꿈에 나타나 행복한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먹어버리는 괴물. 처음에는 꿈을 먹고 그 다음에는 기억, 그리고 마지막엔 그 사람의 혼까지 먹어버린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이었다.

 “근데 왜 지금 안 자면 안 되는 거예요? 꿈을 먹으려면 이미 잠든 사람들 꿈을 먹어버리면 되잖아요.”

 “늦게 자는 사람들의 정신은 약해져 있거든. 꿈 도깨비는 정신이 약해져 있는 사람의 꿈에 나타난단다.”

 기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우는 눈을 꼭 감았다. 기훈은 씩 웃으며 건우가 덮은 이불을 정리해주며 물었다.

 “아들, 무슨 꿈 꿀 거야?” 

 “엄마 꿈.”

 건우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기훈은 움직이던 손을 멈춰버렸다. 벌써 아내가 죽은 지 1년이 지나고 있었다. 어린 건우가 죽음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직 아내의 죽음을 건우에게 말하진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 눈치를 챈 걸까. 건우는 언제부터인가 엄마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그런 건우의 입에서 갑작스레 엄마란 단어가 나온 것이 마음이 아팠다. 

 “잘 자렴. 아들.”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고 기훈은 건우의 방의 불을 끄고 나왔다.


 꿈 도깨비에 대한 기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꿈 도깨비는 정신이 약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일찍 잠이 든다고 그 꿈에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기훈은 그저 어린아이를 일찍 재우려는, 작은 시골에 내려오는 전설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꿈 도깨비는 존재했다. 그리고 기훈과 건우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엄마 꿈을 꾸겠다고 잠든 건우를 꿈 도깨비가 바라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속이 뒤틀리는군.”

 꿈 도깨비는 정기적으로 사람들의 꿈을 먹으며 사람을 해치고 다녔는데,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 꿈을 꾸는 남자아이의 꿈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 모습을 견디지 못해 했다. 그 꿈을 먹어버려야만 속이 풀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꿈을 꾸고 있는 건우의 꿈을 견디지 못하고 먹어버렸다. 그날 이후 건우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기훈은 어느 날부터인가 건우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밝고 활달한 아이였는데, 점점 말수가 줄더니 밥도 제대로 먹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래도 보고 혼내도 봤는데, 건우 상태를 보아하니 단순한 일 같지가 않았다. 혹시나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병원도 데려가서 검사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소견이 없다는 것이 의사의 말이었다. 정신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보고 약도 먹여봤지만, 갈수록 활력을 잃을 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기훈은 미칠 노릇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이제 세상이 아들과 자신 둘뿐인데, 이러다 건우까지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 기훈이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용하다는 한 점집이었다. 직장동료가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기훈에게 한번 가보라고 말해준 곳이었다. ‘이성과 과학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기훈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이제 왔어.”

 무당은 아들 건우를 빤히 보더니 이내 기훈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머뭇거리던 기훈은 말을 꺼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가도 별 방법이 없습니다.”

 “꿈 도깨비가 꿈을 먹었는데, 병원에 가서 무얼 하려고.”

 아, 기훈은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꿈 도깨비라니. 아무리 무당이라지만 너무 얼토당토않은 소리 아닌가. 기훈은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건우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엄마는 1년 전에 가버렸네?”

 기훈은 다급히 건우의 귀를 막았다. 

 “아기는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해.”

 건우가 나가고 무당이 기훈을 꿰뚫어 보듯 쳐다보며 말을 읊었다.

 “다 갖췄네. 꿈 도깨비가 좋아하는 것들.”
 “아니, 그게 무슨...”
 “이 꿈 도깨비는 엄마 없는 사내아이의 꿈을 좋아하거든... 꿈도 먹히고, 이제 기억까지 먹히고 있을 텐데. 요새는 주변 사람들도 잘 기억을 못 할 텐데.”

 사실이었다. 점점 말수와 조용해진 건우가 최근에는 어린이집의 친구들을 하나, 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들을 생각이 생겼냐는 표정으로 무당은 기훈을 바라보았다.

 “꿈 도깨비라는 게 그저 전설인 줄 알았겠지. 종종 산에서 내려와서 사람들 꿈을 먹고 다니지만, 그 증상이 정신병 증상이랑 비슷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야. 병원 다니고, 약 먹으면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꿈, 기억 그다음은 혼이거든. 혼까지 먹혀버리면 끝이야.”

 기훈은 아찔했다. 이 말을 과연 믿어야 할까. 믿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아들은 이미 꿈 도깨비한테 기억을 빼앗기고 있어. 시간이 없어. 곧 혼까지 먹힐 거야.”
 기훈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무당 미선은 자신이 쓴 부적을 들고 나가는 기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됐다. 드디어 이날이 찾아왔구나. 미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수십 년 전, 꿈 도깨비에게 혼을 빼앗겨 죽어버린 어린 남동생을 떠올렸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였다. 나이 차이가 나던 어린 남동생을 자식처럼 보살피며 지냈었다. 어느 날부터 밝은 남동생이 말수가 없어지고, 밥을 못 먹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때 미선도 기훈처럼 온 병원을 찾아다녔었다. 이상소견이 없다는 답변만 받을 뿐이었고, 아무런 손을 못 쓰다 남동생을 생을 마감했다. 어린 남동생 때문에 신내림을 거부하던 미선은 결국 내림굿을 받게 되었고, 꿈 도깨비에게 남동생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복수를 꿈꾸던 것이. 아니 남동생을 위해 미선은 꿈 도깨비를 찾아다닐 수밖에 ㄱ환생할 수 있었다. 미선에게도 선택지는 없었다.

 다음날 기훈은 일찍 미선을 미선을 찾아왔다. 기훈은 얼토당토않은 미선의 말이 사실이라는 당혹스러움과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미선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말씀대로 부적을 베갯잇에 넣어두고 아이의 손을 잡고 잤습니다.”

 미선은 눈을 반짝이며 기훈의 말에 집중했다. 남동생의 복수를 해줄 이 남자의 말을.

 “아들은 아내의 꿈을 꾸고 있더군요.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리고...
 제 옆에 누군가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는 불쾌한 시선. 그쪽을 바라보려고 하니 무언가 제 머리를 가격했습니다. 그리고 꿈에 깨 정신을 차려보니 실제로 머리에 상처가 나 있었어요.”

 이제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듯 기훈이 미선을 간절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미선은 기훈의 말을 듣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남동생의 복수가 눈앞에 있다는 기쁨과 이 남자를 이용한다는 죄책감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내 죄책감을 지우고 미선은 눈을 떴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죽여야지. 꿈 도깨비. ”


 미선에게 새로운 부적을 받아 온 기훈은 날이 저물기만을 기다렸다. 건우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기훈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기훈에게 유일한 소원은 건우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다. 꿈 도깨비라니. 아니 게다가 꿈 도깨비를 내가 죽인다니. 나 또한 단단히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젯밤에 있었던 이상한 일들, 그리고 선택지가 없는 기훈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선은 꿈 도깨비가 기훈을 본 순간 다음 타깃은 기훈으로 오늘은 기훈의 꿈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기훈은 미선이 알려준 꿈 도깨비를 죽이는 방법을 되새기며 밤이 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밤이 찾아오고 곤히 자는 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야, 사랑한다. 건우야...”
 기훈은 이 작은 아이가 감당하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빠가 구해줄게. 널 위해서라면 무얼 못하겠니. 
 미선이 써준 부적을 손에 쥐고 건우의 손을 잡고 기훈은 잠들었다.


 기훈은 눈을 떴다.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자신과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예리야...”
 아내의 뺨을 쓸어내렸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침대 옆에 작은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건우가 보였다. 기훈의 움직임에 잠이 깬 아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기훈을 보고 웃었다. 
 “깼어?”
 ‘우선 꿈이 꿈이라는 걸 알아차려야 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꿈 도깨비의 영향력은 약해져.’ 
 누군가 기훈에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이게 꿈이라고? 아내의 뺨을 다시 한번 쓸었다. 분명히 온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 그리웠던 온기였다. 기훈은 벅찬 기분이 들어 감정이 차올랐다.

 땀에 젖어있는 기훈을 아내가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악몽이라도 꾼 거야?”
 기훈이 아내를 바라보더니 안도하듯 숨을 내뱉었다.
 “응. 너무 긴 악몽을 꾼 거 같아.”
 ‘쉽지 않을 거야. 꿈 도깨비는 그 사람이 제일 행복했었던 모습을 꿈으로 보여줄 거야. 차라리 그 꿈에 계속 머무르고 싶도록.’
 침대 옆에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건우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집에서 살 땐 건우가 없었다. 

 ‘이건 꿈이다.’

 꿈인 걸 자각하는 순간 뒤에서 공격이 들어왔고, 기훈은 겨우 그 공격을 피했다.
 ‘이게 꿈인 걸 아는 건가. 골치 아픈 인간이군.’ 꿈 도깨비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시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기훈은 다시 눈을 떴다. 익숙한 공간이 펼쳐졌다. 여기는...
 “저 혹시 홍기훈씨 맞으세요?”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줍게 웃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이날은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아, 이런 꿈이라면 계속 꿈속에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인사하는 아내를 와락 안았다. 
 “아...저기...갑자기 이러시면...”
 “예리야, 예리야, 예리야....”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너 죽었잖아.”
 ‘도깨비를 만나면 가슴팍에 이 부적을 붙여. 잘 때 몸에 지니고 자면 꿈에서 자각할 때 부적을 꺼낼 수 있을 거야.’
 기훈은 아내의 가슴팍에 미선이 써 준 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예리야. 우리 건우는 살아야지.”
 아내가 비명을 지르더니 꿈 도깨비의 모습으로 변했다.
 ‘나를 죽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나를 죽이는 것이냐.’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꿈 도깨비의 모습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너를 죽이면 내 아들이 살겠지.”
 ‘아무것도 모르는군. 나를 죽이면...’
 말을 다 끝내지 못한 꿈 도깨비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꿈 도깨비의 말대로 기훈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미선이 말해주지 않은 사실 한가지.
 꿈 도깨비를 죽이면 그 사람은 꿈 도깨비가 된다. 
 꿈 도깨비 또한 처음엔 꿈을 빼앗겨버린 평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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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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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염왕

    0
    about 1 month 전

    재미있어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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