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엄마, 엄마

<엄마>에 대하여, 화요지기 적문이 쓰다

2024.03.26 | 조회 81 |
0
|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그러니까 너무 평범한 가족이라 쓸 게 없다는 거지?”

 주방을 서성이는 엄마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식탁에 앉은 희정은 그렇게 물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내 변명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희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한다니까, 엄마- 하며 기어이 엄마를 소파에 앉힌다. 고무장갑을 야무지게 끼더니 능숙하게 그릇을 집어들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골백번은 더 해본 솜씨다.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다는 거지.”

 세련되게 쓰고 싶다는 게 골자였다. 수많은 글 중에서 뚜렷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수많은 신생아 중 ‘저기있다, 내 새끼’ 싶었다던 희정의 말처럼. 특별한 주제와 의미를 붙이고 싶었다. 어쩌면 평범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평범한 가족이란 게 어딨나. 평범함으로 덮어놓은 가족이란 그 속에 알알이 맺혀있을 속사정과 사연을 모른 체한 무책임한 단어라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속 편한 말이라고.

 그러니 ‘평범한 엄마’ 라는 타이틀을 마뜩잖아 할 것만 같았다. 당장 나부터 탐탁지 않았다. 희정은 그것보다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혼자 아들 둘을 감당하면서도 강퍅해지지 않은 희정. 짓궂다 못해 되바라진 아들의 장난도 마냥 애교로 보는 희정. 나무라면서도 다독일 줄아는 희정. 세월의 횡포에도 여전한 눈웃음을 짓는 희정. 그런 희정에겐 좀 더 괜찮은 칭호가 있으리라고 주장할 셈이었다.

 “엄마 어렸을 때는 평범하게만 사는 게 소원이었어.”

 수도꼭지를 잠근 희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희정보다도 왜소한, 아니 왜소해진 엄마는 거실에서 TV 삼매경이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 잔따르며 희정은 말을 이어나갔다.

 “너 무나물 알지. 그 왜, 아까 할머니 반찬 중에도 있었잖아. 엄마 어렸을 때 참 좋아했는데.”

 “그니까, 아까도 잘 드시더만.”

 “그래, 근데 그거 먹다가 할머니한테 쥐 잡듯이 혼났다?”

 “잉, 왜요? 할머니가 잘하시는 반찬이잖아요.”

 “그게…”

 사정은 이랬다. 80년도의 어느 추석 날 각종 전과 잡채가 한 상 가득한 저녁. 세 자매를 키우는 거실이자 안방이자 부엌인 단칸방. 없는 형편에 간만의 푸짐한 식사였으리라. 한편 밥상 한 켠엔 희정이 그렇게 좋아하던 무나물도 나왔더랬다. 예의 그 무나물을 보며 입맛을 다신 희정은 젓가락을 들었는데, 꽥, 엄마의 예상치 못한 호통이 들린 건 무나물을 집은 뒤였다. 먹을 것도 많은데 왜 무나물을 먹고 앉았냐고, 엄마가 여즉 전도 다 부쳐놓고 잡채도 무쳐놨는데, 이 맛있는 거 놔두고 집는 게 왜, 왜 하필이면 무나물이냐고. 맛난 저녁을 앞에 두고 희정은 엉엉 울었댄다. 좋아하는 반찬을 못 먹은 서러움이었을지, 몰랐던 엄마의 맘을 헤아릴 수 없었던 놀람이었을지는 모를 눈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엄마의 눈에도 희정에겐 보이지 않은 눈물이 방울져있었을 것이다.

 “사연 있는 음식이었네요.”

 “사연 있지, 그럼. 엄마 어렸을 땐 그랬어. 그런 게 있다, 니네 할머니가.”

 “지금은 드셔도 뭐, 혼내실 건 아니잖수.”

 “응, 내가 해먹으면 되지 뭐.”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 희정은 이제 여러 방이 딸린 아파트에 당신의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산다. 거실도 안방도 부엌도 각각의 버젓한 공간으로 나뉜 평범한 아파트. 심지어 엄마의 집도 온전히 마련해두었다. 희정이 장만한 엄마의 집 부엌의 식탁에서 희정과 맥심 커피를 마시는 나는, 평범이라는 낱말에 제멋대로 씌워놓았던 칼을 벗긴다. 평범한 가족이라는 희정의 소원을 내가 멋대로 재단해놓은 건 아니었는지, 조금 부끄러워져서 멋쩍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아는지 모르는지, 희정은 나를 보며 흐뭇한 눈웃음을 짓는다. 세월을 모르는 웃음이다.

 “엄마, 우리 갈게.”

 외투를 걸치며 가방을 드는 희정과 함께 문을 나선다. 또 봬요, 외할머니. 쉬세요- 하려는데,

 “희정아, 너 이거 가져가야지.”

 엄마의 손에 들린 건 락앤락 반찬통이었다. 평범한 엄마의 평범한 무나물이 담긴.

 두 엄마는 웃는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글로만난사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