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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의 하루_01

릴레이 글쓰기_1번 주자 수염왕이 쓰다

2024.04.22 | 조회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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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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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일생이 3년의 시간과 하루의 시간, 이렇게 두 단계로 나뉘어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의 가치를 높게 생각할 것인가. 시간의 양에 따라? 아니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간별로 살고 있는 곳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겠지.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어느 하루살이의 가슴 뜨거운 일생이다. 


 “아부! 어디야, 학교 늦겠어. 빨리 나와!!” 

 티파니는 조급해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납작하고 둥근 돌멩이 아래에서 한 하루살이 애벌레가 천천히 얼굴을 빼 보이며 말했다. 

 “파니야.. 나 어제 10번째 껍데기 벗어서 피곤하단 말이야. 오늘은 쉬고 싶어.” 

 “오늘이 우리 3학년 마지막 수업날인 거 몰라? 그리고 슬기 선생님이 오늘 중요한 이야기 해주신다고 했단 말이야! 그리고 너, 저번에 9번째 껍데기 벗은 날도 학교 빠졌지? 그러다 졸업 못할 수도 있어! 얼른 나오라고!” 

 아부는 티파니의 잔소리가 지겨운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돌멩이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티파니는 이런 아부를 답답해하며 재빠르게 등 뒤로 헤엄쳐 가 몸을 부딪쳐 밀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빨리 움직이면 되잖아!” 

 그제야 아부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헤엄쳐 길을 나섰다. 그런 아부의 모습을 본 티파니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하루살이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충의 삶이 하루뿐이라 하루살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 알과 유충 시절의 시간까지 합치면 3년의 시간을 산다. 하루살이 유충들은 각자의 꿈을 위해 3년 동안 ‘고급 하루살이 양성학교’를 다니는데, 오늘은 앞서 티파니가 했던 말처럼 그들의 졸업 전 마지막 수업 날이다. 수업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면 아부와 티파니는 변태라는 과정을 거처 성충이 된다. 아부와 티파니가 서둘러 도착한 교실에는 다슬기 선생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둘 왜 이리 늦었니? 내일이면 성충이 되는 애들이 정신 안 차릴래?” 

 “죄송해요 선생님...”

 불 같은 다슬기 선생님의 훈계에 아부와 티파니는 반성하는 모습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다슬기 선생님은 잠시 자신의 껍데기를 기울여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여러분, 내일이면 다들 성충이 되는 거 알고 있지? 하루살이 성충은 아성충과 성충, 이렇게 2단계로 되어 있는데, 1차 변태하고 아성충이 되었을 때를 특히 조심해야 해.” 

 다소 심각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다슬기 선생님의 말씀에 티파니는 긴장이 되는지 배마디에 깃털처럼 생긴 기관아가미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선생님, 어떤 걸 조심해야 해요?” 

 긴장되어 보이는 티파니를 보고, 다슬기 선생님은 자신이 조급한 나머지 제자들에게 불안감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아무래도 내일이 3년 간 가르친 제자들의 삶 중 마지막 날이다보니 마음이 불안한 모양이다. 다슬기 선생님은 몇 번의 헛기침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티파니에게 대답했다.

 “먼저, 변태하고 나온 직후를 조심해야 해. 근처에 파렴치한 개구리나 악독한 오리가 있을 수 있거든? 빠르게 날아오르지 못하면 어설픈 소금쟁이 같은 놈들한테도 당할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날아 올라서 근처 숲 안으로 도망쳐야 한다, 알겠지?” 

 다슬기 선생님의 말씀에 티파니는 조금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아부는 이런 티파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아부와 티파니는 학교 근처에 있는 넙적 돌멩이 아래로 갔다. 지난 3년간 단짝으로 지내던 둘이 자주 가던 곳이다. 언제나처럼 아부가 먼저 바닥과 돌멩이 사이로 미끄러지듯 쑥 들어가고 티파니가 뒤를 따랐다. 아부는 자리를 잡자마자 오는 길에 주워 온 *부식질을 우걱우걱 씹어먹기 시작했다. (*부식질: 흙 속에서 식물이 썩으면서 만들어지는 유기물의 혼합물) 티파니는 이런 아부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심통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이 와중에 먹을 게 넘어가냐? 내일 우리 변태하자마자 못된 놈들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고.” 

 걱정 투성인 티파니를 향해, 아부는 부식질을 씹으며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우리 성충이 되면 아무것도 못 먹잖아. 지금이라도 많이 먹어 둬야지. 너도 빨리 먹어. 그리고 내일이면 이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하천 생활도 끝이야. 그래서 난 너무 설레는걸?” 

 “넌 아무것도 몰라.” 

 티파니는 힘 없는 목소리로 작게 한마디 던지고는 몸을 돌려 아부와 등을 졌다. 평소 활기 넘쳤던 모습과 다르게 이리도 우울한 모습을 보이자 아부는 이제야 슬쩍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물 밖 하늘은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어두운 것도 잠시, 하천 옆에 있는 가로수 등이 켜지며 둘의 앞을 밝혔다. 따뜻해진 날씨 탓인지, 오늘 밤은 물 밖으로 보이는 불빛이 평소보다 더 밝아 보인다. 아부는 불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파니야. 내일이면 우리 날 수 있잖아. 하늘을 날면 네가 좋아하는 저 불빛 가까이 날아갈 수 있어! 어때? 이 말 들으니까, 너도 설레지 않아?” 

 “그럼 우리는?”


하루살이 애벌레가 변태를 하는 시기는 서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운 좋게 아부와 티파니가 비슷하게 변태를 하게 된다고 해도 성충 때 모습은 애벌레 때와 전혀 달라서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행여나 성충이 되어 서로를 알아본다 해도, 입이 없어 서로를 부를 수 없다. 이 말들은 즉, 물 밖 불빛이 평소보다 더 밝게 빛나는 오늘 밤이, 아부와 티파니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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