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하루살이의 하루_03

릴레이 글쓰기_3번 주자 용PD가 쓰다

2024.04.24 | 조회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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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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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등이 유난히 맹렬하게 빛나는 밤이라면, 밝다고 불러야 할까 어둡다고 불러야 할까. 어둠을 걷어내는 저 불빛이 참으로 밝지 않느냐고 묻는 누군가는 필경 내일을 기다리는 자일 게다. 그렇다면 어제를 그리워하는 이는? 어둠이 평소보다 더욱 짙기에 가로등이 여느 때보다 빛나 보인다고 답하리라.

 3년을 살아오는 동안 오늘만큼 어둠이 두렵지 않은 밤은 없었다. 아부는 찬란한 내일을 앞두고 어둠에만 꽂혀 있는 티파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걱정이야 될 수도 있겠지. 성충으로 변태하는 타이밍을 천적들이 가장 많이 노린다고 신신당부를 들었으니까. 두려울 만도 하겠지. 자칫 실수하기라도 하면 지난 1090일이 넘는 노력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테니까. 하지만 말야,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단 하루를 날아오르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길고 혹독한 어려움을 통과한 거잖아. 물고기들을 피해 도망치고, 장마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돌부리에 매달려 견디고, 겨울엔 얼어붙지 않는 수역을 찾아 치열하게 바닥을 훑어야 했던 모든 나날들은 바로 내일을 위한 기다림이었잖아. 여기까지 와서 성충이 되길 포기하기라도 하겠단 거야?

 “아냐, 내 말은 하늘보다 강바닥이 좋다는 뜻이 아니야. 개구리가 겁나서 변태를 시작하기 싫다는 겁쟁이도 아니야. 난 그저.. 네 상상 속에도 내가 있을 줄 알았어.”

 “무슨 소리야? 상상?”

 “그래, 상상! 우리가 3년 내내 간절히 그려왔던 내일 말이야! 같이 8층까지 올라가서 최고기록도 깨자고 그랬잖아. 강물을 끝까지 따라가서 바다를 직접 보자고 했었잖아. 난 뭐든 함께하는 모습만 그려왔는데, 당연히 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부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눈물이었다. 티파니와 함께 꿈꿨던 이런저런 미래의 풍경들은 당연히 그도 기대해 마지않는 최고의 장면들이다. 맞춰주기 위해 대충 내뱉은 아무 말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건 결국 꿈, 말 그대로 꿈이지 않은가. 성충으로 변태한 뒤에는 서로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현실이 아부의 잘못은 아니었다. 더 먼 훗날을 기약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겨우 하루뿐이라는 사실도. 그것은 그저 하루살이라는 존재의 숙명이다.

 “생각해 봐, 티파니. 나도 우리가 영원토록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 하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잖아. 말도 하지 못하는 채로 상대방을 찾아 헤매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천금같은 확률로 서로를 알아본다고 해도, 함께 다니다가는 천적들의 눈에 더욱 잘 띄게 될 거야. 힘을 합치더라도 개구리나 오리에 맞서기에 우리의 날개는 너무 얄팍한걸.”

 “현실이고 한계고 그런 건 전부 다른 하루살이들이 하는 얘기잖아! 지들도 그래봤자 하루밖에 더 날아봤어? 남들이 못하는 거라고 왜 우리도 못한다고만 해? 말을 못하면 날개짓으로 신호를 정하면 되잖아. 날개가 얄팍하면 온몸을 부딪쳐서라도 구해주면 되는 거잖아!”

 “... 그만하자 티파니. 불가능한 꿈만 꾸고 있다간 이룰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돼. 우리도 이제 나가자. 밤이 가장 깊을 때쯤에 천적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장소를 찾아서 변태를 시작해야지.”

 너나 가라는 말이 배웅을 대신했다. 아부 혼자서 이 넓적 돌멩이를 나가는 일은 처음이다. 나가는 길에는 돌멩이에 새겨놓은 ‘8’자 표시가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티파니와 아부가 그들만의 아지트를 알아보기 위해 물이끼를 덧붙여 만든 표식이었다. 모든 하루살이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변태 타이밍이 기막히게 일치했던 날, 그들만의 기념비로 새겨두었다. 여덟 번째 껍데기를 벗는 날이었다.

 아부는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오늘을 위해 꿋꿋이 버텨온 3년 동안의 자기 자신에게. 그와 친구를 지켜준 그들만의 아지트에게. 그 기억이 너무도 소중하여 지금도 눈물짓고 있는 그녀에게.


 가장 깊고 자욱한 곳까지 어둠이 깔렸다. 가장 어둡다는 얘기는 곧 천적들이 아부를 발견하기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아부는 신중하고 또 치열하게 변태할 장소를 골랐다. 어떻게 기다려온 날인데, 허무하게 물고기 밥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한 번 변태에 들어가면 탈피가 끝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으니, 절대로 공격받지 않을 게 분명한 곳이어야만 했다.

 마침내 아부는 적당한 곳을 골랐다. 하루살이 친구들조차 자주 드나들지 않는 으슥한 수풀 사이였다. 적당한 물살이 수풀과 이끼를 적당히 흔들어주는 덕분에 주변의 시야에서 잘 띄지 않았다. 여기라면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고 변태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까의 쨍한 가로등 불빛조차 빗겨가는 위치라, 어스름한 달빛만이 아부를 응원하고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내게도 날개가 생기는 거야. 저 달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야. 온전히 하루를 잘 살아내고, 삶을 마무리할 때가 오면, 다시 저 달에게 또다른 안녕을 건넬 수 있겠지. 아부는 서서히 껍데기에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아른아른 흔들리는 수풀이 그에게 손을 흔드는 것만 같다.

 커다란 그림자가 아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굳었을 즈음이었다.

 어둠이 숨겨주었던 존재는 아부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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