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특성을 제외한 인간 존재의 공통점을 몇 개나 꼽을 수 있을까? 성별, 나이, 인종, 언어 등을 초월하는 공통점으로 “엄마”는 어떨까? 엄마라는 단어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엄마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너무나도 닮아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엄마의 존재를 - 생물학적으로나마 -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남긴 흔적의 크기와 형태, 냄새는 다를 지라도.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8,093,139,529개나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10명의 친구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요?” 10명 모두 “너무 어려운 주제인데?”하고 대답했다. ‘쉬운 주제였으면, 제가 알아서 썼지요.’ 뼈도 못 추리고 싶지 않기에 속마음을 삼키고 다시 말해 본다.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보다 툭 나오는 답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얼렁뚱땅 진행한 강제 인터뷰. 절대 엄마에 대한 글쓰기가 어려워 이렇게 진행한 것은 아니다. 절대. 아마도.
10명의 인터뷰이들은 필자의 지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객관성 아닌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 허나, 해당 주제에서 객관성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 최대한 겹치지 않는 그룹에서 뽑아서 진행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크게 아래와 같이 다섯 분류로 나눠질 수 있었다.
1. 끊임없는 관심을 주는 사람
지속적인 관심을 주는 존재로 답한 Y 양(30)과 H 양(31). 예쁜 말로 관심, 재치 있게 말하자면 ‘잔소리 대마왕’이라는 이야기다. 30년간 잔소리를 들은 프로들. 아니 엄마 말을 흘려 듣는 달인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걸 먹을 때 항상 입버릇처럼 “우리 엄마도 좋아하겠다”라고 말하는 그들. 잔소리 폭탄을 듣고 온 날, 피곤해 보이는 얼굴 뒤에는 엄마의 애정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2. 희생과 인내의 아이콘
라고, 대답한 Y 양(25)과 M 양(31)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안쓰러움이라고 했다.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둘이 누구보다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점. 이 둘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엄마의 희생과 인내로부터 온 걸까? 가정의 평화라는 건 누군가 - 여기에서는 엄마 - 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걸까?
3. 난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어!
엄마를 “대단 ”하다고 표현한 H 양(31)과 S 양(32). “대단”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은가. 그 많은 “대단” 중 ‘너무 대단하여 나는 차마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유형이었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해!”라는 강요의 부재에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오히려 진득한 애정의 결과일터이다. 흥미로운 건 그들이 엄마의 삶과는 다른 본인만의 인생을 개척하는데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것.
4.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야
S 양(30)와 Y 양(31)은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쪽이다. 운명을 받아들인 자라고 슬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하는 쪽이 오히려 저렇게 되어버린다는 건 흔히 알려진 비극이니까. 아니 이건 희곡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엄마는 예쁘고, 성격도 좋으니까.
5. “넓은 들판에 하얀 들꽃”과 “뚜껑이 있는 커다란 장독대”
아름다운 시를 써준 S 양(29)과 J 양(32). 은유는 담고 싶은 의미가 많을 때 더욱 빛난다. 아무리 작은 것도 들판처럼 넓어지고, 장독대같이 단단히 품을 힘이 생긴다. 나를 출생한 존재를 어떻게 한 두 개의 형용사로 표현하겠는가. 시가 아름다운 건 감춰져 있는 의미가 철저히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는 점. 그러므로 이 비유들을 아름답게 해석하고 있다는 건, 바로 당신에게 엄마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
엄마는 초월적이면서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래서 모든 엄마는 먹먹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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