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정연

<엄마>에 대하여, 월요지기 용PD가 쓰다

2024.03.25 | 조회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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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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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제 나는 고아이고, 가족도 친지도 없다. 그리고 범죄자의 딸이다.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동생이 있었다.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 신고를 하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혜연이는 학교 옥상에서 싸늘해져 있었다.

 담당 형사는 자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그랬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게 확실하죠? 네, 확실해요. 우리의 행색이나 두 칸짜리 반지하 거처를 보고 던지는 질문이겠으나, 혜연이는 그런 거 상관 없이 맑고 고운 아이였다. 그러면 형사는 혀를 차며 뇌까리는 것이다. "그럼 타살이란 얘긴데, 아무 흔적이 없어요 흔적이. 그렇다고 자살도 아니야 이거는. 자기 손으로 이렇게는 못 죽어요. 사람이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거든."

 답답했다. 막막했다. 가라앉은 우리집을 띄워주는 건 항상 혜연이었는데. 혜연이가 죽어서 갑갑할 때는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엄마는 꿋꿋했다. 이젠 그만하자는 포기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경찰이 부르면 경찰서에, 선생이 부르면 학교에 꼬박꼬박 다녀왔다. 표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 가장 자주 본 바로 그 무표정으로 매일을 살았다. 엄마는 늘 그렇게 우리를 지켜왔다. 아빠라고 불렀어야 할 인간은, 혜연이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자, 없애라고 했다. 혓바닥으로 주먹으로 엄마를 두들겨 팼다. 엄마는 부풀어오르는 배와 아직 핏덩어리인 나를 감싸고, 단단한 등판으로 발길질을 받아냈다. 그러자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린 그렇게 시작한 세 가족이었다. 그렇게 낳아 기른 혜연이었다. 엄마의 굳은 무표정을 잠깐씩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혜연이가 갑자기 차갑게 굳고 말았다.

 하루는 엄마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검은 봉지에 담긴 초록색 유리병 두 개가 짤랑거렸다. 낮에 학교를 갔더니, 담임선생이 여자애 셋을 데려와 무릎을 꿇렸단다. 아줌마 죄송해요. 혜연이한테가끔 장난을 친 적이 있는데 너무 후회가 돼요. 혜연이가 그렇게 된 게 혹시 저희 잘못인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해요. 엄마는 아마 걔네를 무표정으로 내려다봤을 것이다. 한참 그러고만 있다가 그냥 돌아왔을 것이다. 너네 잘못이 아냐. 혜연이는 그런 걸로 가라앉을 애가 아니야. 그러고 단단하게 뒤돌았을 것이다.

 엄마가 술을 마시는 건 처음 봤다. 엄마도 술을 마실 줄 아는지 처음 알았다. 엄마는 술을 마시면 얼굴색이 빨갛게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표정은 항상 보던 표정이었다. 변함없이 단단한 표정으로 엄마는 혜연이를 찾기 시작했다. 옷장에 숨었을까, 우리 딸. 책가방 속에 스스로를 감춘 거니. 엄마는 결국 가장 깊은 서랍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혜연이의 마지막 글씨를 찾아냈다. 안녕. 엄마, 언니. 엄마의 예쁜 딸이고 언니의 귀여운 동생은, 학교에선 숨을 쉬기조차 너무 힘들어. 15년 동안 잘해줘서 고마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그리고 걔네들, 용서해주면 좋겠어. 안 그럼 엄마랑 언니가 너무 힘들 거잖아.

 엄마가 우는 건 처음 봤다. 그렇게 많이 우는 사람도 처음 봤다. 20년을 모으고 모은 눈물이라서일 것이다.

 엄마는 혜연이네 반에 갔다. 죽으러 간 건 아니었을 것이다. 혜연이 말 들으러 갔을 것이다. 용서해주라는 말을 반드시 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근데 그게 안 됐다. 어제는 엄마 앞에서 무릎꿇고 울던 애들이, 오늘은 웃으며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걔네는 그걸 '박혜연 놀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네 명을 죽였다. 여자애 셋을 교실 복도에서, 스스로를 옥상에서. 엄마는 마지막 글씨를 빨간 색으로 남겼다. 혜정아 엄마 용서하지 마. 혜연이의 마지막과는 방향도 결론도 정반대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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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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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염왕

    0
    about 2 months 전

    ㅠㅠ 슬픈이야기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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