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기억 속 작품>에 대하여, 금요지기 수염왕이 쓰다

2024.04.19 | 조회 35 |
0
|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딱히 영화를 통해 깊이 감동한다던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받거나 한 적은 거의 없다. 내게 영화란 평온한 상태에서 온전한 오락거리로 즐기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인지 심오한 의미를 가진 영화들은 잘 찾지 않는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단순히 제목이 가족 오락영화 같아서였다. 게다가 주인공이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주연배우길래, 두 영화가 비슷한 영화겠거니 했다. 그렇지만 영화는 기대와 다르게 생각보다 차분하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화 초반은 지루해서 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영상미가 훌륭하길래 내용보다 시각적인 부분을 즐기며 시청을 이어갔다.

 그러다 놀라운 장면이 나왔다. 영화 속에 유명한 사진작가로 나오는 숀 오코넬이라는 사람이 오랜 기다림 끝에 나타난 눈표범을 찍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그 장면. 영화를 평가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볼 때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가 내게 그 어떤 영화보다 영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리하여 오래 기억되고 있는 건 순전히 이 장면 때문이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어떤 때는 안 찍어. 난 개인적으로는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사진이란 무엇인가. 유명한 사진작가 필립 할스먼은 인물사진에 대해 "10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증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사진은 특정한 사람, 사건, 풍경 등을 기록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진사들은 결정적인 장면을 만나면 지체하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특히, 나와 같은 상업사진가들은 경제적인 부분까지 더해져 결정적 장면을 만나면 혹시나 놓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다. 이런 이유와 습관으로,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나면 눈으로 보며 마음에 담지 않고 오직 사진으로만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사진을 보는 남들의 시선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장면을 놓쳐 사진을 통해 남들에게 찬사를 받는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카메라를 집어 던지고 싶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워버렸다. 결정적인 장면을,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록해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행위도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나는 이런 행위들로 지쳐가고 있었다.

 사진사로서, 남들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무심코 지나친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의무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의무감에 지치지 않으려면 종종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아름다운 순간 앞에서 카메라를 들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그때 왜 사진을 안 찍었을까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반드시 후회하는 일이 생기겠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에 그저 조용히 머물렀던 경험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 거라고 믿는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글로만난사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