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난사이_24년상반기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영원히 머금고 갈 기억>에 대하여, 목요지기 J가 쓰다

2024.05.09 | 조회 41 |
0
|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밤 10시. 내 방에서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2024년인 지금, 1988년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6집>이 내 귀를 스쳐 간다. 언젠가 턴테이블을 사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건, 우리 집에 쌓여있는 LP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난 절대로 턴테이블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음악을 한 곡만 반복해서 듣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나에게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꽤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꽂혀버린 한 곡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바늘을 수동으로 옮겨야 하니까. 그래도 턴테이블을 틀어놓고 할 일 하는 내가 낭만적으로 보여 퍽 마음에 들었다.

 바늘을 옮기기 귀찮아서 듣기 시작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들으면서 생각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사랑타령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역시 사랑이 제일 재밌긴 하지. 그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이 드는 건, 내 또래였던 엄마는 이 지독한 사랑타령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처럼 순간순간 헛웃음을 지었을까, 아니면 엄마는 이보다 더 지독한 사랑타령을 했을까. 월급이 50만 원이던 시절에 50만 원을 주고 턴테이블을 사고, 5,000원을 주고 이 LP를 사 모았을 만큼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러니까, 엄마의 낭만이 조금씩 궁금해졌다.

 나는 엄마랑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엄마는 나랑 친구가 되기에 낭만이 없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집 곳곳에 엄마의 낭만이 남아있었다. 쌓여있던 LP가 그렇고, 한문으로 쓰인 시집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낭만타령하는 딸이 그렇다. 낭만이 없다고 생각한 엄마에게서 나는 늘 낭만을 보고 살았다.

 혼자 가만히 듣던 턴테이블 앞에서 엄마를 부른다. 카페인을 먹지 않는 내가 굳이 디카페인 원두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놓는다. 형광등은 낭만이 없으니까, 책상 위 조명을 켠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 혼자 듣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재생한다. LP가 돌아가는 소리와 바늘의 긁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종환DJ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예전에 엄마는 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묻는다. 어두운 방에 언뜻 비추는 조명으로 엄마의 발개진 얼굴이 보인다. 그 시절 엄마의 낭만과 지금의 낭만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엄마가 낭만이 없다고 생각한 건, 내가 단 한 번도 엄마의 낭만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낭만을 가지고 사는 엄마. 사느라 낭만을 숨겨질 수밖에 없던 엄마. 다시 우리 집에 있는 모든 LP가 턴테이블 안에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와 낭만을 만든 이 순간을 영원토록 머금고 싶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글로만난사이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