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에 필요한 3가지 전제 조건은 명확한 목표, 도전과 숙련도의 균형 그리고 즉각적인 피드백이라고 했다. 명확한 목표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분명히 알고 있는 거다. 도전과 능력의 균형이 맞다는 것은 과제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지 않고, 나의 실력과 딱 맞다는 것을 의미하며 약간 벅차지만 해낼 수 있는 난이도를 뜻한다. 그리고 내 행동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실제 몰입을 하면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 강도 높은 집중 : 아무 생각 없이 '지금 이 순간'에만 완전히 빠져 든다
- 행동과 자각의 합일 :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와 '그 행위 자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느껴진다
- 반성적 자의식의 상실 : '내가 어떻게 보일까?'하는 자기 생각이 사라진다
- 통제감 : 내가 이 활동을 완전히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 시간 감각의 변화 : 시간이 너무 빨리 가거나("벌써 끝났어?") 느리게("아직 이 정도밖에 안됐어?") 흐른다.
- 자족적 경험 : 활동 그 자체가 보상이 된다. 외부의 보상 없이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가 생긴다.
'몰입이라… 내가 이렇게 몰입을 한 적이 있던가?'
라프는 생각했다.
3가지 전제 조건 중에서 도전과 숙련도의 균형 측면에서는 적절하게 이루어졌던 때가 있다. 라프에게 약간 벅차게 느껴졌지만, 해낼 수 있는 정도의 과제가 주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명확한 목표'에서 막혔다.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 라프의 인생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면 '즉흥적'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해볼래?'라고 제안하면 '좋아요!'라고 대답하고 덥썩 라프에게 내민 그 손을 잡고 따라갔다. 목표가 없으니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라프의 인생을 돌아보면 '목표를 가지고 몰입했던 순간'이 없지는 않았다. 고3 수능을 앞두고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겠다는 간절한 목표가 있었다. 1년간 완전히 몰입했고, 결국 목표를 이뤘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미국 워킹홀리데이, 동아리, 학생회, 교내외 활동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덕분에 대학 4학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에 정말 많은 라프의 지인들이 달려 와 주었다.
첫번째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도 목표가 있었다. 늘 수학선생님의 꿈꿔온 라프에게 고등학교 2학년 때 파일럿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래서 첫 직장에서 5천만원을 모으면 항공유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영업이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5년의 시간동안 빚만 남긴 채 다시 한번 라프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또 다른 몰입의 경험은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 그 분의 제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였다. 그래서 그 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 3년간 도전했다. 연구원 5기 도전에서는 서류에서 탈락, 6기에는 2차 레이스 탈락했다. 그리고 세 번째 도전인 7기 때 마침내 선생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라프 인생 최초로 진짜 스승님이 생겼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살아 온 걸까?'
라프는 문득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몇 번의 단기적인 목표 외에 라프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를 설정한 적이 없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명상을 시작하고 5년간 매일 새벽 4시 30분 절에서 하는 새벽 예불에 빠짐없이 참석할 정도로 명상에 진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명상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레벨에 도달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워보긴 했다. 하지만 하다보니 이 목표는 삶과는 꽤 많이 동떨어져 있었기에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마흔 두살의 라프에게 찾아 온 인생 2회차의 고민.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으로 살 것인가?'
이 세상에 태어난 소명,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날 때는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소명을 찾아서 신나게 놀듯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하고 그냥 살다가 떠난다. 라프는 자신의 소명을 찾고 싶었다. 작가 보도 쉐퍼는 '부의 레버리지'라는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하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일들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일들마저 사랑하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게다가 아무리 유쾌하지 못한 업무라고 해도 지금 당장 그만둘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중략)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일을 해낼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중략) 모든 업무를 사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단순한 비결은 매사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작을 완성하듯 일하는 것이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예후디 메뉴인은 몇 주 내내 매일 밤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매일 저녁 진심을 다해 연주한다면 절대로 지루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신도 한 가지 일을 처리할 때 매번 최선을 다하라.
작가는 이렇게 매번 최선을 다해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면 흥미가 생긴다고 했다. 또한 그때의 노력이 유능함을 낳고, 노력 자체만으로 기쁨이 되며, 노력과 기쁨을 통해 자부심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라.'
라프는 또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라프는 무슨 일을 할 때 자주 다른 일을 함께 생각하는 편이었다. 다시 말해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할 때 '내가 이 경험을 완전히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반면 보도쉐퍼는 사람들이 종종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이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는 핑계일 뿐이며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의 성공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곧 '자신감'이 없다는 말과 연결된다. 작가 보도쉐퍼는 자신감은 자신을 신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는데, 이 자신감을 갖추려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야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라프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당신을 모르는 누군가의 말을 믿지 마라"
- 보도쉐퍼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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