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네가 좋아하는 시인은 될 수 없었지만,
네가 좋아하던 시인의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비록 네가 좋아하는 시인은 될 수 없었지만>
유튜브를 보다 발견한 한 댓글이 내 뇌리에 꽂혀 며칠 머리를 맴돈다.
밤새
이 와중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너였네
너도 사실
다음 예쁜 사랑을 하면
날 하얗게 잊을 걸 아는 게
그게 아쉬운 거야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너였네
눈이 내리고 있다.
날씨와 이 노래가 참 잘 어울린다.
눈이 오면 어김없이 그가 떠오른다.
그와 보낸 첫 겨울
어느 아침,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설렌나머지
방방 뛰며 눈 소식을 전했다.
함께 다른 공간에서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30분 뒤에 만나."
첫 겨울, 첫 눈은 특별하다며
함께 눈을 맞자고 달려온 그는 꽤 로맨틱했다.
그러나 30분 만에 눈이 그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그날 그와 눈을 맞지는 못했다.
눈을 함께 맞지 못했음에도
나는 눈이 내리면 그날이 떠오른다.
눈을 보자마자 그에게 전화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눈이 내리면 네가 떠오른다.
낮엔 그대가 좋아했던 공원에 갔네
헤어진 연인과 마주쳐 본 적이 있는가.
종종 오랜만에 마주친 그에게 인사하는 상상을 한다.
이왕이면,
하필 그날 유독 그가 보고싶어
그가 좋아하던 곳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하필 그때
그의 옆에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연남동 구석에 위치한 오코노미야끼집 '소점'
음식이 맛있는 것은 물론
소점 특유의 도란도란한 분위기가 좋다.
우리도 사장님께서 기억하시는
단골들 중 하나였다.
그와 헤어지고는
소점이 가고 싶은 날에도
그를 마주칠지 몰라 가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와 헤어진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그와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홀로 그 근처를 산책했었다.
너는 요즘도 소점을 가는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그 곳에 데려갔을지.. 궁금하다
이문세 그리고..
너의 노래방 18번이었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최근에 친구가
이문세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는 나를 보고
박장대소했다.
어쩌다 이문세를 좋아하게 됐냐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얼버무렸다.
옛날 노래 뭐가 좋냐며 투덜거리던 나에게
그는 이문세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나를 안아주던 남자친구는 떠났지만
노래는 남아 나를 위로한다.
나는 행운아다.
비록 네가 좋아하는 시인은 될 수 없었지만,
네가 좋아하던 시인의 말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비록 네가 좋아하는 시인은 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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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구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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