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꼬지기입니다.
최근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추워질 것을 예고하는 그 첫눈은 왠지 모르게 보고 있자면, 마음에 내리는 포근한 겨울의 꽃 같기도 해요. 오늘 저희가 드릴 선물도 첫눈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닿아 활짝 피기를 소망합니다.
10월 둘째 주, 『모꼬지기』 7호에는 깊고도 고요한 물결을 그리는 아티스트 '양창근', 아름다운 시간을 보관한 '풍월당', 그리고 구독자님의 아픔에 안녕을 고하는 플레이리스트까지, 총 세 가지 이야기를 선물해 드립니다.
⭐ 뮤직스타뜰
깊고 고요하게 울리는 물결, 양창근
by 현
종종 솔직한 우리네 감정을 마주하곤 한다. 적나라한 실제에 부끄러워지기보다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고 그것에 매료된다. 여러 소리와 몸짓으로 짜인 형형색색의 실타래보다 아직 포장을 풀지도 않은 단색의 실타래가 더 눈에 끌리기도 한다. 남다름과 새로움이 아닌, 그런 소박함을 들고 찾아온 이가 있다.
뮤직스타뜰 일곱 번째 아티스트, '양창근'을 소개한다.
싱어송라이터 양창근은 살롱 바다비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첫 번째 EP [겨울비]로 데뷔했으며, 그만의 담백한 음악들로 마니아층을 구축했다. EP 발매 직후 군입대로 잠시 활동을 쉬었다가, 제대하고 나서는 사이키델릭 성향의 록밴드를 결성하여 솔로 활동 때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밴드 해체 후 2014년 발매된 첫 번째 정규앨범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를 중점으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들을 선보였다. 한편 음반 활동 이외에도 오디오 플랫폼 랏도의 밴드뮤직(랏밴뮤)를 통해 DJ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옛 CM송이나 동요, 80~90년대의 댄스 음악들을 주로 소개했으며, 최진영 감독의 장편영화 <태어나길 잘했어>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정규 1집 발매 후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양창근은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공백기 동안 여러 곡을 스케치하며, 스스로 깨지고 다시 시도하며 음악적으로 한 단계 변태했다. 이후 2018년 발매된 싱글 [해몽]을 시작으로 싱글 [크리스마슈], [Rainy Season]에서는 양창근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었고, 2021년 발매된 두 번째 정규앨범 [Wave]에서는 더 확장된 양창근만의 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끄적끄적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
2009년의 EP [겨울비]부터 2014년 첫 번째 정규앨범 [오래된 마음]까지, 양창근은 포크 음악에 집중했다. 그의 문법은 대체로 간단했다. 아르페지오나 잔잔한 스트로크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고, 여린 노래와 꾸밈없는 노랫말을 얹는다. 누군가의 시선을 확 이끌 요소를 활용하기보다는 연주와 노래의 조화에 집중한다. 특히, 그는 스쳐 가는 인연들 속에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린다. 이를테면 [오래된 마음]에 실린 <우린>과 <5AM> 같은 노래가 그렇다.
"그대 지금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 들었다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꿈꾼다
행복을 꿈꾼다 행복하길 바란다"
양창근의 <5AM> 中
특별하게 뛰어난 기교나 매혹적인 장치 없이 기타 반주에 툭툭 내뱉는 노랫말, 심지어 투박한 숨도 갈무리하지 않은 그의 음악은 말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간 것들이 아닌, '지나감'이라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그러나 완전한 소년도 아닌 그의 목소리는 꽤 오랜 시간 고쳐 쓴 편지처럼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확실한 울림을 선물해준다. 그렇게 그는 우리를 다독인다.
일렁이며 벅차오르는 마음, 소리, 몸짓 그리고 물결
마음과 기억들은 시간 순서도, 감정선도 뒤죽박죽 매번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게 밀려와 그 앞에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양창근의 두 번째 정규앨범 [Wave]는 사랑했던 존재와의 만남과 떠남, 그리고 돌아봄으로 요동치는 여러 감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은 충격에 빠르게 퍼지기도, 때로는 사방으로 잔잔하게 흩어지기도, 다른 물결과 만나 새로운 물결을 이루기도 한다. 이것이 양창근의 ‘물결’이다. [Wave]에서는 기존 양창근의 사운드와 다르게 모던록과 신스팝 등 다양한 스타일을 접목했다. 그러나 정갈하고도 담담했던 양창근만의 매력은 여전하다.
정규앨범 [Wave]에는 감정이 요동치는
파도 앞에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작별을 고하는 'Big Wave'부터 텅 빈 마음으로 긴 밤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밤워크', 무모하리만치 풋풋한 마음과 애타는 심정을
담은 '원한다면', 떠나는 이와 남는 이 모두에게 전하는
힘찬 안녕 '팡파르', 지나가 보면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인
우리네 '시네마',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한 '알러뷰', 온 우주에서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은 '우주대폭발', 바닷속 고요히 잠겨있다가 떠오르며 느끼는 격정의 하모니 'The Sea'까지, 총 여덟 개의 트랙을 엮어 대중에게 진한 잔상을
남겼다.
“상처 많은 여린 마음에
아파하는 나의 친구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그 속에서 나와 춤춰줘”
양창근의 <알러뷰> 中
🎵 음악주저리
"아름다운 시간을 보관하다" — 압구정, 풍월당
by 영
pictured by 현
도산공원과 압구정 로데오역 사이, 젊음이 가득 찬 거리 사이에는, 조금 낯설지만 아름다운 시간을 보관하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찬란한 시간의 가치를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은 ‘풍월당’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지성인들의 공간
2003년, mp3의 등장으로 음반 시장이 축소되고, 이에 따라 비주류로 여겨지던 클래식 음악이 아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만연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정신과 의사이자 클래식 애호가인 박종호 대표는 ‘올바른 아름다움’의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술을 향유하고 지성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국내 첫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이 등장한 것이다.
2003년 조그마한 클래식 음반 매장으로 시작했던 풍월당은, 이제 건물 4층 ‘풍월당’ 클래식 음반 매장과 ‘로젠카빌리에’ 카페, 건물 5층 ‘구름채’ 강연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음반 매장 풍월당]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4층으로 올라가면, 정면에는 카페 로젠 카빌리에, 오른 편에는 음반 매장 풍월당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 그 어딘가의 실재한 클래식 음반을 보관하는 풒월당은 클래식을 접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공간을 살펴보다 보면, 특이한 점이 몇 가지 보인다. 일단 들어서자마자, 음반마다 정성스레 붙여진 음반 추천 글이 시선을 뺏는다. 클래식 초보자들이 거부감 없이 음반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추천 글에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풍월당의 정성이 담겨있다. 음반뿐만 아니라 오페라 총서, 클래식 전문 서적, 문화 예술 여행 시리즈 등 출판 업계에서 등한시되었던 책들 또한 풍월당에서는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풍월당에서 출간하는 ‘풍월한담’은 매 호마다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만나며, 음악과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매장을 둘러보면, 음반 진열장 아래, 빈틈없이 채워진 사인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풍월당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사인들은, 음악의 공론장으로서 풍월당의 정체성을 전시한다.
풍월당은 현재 3만여 장의 클래식 음반을 갖춘 ‘국내 최대 클래식 음반 전문점’이다. 풍월당은, 이미 알려진 클래식 음반뿐만 아니라, 취급되지 않는 마이너 음반도 소개한다. 실제로 풍월당은 수입상들에게 음반을 추천해 한국에 들여오기도 하고, 폐반됐던 음반을 살려내기도 했다. 클래식 전문가들은 절판되었거나 찾고자 하는 희귀한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곳을 방문한다. 듣고 사라지는 음악이 아닌, 느끼고 소장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풍월당은 지나간 시간을 유람하며 잊혔던 보물들을 찾아낸다.
[카페 로젠카벨리에]
음반 매장뿐만 아니라 카페를 갖춘 풍월당은 클래식 음악에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4층에 위치한 카페 로젠카발리에는 빈을 묘사한 라히르트 슈트라우스의 동명 오페라 제목에서 따왔으며, ‘장미의 기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00년대 음악과 예술의 중심지였던 빈의 카페 문화를 재해석한 공간으로, 클래식하고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카페에 모여 예술과 시대를 논했던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예술가들처럼, 로젠카발리에 역시 21세기 음악을 논하는 서울의 클래식 애호가들의 담론의 장이 되고 있다. 카페 로젠카빌리에는 음반을 구매한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음반을 구매할 시 무료로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강연 공간 구름채]
5층에 위치한 구름채에서는 매 달 클래식과 관련한 강의, 특강, 쇼케이스 등이 열린다. 풍월당에서 이루어지는 강의들과 행사들은 모두 구름채에서 진행된다. 특히, 풍월당에서 진행하는 강의 ‘풍월당 아카데미’는 오페라 애호가이면서 클래식 전문가인 풍월당 박종호 대표와 국내 최고 클래식 평론가들의 강의로 이루어진다. 처음 인기가 없는 클래식 음반을 판매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아카데미는, 이제는 음반 매장보다 강의실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질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클래식 강의는 단순히 음악이나 오페라가 아닌 역사, 문학과 철학, 인문학 전반에 대해 논하며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최상의 음악 감상을 제공하기 위해, 하이앤드 사운드를 추구한다는 스위스제 골드문트(GOLDMUND) 오디오 시스템을 사용한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음악 감상실 중 이 정도의 하이앤드 사운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정성 들여 준비된 공간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선사하겠다는 풍월당의 노력이 돋보인다.
음악과 시간을 위한 공간
2003년에 처음 시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풍월당은 음악과 함께 보전된 아련한 추억을 선사한다. 풍월당은 ‘변하지 않음’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풍월당은 변함없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관한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또 이 공간에서의 시간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오늘 하루쯤은 ‘올바른 아름다움’의 가치를 보관한 풍월당에서, 아름다운 시간의 음반으로 보관되는 것은 어떨까.
💿 둠칫두둠칫
도망쳐 온 곳이 여기라서 다행이야
by 현
“네가 되어서 가라앉는 맘
밤새 대신 울어주고
볕이 드는 아침만
남겨주고 싶어요”
김현창의 <아침만 남겨주고> 中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끌고 저 깊은 심해로 가라앉게 해요, 절망감이라는 감정은 다시 일어날 용기를 없애버려요,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아무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요. 오늘은 그 감정에서 도망쳐 멀리 멀리 떠나볼까요.
이젠 안녕을 보내봐요, 구독자님의 아픔에게.
모꼬지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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