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아✏August 5w.

보라돌이는 예쁘지 않았거든

2024.08.30 | 조회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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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아

30대의 나 자신 알아가기 프로젝트✏

8월이 저물어갑니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뜨거운 여름의 더위도 한 풀 꺾이기 시작했네요.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해져 에어컨 없이 자기도 하고, 슬슬 나시들을 정리해 넣을 때가 되었나 싶기도 합니다.

지난 호에 이어 오늘도 선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남는 선물, 하나씩은 있으시죠? 혹시 오늘 저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나는 선물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기억에 남는 선물 이야기

내가 일고여덟살 쯤 됐을 무렵인가, 꼬꼬마 텔레토비라는 TV 프로그램이 엄청나게 유행했어. 알지?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하는 그 뚱뚱이 인형들 말이야.

지금보면 딱히 귀엽게 생긴 캐릭터도 아니고, 그 넓은 동산에 자기들끼리만 “아이 조아~” 하며 하하호호 지내는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당시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가 몰라.

아무튼 선풍적인 유행이었던 만큼 텔레토비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도 불티나게 팔렸겠지? 특히 배에 홀로그램 스티커가 붙여진 인형이 큰 인기였어.

나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텔레토비 인형을 갖고싶었어. 인형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친구들이 하나씩 갖고있으니까 괜히 나도 갖고싶더라고.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텔레토비 인형을 받았어! 힘을 주면 퐁신퐁신 눌리는 그 반짝이는 포장지를 보며 얼마나 기뻤는지.

문제는 나에게 두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는 거야. 내가 일곱살 쯤이었으니 동생은 네다섯살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미운 네살의 시기를 지나던 때였겠지.

어디선가 들었는데, 형제지간의 어린이 선물을 사줄때면 되도록 똑같은걸 사주라더라. 어른의 시각에서는 각각 다른 장난감을 주면 같이 가지고 놀겠지- 싶지만, 애들은 “내꺼”가 엄청 중요하잖아. 서로 맘에드는 장난감을 갖겠다고 싸우고 울고 소리지르고.. 괜히 좋은 마음으로 선물한 사람만 낭패 볼 수 있다고, 같은 선물을 사는게 부모도 마음 편하다고 그러더라고.

현명한 방법이야. 반짝이는 포장지를 벗기자 내 손에는 보라돌이가, 동생에게는 뽀 인형이 있었어. 혹시 모를까봐 설명하자면 보라돌이, 뚜비는 각각 보라색과 연두색의 남자캐릭터, 나나와 뽀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여자캐릭터야. 주로 나나와 뽀는 예쁘고 귀여움을 담당해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보라돌이와 뚜비는 장난꾸러기 사고뭉치였어. 일곱살 소녀의 최애 캐릭터는 분명 아니었을거란 말이지.

동생은 뽀 인형을 안고 정말로 기뻐했어. 우와 뽀다! 하면서 행복해하던 표정이 거짓말 아니고 정말 생생하게 기억나. 반면 나는 표정 관리 실패. 우와.. 보라돌이다! 뒤늦게 좋아하는 척 해봤지만 나도 뽀가 갖고싶었는데, 아니면 나나라도.. 하는 마음에 더이상 그 선물이 기쁘지 않았어. 참는다고 참아봤지만 속상한 마음이 감춰지지 않았나봐.

일곱살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쿨한 척을 하며 동생에게 “나도 뽀 한번만 안아볼게. 우리 바꿔서 안아보자” 했는데, 절~대 싫다고 뽀를 품에서 떼어주질 않더라. 결국엔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터졌던 것 같아.

살면서 받았던 많고 많은 선물 중에 유독 이 텔레토비 인형이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사실 그 당시에 속상했던 기억보다는, 어느정도 머리가 커진 이후에나 알게 된 그 인형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우리 엄마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 였던걸지도 몰라.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지 못했다는 어떤 죄책감?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 쇼핑이 활발하지 않을 때 이기도 하고, 인기있는 상품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으니 얼마나 구하기 힘들었겠어. 게다가 우리 집은 그렇게 여유있는 형편도 아니었거든. 딸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기 위해 그 인형을 찾고 찾아 결국은 발견했을 때, 우리 엄마아빠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고보니 지금의 내 나이쯤 됐겠다.) 엄마아빠라고 나나를 안 사고싶었겠어. 그나마 비인기 캐릭터였던 보라돌이가 겨우 남아있었던걸지도 모르지. 잔뜩 기뻐할 우리를 기대했는데, 보라돌이가 싫어 우는 나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보라돌이 인형은 한동안 내 침대 구석에 놓여있다가 기억도 안나는 언젠가 버려졌겠지. 동생이 뽀 인형을 들고 있는 사진은 많은데 나는 없는걸 보면 역시나 그리 애지중지하진 않았나봐. 그 인형이 버려질 때가 되서야 우리 엄마 아빠의 마음 한 켠에 있던 작은 짐도 같이 버려졌을거라 생각해.

이제야 아주 조심스럽게, 겨우 이 지면을 빌려 말하자면, 그 보라돌이 인형은 나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기억만은 정말 소중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그 마음만으로 충분한 선물이었다고, 당시에는 몰랐어도 지금은 충분히 다 안다고 말이야. 그 때 당시 실망감에 전하지 못했던 감사 인사 까지도 전해진다면 더 좋겠고 말이야.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우리 자매의 어린 시절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우리 자매의 어린 시절

2024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게 믿겨지세요? 남은 3개월을 잘 마무리해서 그래도 행복했던 올 한해로 기억될 수 있도록 부단히 힘써야겠습니다.

그럼, 다음 호에서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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