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맞이한 도쿄의 아침.
낯선 땅에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혼자서 하는 여행이란 어떨까 하는 설렘을 안고 나갈 채비를 했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디지털카메라와 더불어 일회용 필름카메라도 잊지 않고 챙겼다. 지하철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떻게든 만석인 지하철에 밀어서 타려는 사람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유일하게 멈춰있는 사람이었다.
분주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플랫폼을 따라 느릿하게 걷기 시작했다. 내 작은 보폭마다 시야가 바뀌어가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 틈이 너무나 좋아서 또다시 멈춰섰다. 그리곤 카메라를 들었다. 누군가는 심장이 빨리 뛴다고 느꼈을지 모르는 그 순간, 나는 어느 때보다도 심장이 천천히 뛰는 게 느껴졌다.
쿵- 쿵- 쿵
숨을 들이마시고 네모난 뷰파인더를 통해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 시간은 아주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마치 영화가 시작되기 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영화관처럼, 컴컴한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가 그 모습을 감상했다. 그리곤 느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런 거구나.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세상의 단편을 천천히 바라보고,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이게 내가 바라는 여행이라는 걸 깨달았다. 디지털카메라로 찍다가도, 이 순간만큼은 필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을 필름 카메라로 한 장 더 촬영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을 천천히, 많이 걸었다. 많은 곳을 보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다니지 않았다.
일상에 스며들어, 섞이고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천천히 보고, 오랫동안 봤다.
도쿄에 혼자 머무는 동안 전망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전망대가 있는 건물 앞에서 아무리 고개를 젖혀 올려다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아서 어느 세월에 올라가나 싶었는데,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니 순식간에 전망대에 다다랐다. 귀가 먹먹해져 침을 몇 번이고 삼켜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누가 안내해주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환하게 빛나는 곳으로 향했다.
빛을 따라가니 커다랗고 높은 통유리로 둘러싸인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를 마주한 첫인상은 눈이 부셨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람들이 창문 앞에 일렬로 빙그르르 둘러앉은 게 보였고 도쿄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 아름답다.’
한참을 멈춰서 바라만 보았다. 다들 유리창 너머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과 자동차의 행렬, 깜빡이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홀로 낯선 땅에 서 있다는 느낌은 어느새 많은 사람과 더불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묘한 소속감을 안겨줬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같은 풍경이 아니라, 매 순간 매초 변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이 변화되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머물다, 해 질 무렵 전망대 건너편에 보이는 또 다른 전망대를 향해 떠났다.
두 번째 전망대에 다다르자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고, 또다시 고속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침을 몇 번 삼키고 나니 도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전망대는 가운데 커다란 기둥을 중심으로 빙 돌면서 보는 방식의 전망대여서 전시 관람하듯 도쿄의 밤을 보았다.
도쿄의 밤을 마주하니 ’아름답다.’라는 감탄사가 몇 번이고 튀어나왔다.
똑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분명 또다시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걸까. 눈 앞에 펼쳐진 야경은 감격스러울 만큼 멋졌다. 여행은 사람을 쉽게 감동하게 만드는 걸까? 어둠이 찾아온 도쿄는 수많은 빛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투영된 내 눈동자마저 반짝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저 멀리 우주를 바라보는 느낌, 아니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 맞으려나. 나는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전망대를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멀미 날 정도로 돌고 돌았다. 폐장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향했다.
혼자 있는 동안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그 순간을 오로지 느끼고 카메라로 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풍성했다. 매 순간 눈이 즐거워서인지 마음마저 풍요로웠다.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도쿄의 낮과 밤을 내 눈과 마음에, 그리고 카메라로 담았다.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너무나 재미없는 일정이었을지 모르는 그 순간이 내게는 너무나 재미있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함께해서 즐거운 여행이 더 많았지만, 짧지만 내게 혼자 하는 여행이란 어떤 것인지, 내가 원하는 여행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사진을 찍어낸 디지털카메라보다, 내가 ‘이 순간!’이라고 느꼈던 필름 카메라 사진을 더 자주 꺼내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에 디지털 속에 갇힌 것보다 손으로 매만질 수 있는 것. 나의 시선이 더 머무른 것을 더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나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VANA
주로 낮에는 뷰파인더에 갇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저녁엔 글을 통해 세상을 마주하는 작가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조이
혼자하는 도쿄여행이라니,.,, 생각만해도 벌써 즐겁고 행복할 것만 같네요...:) 별다른 계획을 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혼자 여행의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도 혼자하는 여행이 좋더라구요. 도쿄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다음에 와야지 하며 미뤘던 교토여행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ㅜㅜㅜ 얼른 다시 해외에 마음 껏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서영📓
일년에 두번은 일본 여행을 하면서 소품구경을 하던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었는데 코로나가 때문에 이번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번 글은 마치 도쿄에 와있는 것 처럼 여행의 설렘과 생경함이 잔뜩 담겨있어서 특히 제 취향저격이었습니다. 글쓰시면서도 즐거우셨을 것 같아요. 사적인 여행이라는 이번 주제에 정말 잘 어울리는 무드였던 것 같아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김트루
최근 온전히 홀로 떠나는 여행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글이 새삼 다르게 와닿네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서 오롯이 혼자 떠나고 혼자 지낸 여행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습니다. 그때의 여행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저보다 더 먼곳에서 홀로 다녀오셨지만 장소가 어디든 시기가 언제든 무엇이 중요할까요. 작가님께서 얻으신 것이 있다니 무한한 박수를 담아 보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JR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은 정말 분명하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즐겁게 읽었어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
최서영
저도 여행에서 보았던 불빛이 내 동공에 옮겨붙는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살림살이가 팍팍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거 같아요. 그 중 하나가 여행이겠죠. 도쿄 여행에서 사진 많이 찍으셨겠죠? 언젠가 공유 부탁드립니다. ㅎㅎ
의견을 남겨주세요
작은방
혼자 여행을 떠나보면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기도 하고요. 도쿄 좋아하는데 혼자가셨다니 부러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