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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함께 행복하기

2022.11.03 | 조회 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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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그야말로 안부 인사를 나눠야 할 때라 편지를 씁니다.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아요. 유튜브에는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지 않고. 인스타그램 피드도 모두 뜸해졌습니다. 소소하게 찾은 일상의 행복을 온라인에 공유하던 사람들도 함부로 행복하다 이야기할 수 없는 때입니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 사람은 눈치를 보고 있고 가게를 열어야 하는 사람은 망설이고 있지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항상 자영업자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코로나로 겨우 큰 산을 넘은 그들이 또 얼마나 애타는 나날을 보낼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이 사태로 저의 우울이 얼마나 깊어질지도요.

 

세월호 참사가 뉴스를 본 것은 어느 식당 티브이에서였습니다. 만삭이었던 저는 그 뉴스를 보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잃은 상상을 하며 배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믿기지가 않아서 안전한 게 틀림없는 아이를 계속 확인하고 싶어졌지요. 학대받아 사망한 정인이 뉴스를 봤을 때는 매일 아이와 웃으며 행복해할 때마다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해맑게 웃은 제 아이의 얼굴 뒤로 무표정한 얼굴로 죽음을 기다리는 정인이의 멍든 얼굴이 떠올랐어요.

 

믿기 힘든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들의 부모가 되어 무너집니다. 내가 내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한 만큼 슬퍼집니다. 내가 잘 살려고 발버둥 쳐봤자 세상은 엉망이고 끔찍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구나 허무해집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이런 시간 속에서도 내 삶은 흔들림 없이 이어져나가야 한다는 것. 내가 느끼는 무력감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피해자나 이 사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걸요.

 

어제는 소풍을 가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하원 길에 과자 몇 개를 챙겼습니다. 유치원 계단에서 조르르 나오는 아이들과 운동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지요. 소박하지만 우리들만의 가을 소풍이었습니다.

단풍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분노에게 내 일상의 자리를 모두 내어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남은 가을을 즐겨주세요.

 

22.11.3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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