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5. 마흔 일기 / 섹스리스

어쩌나 땡기지가 않는걸

2022.10.04 | 조회 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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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뉴스레터를 한 달에 두 번 보내기로 약속하고 나서는 새로운 달이 오는 게 기다려지네요. 사실 글을 빨리 보내고 싶어서 일찌감치 써놓았는데, 마지막으로 읽어보려고 틈을 노렸지만 주말이라 계속 남편과 붙어있어 불가능했어요. 제 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차마 남편을 옆에 두고 섹스리스에 대한 글을 퇴고하자니 양심에 찔렸나봐요.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이제야 풀어냅니다.

글도 글이지만 당최 어떤 사진을 넣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19금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죠. 수녀의 삶을 살고 있으니 고급 유머라 치고 성당 사진을 올릴까 하다가 말았네요.

 


 

5. 마흔 일기 / 섹스리스

어쩌나 땡기지가 않는걸

[일러두기] 당기다가 표준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섹스는 당기는 게 아니라 땡기는 거라 땡기다로 표기합니다.

 

새벽 5:50분 남편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잠귀가 밝은 편이라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출근하기는 너무 이른 시간. 아들과 같은 침대에서 자던 남편이 딸과 내가 누워있는 아래 매트리스로 슬쩍 내려온다. 한 손은 내 가슴 위에 얹고 다른 한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를 향하면서.

"출근 안 늦어?"

"6시 반에 나가면 돼."

부지런하기도 하지. 밤에는 피곤해서 안 한다니 아예 알람을 맞춰 놨구나.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그날은 관계를 가졌다. 3개월 만이었다.

 

한동안 생리가 뜸해서 산부인과에 갔었는데(단순한 점검차 방문이었다) 그걸 안 엄마가 남편의 정관수술을 재촉했다. 그러다 너 애 생기면 어쩔 거냐고. 겨우 애 둘 이만큼 키워놨는데 또다시 고생할 거냐고. 그런 엄마에게 사실 우리의 성생활은 수녀와 스님이 따로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면 안심하시겠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또 그런대로 부모에게는 걱정거리가 될 테니. 

 

오은영 박사님이 티브이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부부 관계 횟수가 한 달에 한 번 미만이면 섹스리스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섹스리스가 맞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둘째가 태어나고 부터 본격적이 된 것 같다.

 

"야 웃기지 마 너한테 술과 섹스를 뺀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수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무척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문희정이? 천하의 문희정이? 일찍이 미성년일 때부터 진지한 연애를 시작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열한 사랑을 나눴던 내 전적과 함께, 신혼여행지에 바이브레이터를 챙겨갔던 남편의 일화까지 뜨거웠던 우리 사이가 이렇게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것을 모두들 믿지 못했다. 하긴 옛날에는 쉴 틈 없이 연애하고 사랑 없이는 죽을 것처럼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애 키우느라 힘들어서 잠깐 그러는 거 아니겠냐고 내 상황을 모르는 친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연애를 7년 했는데도, 결혼해서 한 집에 사는 건 또 달랐는지 신혼 초에는 거의 매일 관계를 했다. 겨우 하루 건너뛰면 우리 한 지 오래되지 않았냐며 남편이 재촉했고 나도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부부가 되니 더 불타올랐다. 그런 우리의 부부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 하나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느슨해졌다. 여느 부부가 다 그렇듯 자연스러운 단계였다. 그러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으로 의도적으로 관계를 갖지 않게 되었다. 무척이나 기다리던 아이라 서로 조심스러웠다. 아직은 초기니까, 중기라도 혹시 모르니까, 만삭이니까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를 피했다. 내가? 아니 남편이. 그 당시 남편 회사에 임신 중에 아기를 잃은 아빠 직원이 있었다고 했다. 아기가 잘못되면 부모는 자기에게 원인을 찾듯이 그 직원도 혹시 모르니 부부관계를 조심하라고 남편에게 신신 당부 했다고 한다.

 

뱃속에 아들을 품고 있으면 엄마의 성욕이 남달라진다는 속설을 임산부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인지, 남편이 해주지 않아 더 애가 탔는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그때 자주 섹스가 땡겼다. 몇 번 직접적으로 얘기도 해봤지만 거절당하자 나중에는 그래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더 바라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냉대가 그때의 무의식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걸 핑계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린 것 같기도 하고.

 

왜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은 걸까. 진심으로 나는 남편을 사랑하나 아니면 남자 말고 가족으로 살고싶은 것일까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애정이 없어졌다고 하기에는 섹스 후 만족감은 높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 기분이 좋았다. 화장도 안 하고 할머니 같은 옷만 입는 날 예쁘다 해주는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었으므로 고맙기도 했다. 이제 포옹을 하면 가슴보다 배가 먼저 마중 나가는 몸매가 되었는데도 꾸준히 관계를 시도하는 그의 미적 감각이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남편에게 섹시한 파트너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섹스 자체가 너무 귀찮았다. 가끔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가상체험 기계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 없나 상상한다. 애써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서로가 감각이 연결되는 프로그램 같은 게 발명되면 좋을 텐데 진심으로 바란다. 남편이 무언가 시도하려는 게 보이면 그 뒤로 이어질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아예 시작조차 하기 싫어진다. 서로의 몸을 달구기 위해 애무를 하고, 절정에 다다를 때까지 땀을 흘리며 몸을 쓰고, 만족감에 젖어 누워있다가 샤워로 마무리하는 그전 과정이 너무 번거로웠다.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한데도 옷을 챙겨 입고 헬스장에 나가기 귀찮아서 소파에 눌러 앉아 꼼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중년이 되면 오히려 남자들이 아내가 샤워하는 물소리만 들어도 피한다는데 우리는 그 반대였다. 남편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은 일 할 게 많다고 오늘 밤새워야 한다며 거실 불을 켜고 나와 노트북을 켰고, 그다지 피곤하지 않은 날에도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들려고 노력했다. 남편이 슬쩍 일어나 나를 살피고는 눈을 꼭 감고 잠들기 위해 기를 쓰는 날 보며 '애쓴다. 오늘 안 건드릴 테니 편하게 자.' 하고는 거실로 나갈 때도 있었다.(거실에 나가서 뭘 하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가끔은 잠들기 전에 괜히 시비를 걸어 무언가 시도할 분위기 자체를 봉쇄해 버릴 때도 있었다. 매일 밤,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은 참으로 가상했다.

 

대체 왜 하기 싫어하는 거냐고 남편도 나름 이것저것 알아봤나 보다. 자기가 살이 쪄서 남자로서 매력이 없는 거냐고 불쌍하게도 나올 때도 있었다.(무슨 소리, 나는 야동을 봐도 남편과 비슷한 푸짐한 몸매의 남자들을 찾아본다. 조각 같은 몸매는 뭔가 현실감이 없다.) 러브 젤과 초박형 콘돔을 사서 새로운 걸 시도해 보기도 하고, 어디서 배워 왔는지 더 능숙해진 스킬을 선사하기도 했다. 태도를 바꿔서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이건 명백한 이혼 사유라며 나중에 당신이 원해도 그때는 내가 싫을 수도 있는 거라 협박조로 말하기도 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냐며 장난 식으로 경고를 줄 때도 있다. 이 사람 어쩜 이렇게 나를 모를까! 밖에 나가 그 짓거리를 할 에너지가 있으면 차라리 책을 읽겠네. 나는 정우성을 트럭으로 갖다 줘도 싫다. 당신이랑 몇 달에 한 번 하는 것도 귀찮은데 무슨 밖에 나가서까지 그걸 또 하고 다닌단 말인가.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건 섹스보다 배려였다. 피곤한 나를 일으켜 하자고 조르는 걸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당신 피곤할 테니 먼저 들어가 자라는 배려. 나에겐 그게 결혼생활을 만족감이자 섹스보다 짜릿한 감동이다. 욕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혼자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영상을 다운 받아 놓을 정도로 노력을 쏟을 에너지는 없으니 그때그때 땡기는 걸 찾아봤다. 핸드폰만 있으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10분이면 될 것을 둘이 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쓰면서도 뭔가 반사회적 인물 같지만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저녁이 되면 피로감이 절정에 다다랐다. 낮에는 일하고 아이들이 하원하면 놀고, 공부시키고, 먹이고, 씻기고, 정리를 하고, 재우면 이제 오늘 할 일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면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그렇다고 나는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을 테니 정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잘 모르겠다.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로 몇 년을 살고 있다. '당신이 늙어서 그게 안 서도 이혼 걱정은 없으니 좋은 거 아니냐.'라는 내 나름의 농담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진짜 내가 문제라면 마음을 고쳐먹고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면, 이렇게 사는 부부도 있는 거라면, 괜찮을 수 있는 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답답한 마음에 기회가 될 때마다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그들 부부의 관계에 대해 물어봤다. 다들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냐고. 50을 바라보는 선배는 내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며 그런 시기가 있다. 다 지나간다. 이제 남편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게 될 거다.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마치 갓난쟁이 키우는 아기 엄마에게 지금은 그럴 때지, 다 지나간단다. 하는 것처럼.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기였다. 한 달? 삼 개월? 귀엽네. 나는 3년이 넘었어. 우리는 이제 그냥 하우스 메이트지. 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지내? 우리는 아무리 싸워도 그건 해. 너네 진짜 신기하다.라며 우리 부부 사이를 걱정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땡기지가 않는걸.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도 어지간하면 협조해 주고 싶은데 동하지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매달 생리가 시작되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조르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번 달도 못하고 지나갔네라는 미안함. 주말부부가 되고 나서는 마음 편히 자는 평일 밤을 얻은 대신 주말에도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남편에게 미안함이 배가 되었다. 사실은 어제도 밤에 화장실을 가고 싶은 걸 꾹 참고 누워있었다.

남편아 미안하다 진짜.

 

첨부 이미지

 


 

앞뒤로 연휴가 있는 주라서 그런지 마음이 붕 뜨네요. 놀러 가기 좋은 계절이지만 여기저기 환절기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들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아프지 마시고요. 건강하게 또 다음 편지를 보낼게요.

 

22.10.4.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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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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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3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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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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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3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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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제이맘

    0
    about 3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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