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민

#40. 말도 생각도 많은 아저씨가

2024.10.05 | 조회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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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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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새벽까지 하는 포장마차가 있어요. 그 집이 문을 닫는 것을 본 일이 없거든요? 평소보다 늦게 집을 돌아가는 날이면 꼭 들리곤 하는데, 그 주황색 천막을 지붕 삼아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어요. 늘 먹는 건 우동. 우동을 되게 좋아하지만 이 집 우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긴 해요. 그래도 늘 먹는 건 우동, 제일 싼 유부 우동이요. 이렇게 하게 된 건, 그러니까 늦은 퇴근 날엔 포장마차를 들리고, 유부 우동을 시키는 일을 의식해서 하게 된 건 석 달이 안됐어요.

큰 이유는 없이 습관을 만들고 있어요. 단골 포장마차가 있고 단골 메뉴가 있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어요. 언제 종로에서인가 노포에서 산낙지가 다 죽어가도록, 뭐 원래 죽어있는 놈들이지만요, 무튼 산낙지엔 눈길도 없이 소주를 먹는 두 백발 노인을 본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게 타고났다기보다는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습관은 늘 세 살 적에 들여놔야 하는 법이니까 서른이 넘지 않은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고른 포장마차가 집 앞, 그렇게 고른 메뉴가 우동.

사실 포장마차가 완전히 제 취향인 것은 아니거든요. 좀 더 넓고 쾌적하고, 뭔가 드라마에서는 여름 밤도 산뜻해 보였는데, 현실은 드라마랑 다르니까 적당히 만족하기로 했어요. 우선 집이랑 가깝고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 되니까요. 그 다음엔 우동, 우동은 제가 좋아하는 메뉴이지만 사실 제가 진짜 좋아하는 우동은 냄비우동이에요. 계란과 김가루가 함께 들어간 우동, 가끔은 유부 주머니도 들어있는 팔팔 끓여진 양은 냄비에 담겨 나오는 그 우동 있잖아요. 여기는 약간 잔치국수 그릇 같은 데에 나오는 우동이에요. 분식집 우동이랄까. 이런 우동은 김이나 계란이 주는 그 국물의 비린 맛이 없어요. 또 사장님 성격이 급하셔서 그런지, 술시키면 엄청 빨리나오거든요 무튼 면이 늘 조금 꼬들하달까? 나는 조금 더 이빨에 부드럽게 깨지는 면이 좋은데... 그렇지만 일단 평생 먹을거라면 제일 싼 우동이 베스트라고 생각했어요. 또 포장마차는.. 일단 집 앞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습관을 들여야 했어요. 이 우동을, 이 공간을 내 입맛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죠. 세상 일이 뭐 어디 다 마음대로 되는가요. 완벽한 집과 완벽한 맛을 찾기보단 제가 적응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집 앞에 포장마차가 있는 것도 귀해요. 저는 그 백발의 노인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어온 것인가 생각했어요.

열심히 일을 하고 온 날, 시간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고, 어김없이 포장마차는 열려 있었어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우동을 시켰죠. 엄청 빨리 나오는 소주를 시켰고, 이 공간에 유리는 술과 잔 뿐이었어요. 그들이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말이에요. 곧 우동이 나왔고 한입 먹었는데 맛이 진짜 너무 없는 거에요. 원래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장님이 피곤했는지, 실수로 뭘 더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국물은 미친 듯이 짜고 면은 굳어 있었어요. 젓가락을 딱 놓고 생각했어요. 나 뭐하고 있지. 

저는 동기부여 강사에요. 회사나 학교 등을 돌아다니며 꿈을 불어넣는 그런 일을 해요. 저는 언제나 마음 속에 자신만의 문장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또, 세상에 굴하지 말아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라,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위해 지금에 만족하지 말라고 해요. 제 말이 누군가의 마음의 문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일이죠. 이건 제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책을 찾아 읽던 열 네 살 때부터의 습관이거든요. 아까 같은 가짜 말고 진짜 습관.

근데 웃기죠 제가 동기부여 강사인데 저는 정작 제가 원하는 우동 하나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사실 우동이 문제가 아니죠, 억지로 이상한 습관을 만들고 있어요. 어제도 우동이 정말 별로였지만 이거 내가 좋아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한 편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게 나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나 모르겠어요. 뭔가 죄책감이 들었어요 얽매이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너무 수많은 것들에 얽매이고 있었어요. 얽매이지 말라는 말에 조차도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나 하냐면요 전 이런 것에 아파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진짜 별거 아닐 수 있잖아요. 노포를 잘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포를 자주 가는 걸로 생각하고 살면 되잖아요. 근데 뭔가 아니라니까요. 엄청나게 찝찝해요. 내가 일부러 이 맛없는 우동을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 강제한다는 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억압을 나는 만들어 내고 있고, 사실 이건 제가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정 반대되는 일이라는 거까지 전부요. 

제 마음속 문장은요, 글쎄요 너무 좋은 문장들을 듣고 말해왔는데 정작 내가 빚어낸 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남의 문장을 많이 훔쳤어요. 이젠 누가 말했던 것인지도 몰라요. 저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소리만 낼 수 있는.. 저는 이걸 끊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게는 우동을 그만 먹고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걸 먹으려고요. 그리고 크게는요, 저는 제 가슴속에 박힐 문장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제 마음이 무엇인지, 무엇을 제 마음이라고 할지 말이에요. 전 이런 세련된 앵무새 같은 삶은 싫어요.

우동 하나 가지고 말이 조금 길었죠. 죄송해요 하하하. 그래서 맞다 주문은 어떻게 할까요 뭐 좋아하시는 거 있으세요? 우동만 빼고 다 좋아요.

 

요즘 고민이 무엇이냐는 소개팅녀의 질문에.


추신 / 글

남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연애는 푼수인 조금은 나이먹은 남자가 소개팅에 나간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이런 말을 하지 싶으면서도, 이런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마음으로 뱉는 아저씨의 주절주절

추신 / 그림

나랑 맞지 않은 것에 낑겨 넣는 느낌이 있지만, 하나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다보면 정말 맞는걸 찾을수도 있잖어요? 저는 술을 잘 못해요. 근데 엘피바에서 양주 마시면서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로망이 있어요. 가도가도 술은 안늘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진짜 좋거든요. 내가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해보는게 나를 찾는 과정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진정 자기에게 맞는 것도 알아야하구요. 그게 설령 ‘멋’이 없고 내 ‘감성’이 아니여도 내가 좋아하는거 나랑 맞는거 내가 잘하는건 다 다르잖아요? 다 섞여있는게 내가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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