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모르는 두번째 당신

#24. 나의 서재 소규모 프로젝트 ep.3

2024.06.14 | 조회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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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는 누구일까요?

 

사람을 겉에서 속으로가 아니라 속에서부터 먼저 알아가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글도 참 궁금했고요. 그런데 쓰는 입장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자기소개라는 건 꽤 어려운 일이잖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 관해 탐구하는 걸 좋아했고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늘 상기했고 거기에 시간을 꽤 많이 들였던 저이지만, 그치만 저를 제일 모르는 사람은 저 같고 그리고 또 저는 계속 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저를 멈춰있는 글자들로 표현하는 게 어렵네요.

가장 성가신 건 스스로라는 말을 몇번이고 적어야 한다는 거예요저는 실제로 자의식이 좀 과잉된 편이라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찔려서 주눅이 든단 말이죠그래도 어쨌든 처음에는 이렇게 쓰려고 했어요… 저는 이렇고요또 저렇고요그런데 이럴 때는 그럴 때도 있고요그치만 결국에는 요렇답니다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가끔 울고종종 웃고상처를 받고 또 극복했고요결국에는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너무 뻔하지 않나요전형적이고 바람직하고 그저 일방적인 입장에서만 쓰인 그런 자기소개는… 갖고 싶지 않아요그래서 말인데 읽고 계신 여러분께 부탁을 하나만 드리고 싶은데요혹시 이 글을 읽고… 저라는 사람을 나름대로 정의해주실 수 있나요그렇게 된다면 이 글이 정말로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아요제가 초면에 너무 무거운 부탁을 드린 것 같지만 아무래도 글은 완성을 시켜야 하니까… 여러분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이 글의 끝에서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실 건가요저는 누구일까요저는 저를 드러낼 텐데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저를 좋아하실까요재수없다고 생각하실까요사랑스럽다고성가시다고복잡하거나 단순하다고 느끼실까요?

준비되셨다면 시작할게요.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너무 치우친 것도 좋지 않으니어중간한 모습이 어쩌면 제일 좋은 거라고요그러니 저는 잘 살고 있는 거라고요개성이 확실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했더니 친구가 해준 대답이에요몇 년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왜냐하면 그건 꼭 매력 없다는 말처럼 들렸거든요저는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내가 나를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만큼 남들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에는 저에게서 발견되는 양극단의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다정한 사람 앞에서는 냉정한 사람이 되고 차가운 사람 앞에서는 무른 사람이 되는 나는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그래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어요아무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도 했는데아시다시피그건 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하는 중이에요애써 받아들이다부정하다받아들이려고노력하고 있어요…….

모순은 왜 인생의 진리인 것만 같을까요모두가 평범하지만 모두가 특별해요모든 사람은 선하고 그리고 동시에 나빠요아무래도 인간은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부족한 존재니까요그렇기 때문에 믿기로 하는 것을 하나로 정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어요그런데 저는 왜 자꾸만 두리번댈까요가보지 않은 길만 골라서 궁금해할까요왜 온 세상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제가 뭐라고.

각설하고지금은 저에 관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게 하나뿐인 것 같아요저는 아직 제가 누구인지 정하지 못했어요실은 저뭘 하든지 중간 이상은 하거든요웬만한 건 다 잘 먹고 어떤 스타일을 하든 적당히 잘 어울리거든요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한 가지 일을 위해 마음먹는 게 제일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그런데 하기 싫은 일은 또 죽어도 안 한답니다재미없거나매력이 없거나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모든 일들을 그냥 제껴버려요그래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고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지만 후회는 정말 들지 않아요요즘에는 삶의 방향을 하나로 못박아놓고 그곳만 바라보며 달리고 싶은데 그걸 위한 자잘한 노력들은 하기가 싫은 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저는 차갑고 빨간 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싹싹 비운 빈 그릇 사진을 찍는 게 취미였어요탈색을 해보고 싶지만 머리카락이 얇은 편이라 한 번도 해보지 못 했는데 언젠가 한 번 할 것 같긴 하고요볕이 많이 들어오는 집을 좋아하는데 지금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아서 2년 동안 문득문득 우울한 편이었고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든 생활을 감당할 때 오는 자유를 사랑해요농장 키우기 게임을 꾸준히 하는데 몇 달 전에는 1주년 알림을 받아서 기뻤고요제 자취를 엑셀 파일로 남기는 일이 재미있어서 그동안 다녔던 좋은 공간들을 싹 다 정리해놓았어요장소날짜같이 간 사람들을 정리해놓은 데이터가 벌써 몇 년 치인데 그걸 볼 때면 나 조금 음침한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행복합니다.

누군가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속속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저만의 비밀을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어요소울메이트가 존재한다면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나를 열심히 관찰해주고얘기하지 않은 정보들도 해석해주는 사람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다음 질문은 그게 누구냐 하는 것일 텐데… 아마 그게 타인은 아니겠죠나여야만 하겠죠멋지게 단언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타인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애써 받아들이다부정하다받아들이려고노력하고 있네요.

본격적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잘 오지 않는 기회라서 그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말이 길어졌어요어쨌든 저는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하면서 머릿속 정리정돈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보시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정말로 궁금하네요제가 좋아하는 어떤 친구는 영화나 전시를 보고 나면 남들이 어떤 걸 느꼈는지가 엄청 궁금하대요저는 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냈을 때 남들이 어떤 걸 느낄지가 엄청 궁금해요나중 언젠가 어떻게든 우리가 닿게 된다면그때 꼭 이야기해주세요ㅎㅎ

저는 늘 그렇듯 잔뜩 늘어놓고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떠나볼게요다시 만날 그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추신

음료수 캔에 맺힌 물방울같은 땀이 이마에 맺히는 날들입니다. 괜한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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