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구일까요?
사람을 겉에서 속으로가 아니라 속에서부터 먼저 알아가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글도 참 궁금했고요. 그런데 쓰는 입장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자기소개라는 건 꽤 어려운 일이잖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 관해 탐구하는 걸 좋아했고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늘 상기했고 거기에 시간을 꽤 많이 들였던 저이지만, 그치만 저를 제일 모르는 사람은 저 같고 그리고 또 저는 계속 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저를 멈춰있는 글자들로 표현하는 게 어렵네요.
가장 성가신 건 ‘나’, ‘저’, ‘스스로’라는 말을 몇번이고 적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실제로 자의식이 좀 과잉된 편이라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찔려서 주눅이 든단 말이죠. 그래도 어쨌든 처음에는 이렇게 쓰려고 했어요… 저는 이렇고요, 또 저렇고요, 그런데 이럴 때는 그럴 때도 있고요, 그치만 결국에는 요렇답니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가끔 울고, 종종 웃고, 상처를 받고 또 극복했고요. 결국에는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너무 뻔하지 않나요? 전형적이고 바람직하고 그저 일방적인 입장에서만 쓰인 그런 자기소개는… 갖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 읽고 계신 여러분께 부탁을 하나만 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이 글을 읽고… 저라는 사람을 나름대로 정의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된다면 이 글이 정말로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초면에 너무 무거운 부탁을 드린 것 같지만 아무래도 글은 완성을 시켜야 하니까… 여러분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이 글의 끝에서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실 건가요? 저는 누구일까요? 저는 저를 드러낼 텐데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 저를 좋아하실까요? 재수없다고 생각하실까요? 사랑스럽다고, 성가시다고, 복잡하거나 단순하다고 느끼실까요?
준비되셨다면 시작할게요.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 치우친 것도 좋지 않으니, 어중간한 모습이 어쩌면 제일 좋은 거라고요. 그러니 저는 잘 살고 있는 거라고요. 개성이 확실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했더니 친구가 해준 대답이에요. 몇 년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꼭 매력 없다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내가 나를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만큼 남들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느 날에는 저에게서 발견되는 양극단의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다정한 사람 앞에서는 냉정한 사람이 되고 차가운 사람 앞에서는 무른 사람이 되는 나는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그래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어요. 아무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도 했는데, 아시다시피, 그건 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하는 중이에요. 애써 받아들이다, 부정하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순은 왜 인생의 진리인 것만 같을까요. 모두가 평범하지만 모두가 특별해요. 모든 사람은 선하고 그리고 동시에 나빠요. 아무래도 인간은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부족한 존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믿기로 하는 것을 하나로 정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왜 자꾸만 두리번댈까요. 가보지 않은 길만 골라서 궁금해할까요. 왜 온 세상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제가 뭐라고.
각설하고, 지금은 저에 관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게 하나뿐인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제가 누구인지 정하지 못했어요. 실은 저, 뭘 하든지 중간 이상은 하거든요. 웬만한 건 다 잘 먹고 어떤 스타일을 하든 적당히 잘 어울리거든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한 가지 일을 위해 마음먹는 게 제일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하기 싫은 일은 또 죽어도 안 한답니다. 재미없거나, 매력이 없거나,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모든 일들을 그냥 제껴버려요. 그래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고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지만 후회는 정말 들지 않아요. 요즘에는 삶의 방향을 하나로 못박아놓고 그곳만 바라보며 달리고 싶은데 그걸 위한 자잘한 노력들은 하기가 싫은 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저는 차갑고 빨간 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싹싹 비운 빈 그릇 사진을 찍는 게 취미였어요. 탈색을 해보고 싶지만 머리카락이 얇은 편이라 한 번도 해보지 못 했는데 언젠가 한 번 할 것 같긴 하고요. 볕이 많이 들어오는 집을 좋아하는데 지금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아서 2년 동안 문득문득 우울한 편이었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모든 생활을 감당할 때 오는 자유를 사랑해요. 농장 키우기 게임을 꾸준히 하는데 몇 달 전에는 1주년 알림을 받아서 기뻤고요, 제 자취를 엑셀 파일로 남기는 일이 재미있어서 그동안 다녔던 좋은 공간들을 싹 다 정리해놓았어요. 장소, 날짜, 같이 간 사람들을 정리해놓은 데이터가 벌써 몇 년 치인데 그걸 볼 때면 나 조금 음침한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행복합니다.
누군가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속속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저만의 비밀을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어요. 소울메이트가 존재한다면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나를 열심히 관찰해주고, 얘기하지 않은 정보들도 해석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다음 질문은 그게 누구냐 하는 것일 텐데… 아마 그게 타인은 아니겠죠. 나여야만 하겠죠. 멋지게 단언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도 타인은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애써 받아들이다, 부정하다,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네요.
본격적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잘 오지 않는 기회라서 그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말이 길어졌어요. 어쨌든 저는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하면서 머릿속 정리정돈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보시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정말로 궁금하네요. 제가 좋아하는 어떤 친구는 영화나 전시를 보고 나면 남들이 어떤 걸 느꼈는지가 엄청 궁금하대요. 저는 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냈을 때 남들이 어떤 걸 느낄지가 엄청 궁금해요. 나중 언젠가 어떻게든 우리가 닿게 된다면, 그때 꼭 이야기해주세요. ㅎㅎ
저는 늘 그렇듯 잔뜩 늘어놓고 정리는 나 몰라라 한 채 떠나볼게요. 다시 만날 그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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