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 上

죽은 새의 냄새

2026.04.08 | 조회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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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나무입니다. 1년 만에 쓰는 뉴스레터라니 조금 떨리네요.

더 많은 분들과 제 글을 꾸준히 나누고자 오랜만에 용기를 냈습니다. 잊지 않고 기다려 주신(?) 분들, 그리고 새롭게 찾아와 주신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난주말에 본 국립현대무용단 정록이 안무가의 <개꿈>이라는 공연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보며, 제 메모장에 잠들어 있는 무수한 '개꿈' 얘기들이 퍼뜩 떠올랐거든요.

저는 언제나 분명한 것보다 모호한 것에 끌립니다. 불분명한 경계가 허락하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꿈의 세계는 결코 손에 잡히지 않고 오직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감각만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이것이 제가 꿈의 세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오늘과 다음 주, 두 편에 나누어 보내드릴 이야기는 바로 제 '개꿈'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게 짙은 잔상을 남겼던, 어느 새벽의 기억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작년 10월 21일에 꾼 꿈이니까, 벌써 5개월도 더 지난 일입니다. 그날 새벽 눈을 떴을 때, 목에서 불쾌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잠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생시인지 분간해 보려다, 이내 모든 게 꿈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까지도 꿈속에서 겪은 일을 울면서 일기장에 쓰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고 나서야 꿈속의 일도, 제가 쓰던 그 일기도 모두 허구임을 알게 된 거예요. 그렇게 끔찍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대로 다시 잠에 들면 꿈속에서 적었던 문장들을 영영 잃어버릴까봐 두려웠습니다. 눈꺼풀을 꿈뻑꿈뻑 힘겹게 들어올리며 한동안 벽지에 난 얼룩들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이 환해져서 메모장을 켰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 문장들이 사라지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꿈에서 썼던 그 일기를 한 문장, 한 문장 되짚어 옮겨 적기 시작했어요.


*

 

침대 밑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며칠 전부터 우리 집 개가 안방을 들락거리며 침대 밑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안방 공기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눅눅한 먼지 냄새 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단내가 섞여 있었다.

 

침대 밑에서 둘둘 말린 흰 헝겊을 꺼내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헝겊을 들췄을 땐 시체 냄새가 방 안을 메웠다. 그것이 안에 있는 줄도 까먹고 침대 밑에 이불과 함께 넣어버렸다고 치매 걸린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엄마를 위로하고는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맸다.

 

헝겊 속에서 피와 깃털이 엉겨붙은 작은 몸을 생각했다. 이불이 겹겹이 쌓인 어둠 속에서 피도 몇 방울 흘리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를.

 

썩은내가 진동하는 안방에서 바닥에 이불을 깔아놓고 며칠을 잤다. 부엌에서 칼을 쥘 때면 손이 떨리고 눈이 흐려져 도마 위에 오른 살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살아 있는 개를 키우는 집에서 죽은 새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무릎 위에 잠든 개에게서 죽은 새의 냄새를 맡았다.

 

*

 

그 끔찍하고도 생생한 감각을 잃어버릴까 봐 허겁지겁 두서없이 메모장에 일기를 옮겨 적던 그날 새벽의 제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한동안은 헝겊 속에서 무력하게 생을 마감한 그 여린 새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만난 적도 없는 새가 그리워지다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개꿈'이라고 부르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파편화된 무의식은 어떻게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걸까요? 아침 햇살과 함께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휘발되어 버리는 허상일까요?

다음 주 <개꿈 - 下> 편에서는 제가 왜 이토록 '개꿈'이라는 모호하고 엉뚱한 세계에 끌리는지, 그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지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오늘 밤에는 또 어떤 흥미로운 개꿈의 세계로 가게 될지 기대하며,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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