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점들이 서로를 향해 모여들었다. 미지의 만남을 기약 없이 기다리던 점들에게 때가 왔다. 만날 날을 약속한 적 없지만, 기다림의 냄새를 읽고 서로를 알아보았다. 점과 점이 만난 최초의 자리에 선이 남았다. 선이 된 점들은 더 많은 점들을 끌어모았다. 고대의 세월을 마치고 새로운 생을 시작하려는 꿈틀거림이었다. 그리하여 선과 선이 만나 면이 생겨났다. 이 단계에 이르러 나는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점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점들은 공간에 흔적을 새기는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냈고, 선과 면에 영원히 종속된 채 살아가기를 택했다.
이 이야기는 점들이 모여 내가 된 짤막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점은 수줍고, 면은 솔직하다. 나를 이루는 부드럽고 거칠고 말랑하고 딱딱한 면들 안에, 무한한 수의 점들이 소리 없이 자리한다. 만일 내가 점이라기보다 면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점들의 존재를 얼마간 잊고 살아가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점에서 태어나 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눈을 감고, 내 몸을 이루는 무수한 점들을 감각한다. 존재를 드러내기엔 부끄럼이 많아, 선과 면 안에 숨어 밭은 숨을 쉬는 점들. 내 몸뚱이에는 그런 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수를 다 헬 무렵에는 이미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나지 않을 어떤 작업을 시작한다.
점과 점 사이를 잇는다. 감각해본 적 없는 점 하나를 응시하다가, 한 점과 다른 한 점 사이의 거리를 세심히 측정한다. 이것은 내가 몸을 가진 물리적 존재임을 가장 명증하게 인식하는 방법이다. 점과 점 사이에는 언제나 무한한 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짚을 수 있는 것은 성심성의껏 짚되, 짚을 수 없는 것은 과감히 건너뛴다. 밤하늘을 보며 마음의 선으로 국자를 그리듯, 점과 점 사이를 우연한 선으로 이어간다.
정수리 중앙의 한 점으로부터 모든 움직임이 시작된다. 구름 쪽으로 날 강하게 끌어올리며 시작된 힘이, 목과 어깨를 지나 손끝까지 전달된다. 안으로는 점들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바깥으로는 나를 만지는 공기와 인사한다. 손가락 하나에 숨은 네 개의 점을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건드리며 깨운다. 그런 다음 손끝에 누적된 힘으로 공기를 훅 밀어내면, 손끝이 가슴팍까지 단숨에 딸려 온다. 상체의 가능한 모든 점을 건드린 다음에는 하체로 힘을 내려보낸다. 골반 안쪽의 점들이 움찔거리며 둥글게 말리고, 고관절이 따라 움직이면서 발끝이 커다란 원을 그린다. 발끝으로 빠져나가려는 힘을 자유롭게 풀어두니, 힘이 빠져나간 발가락 사이로 점 하나가 움찔거린다.
나의 몸은 점이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몸을 움직일 때 중요한 것은 점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다. 점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어떤 점과 연결되고 싶은지, 이쯤 되면 다른 점에 힘을 물려주어도 되는지.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면 손끝의 점이 나에게 말을 건다. 발끝으로 간 힘을 다시금 끌어올려, 자기가 있는 곳까지 와달라고. 그러면 내 몸은 발끝의 점에게 허락을 구하고, 손끝의 점을 만나러 긴 여행을 떠난다. 점과의 작별과 재회는 오롯이 점의 명령이 결정한다.
점은 모든 움직임의 계기이자, 나의 생성과 소멸을 모두 목격할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내 몸 안의 점들이 못내 소중하여 죽는 순간까지 모든 점들을 만져보기로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는 기억은 몸 안의 점들이 주는 기억뿐이다. 점은 몸의 모든 자취를 기억한다. 한때 맞닿았던 다른 점들의 질감과 냄새까지도. 그 모든 점들의 기억이 하나로 모여들 때, 나는 마침내 점의 원형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기억이 응축된, 한 생애를 품은 죽음이 사는 단 하나의 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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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무브먼트 리서치 방법론인 '프로세스 인잇(Process-In-It)'의 네 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 키워드인 'Pivotal Point'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Pivotal Point'는 머리 위의 중심에 있는 작은 한 점이자, 이 점으로부터 움직임을 시작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프로세스 인잇'은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예술감독과 김미영 작가가 공동개발한 방법론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교육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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