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재즈 바, 숨죽인 조명 아래 색소폰을 든 남자.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리드를 진동시킨다. 첫 숨 한 모금에 여섯 마디가 흘러나온다. 악보 없는 선율이 기적처럼 이어진다. 손이 가는 대로 키를 짚으며, 흥이 가는 대로 템포를 올린다.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소리를 잡아채며 자유자재로 흐름을 탄다.
고요가 흐르는 방 안, 녹음 버튼을 누른다. 대본 없는 말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다. 준비한 적도, 마음에 담아본 적도 없는 말이 일정한 빠르기로 쏟아져 나온다. 멋대로 쏟아지는 말을, 나를 둘러싼 공기가 부지런히 주워 담는다. 황홀한 즉흥 연주를 마친 남자에게 쏟아지는 박수를 상상하며, 녹음을 중단하고 ‘요약’이라고 친 다음 엔터를 누른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을 가지고 노는 나만의 방식이다.
손가락이 의식을 담대히 앞질러 간다. 성격 급한 음표는 감정보다 먼저 공기 중에 흩어진다. 템포를 올려 숨 한 번에 열두 마디의 선율을 내뱉는다. 미디엄 스윙의 템포에 맞추어 오른발을 까딱까딱 움직인다. 박자가 밀려 말이 느려지지 않도록, 입술 근육과 발 근육의 박자를 맞춘다.
말은 즉흥적일수록 가벼워서 나의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닌다. 탁구공처럼 자음과 모음과 띄어쓰기가 이리저리 튕기고 부딪쳐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이미 말은 저 너머로 가 있다. 즉흥적인 말하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마디와 마디 사이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흐름을 타며 말을 이어가야 한다.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순간만을 사는 말이 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조차 알 수 없게 하는 말이 있다.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말이 있다. 사라져야만 하는 말이 있다.
즉흥적인 말은 가벼이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흩어진 말은 휘발되지 않고 공간에 머무른다. 말을 뱉는다는 것은 공간의 모양과 질감에 나의 문자를 새겨넣는 일. 공간에 각인된 말은 공간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형시킨다. 추억이 새겨진 정류장, 비밀이 새겨진 골목, 고독이 새겨진 빈집. 공간은 말을 담으며 늘어나고 줄어든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어.' 의도하지 않은 말. 통제를 벗어난 말.
그러나, 순전히 즉흥적으로 말을 뱉는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라도 늘 어떤 의미와 의도가 숨어 있지 않던가.
우연은 존재적 우연과 인식적 우연으로 구분된다. 존재적 우연은 순수한 무작위성으로, 양자역학적 우연이라고도 한다. 한 입자가 다음 순간에 어디로 이동할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흥적인 말이 존재적으로 우연하다면, 우리는 다음 순간에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어떤 식으로든 알 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전두엽이 만들어낸 개념을 언어로 변환하여 발화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어떠한 인위적 개입도 없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 벌어진다는 설명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나온 말이, 어떻게든 적막을 메우려고 음운과 음운을 조립해 만들어진 말은 아닐 것이기에.
그렇기에 말의 즉흥성은 존재적 우연이 아닌 인식적 우연으로 설명해야 마땅하다. 인식적 우연이란 나의 인식 속에서의 우연을 말한다. 이를테면 주사위를 던져 '우연히' 숫자 3이 나오는 것. 존재적인 우연이 배제된 결정론적 세계에서, 숫자 3이 나온 것은 주사위를 던진 손의 속도, 땅바닥의 재질, 방의 온도와 습도 등 물리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진행된 사건이다. 그러나 3이 나올 것을 내가 몰랐다면, 적어도 주사위를 던진 나에게 이것은 우연이다. 물리적으로는 필연이지만, 인식적으로는 우연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을 몰랐다고 말할 수 있다. 대본 없이 말을 이어받는 즉흥 연기의 대사도, 필터 없이 뿜어져 나오는 술자리의 실언도, 가장 의미심장한 꿈속의 말까지도.
물리법칙을 다 알아도 여전히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생각이 있다. 말하고 나서야 그 존재를 깨닫게 하는 생각이 있다. 그렇기에 방금 내가 한 말은 정말 우연히 나온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손가락의 우연적인 춤에 색소폰을 내어주는 즉흥 연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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