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반산호에서
온형근
가을 호숫가로 밤새 부옇게 가린 수런수런
해가 뜨니 부스스 기지개로 스캔하곤
순식간에 이야기 멈추고 훈기를 날린다.
앞길 구만리 들판 말달리던 왕궁터 뒤집어 씌우고
며칠째 부소산성과 낙화암, 고란사를 휩쓸고
규암 반산호로 앞장서서 나선다.
내가 가을 짓는 것을 배우고
지는 석양빛에 맞닥뜨리며 풍경에 진보하고 있을 때
도처 살가웠던 다정한 이들의 두 볼 가득 터져 나오는 말보를
두 손으로 머리 쥐어짜듯 터질 것 같은 지극한 정성을
사방에서 팍팍 튕겨 오르는 생각이나 표정이
산하를 굽이 돌아 반산호에 백화만방 피었다.
차고 넘치는 말의 잔해로 안개의 입자를 삼았으니
궁금한 안부를 걷어내야 할 위리안치의 순간에
반산호에 무릎 구부려 쪼그려 앉는 게 대수일까
시작 메모
가을 반산호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그렸다. 그해 가을의 풍경이다. 풍경의 기억과 감정이다. 반산호 호숫가의 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는다. 해가 뜨며 안개의 수런댐이 멈추고 훈기가 퍼지는 순간을 묘사했다. 자연과 감정이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살핀다. 가을의 시작과 자연의 변화를 묘사한다. 매일같이 호숫가의 안개와 해가 뜨는 장면을 만난다.
거닐면서 왕궁터와 부소산성, 낙화암, 고란사의 기억을 떠올린다. 백제를 떠올리며 왕궁터를 상상한다. 시간의 흐름이란 때로 무의미하다. 가을은 짓는 것이다. 짓는 법을 배울 때 가을은 풍요롭다. 가을을 지을 때 주변이 따뜻하다.
석양빛에 맞닥뜨리며 풍경에 진보하고 있을 때 다정한 이들의 말이 터져 나온다. 생각과 감정은 반산호에서의 고요함과 그 순간의 소중함으로 이어진다. 반산호 생생한 이미지에 다가선다. 구체적이고 강렬한 떠올림이다.
안개의 입자와 말의 잔해를 통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세상의 궁금한 안부를 걷어내야 할 순간이라고 했다. 걷는 동안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한다. 감정의 깊이는 이미지와 비유로 만난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