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찾는 나무가 있다.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 식물에 관심이 있다면, 아니 단풍 명소를 찾아봤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존재. 2023년 11월 4일, 위시리스트에 올려만 놓기만 했던 그 나무를 드디어 영접했다.
평소의 내 기상시간 보다 매우 일렀던 5시 반, 일어나 세수만 대충하고 원주로 달렸다. 도착한 시간은 7시 남짓. 서둘렀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때는 지금의 주차장도 표지판도 없었지만 은행나무는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나무 앞으로 홀린 듯 걸어가는 인파에 탑승해 웅장한 그 앞에 비로소 섰다. 방문 날짜를 정해놓고는 매일 인근도로 CCTV 영상을 보며 상태를 확인하곤 했는데, 그 은행나무가 진짜 내 눈 앞에 있었다. 아파트 12층 높이에 달한다는 은행나무는 주변에 3층 집도 없는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그야말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전날 비로 잎을 많이 떨군 모습이었지만, 바닥의 노란 카펫과 더불어 가늠도 되지 않는 긴 세월을 보여주는 두터운 나무줄기와 사방으로 뻗은 기세 좋은 가지가 그저 ‘우아’만 연발하게 만들 뿐이었다. 한번쯤 만져보고 싶은 신성한 느낌이랄까?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건지 무속행위를 금한다는 안내판이 울타리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강렬한 첫만남을 뒤로하고 다음엔 초록 잎이어도 좋으니 나무 가득 잎들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다시 찾은 1년 뒤, 2024년 11월 2일.



그저 나무 한 그루였지만 숲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나뭇잎과 가지에 연신 감탄하며 환호할 수 있었다. 전년보다 겨우 이틀 빨랐지만 은행나무의 시간은 더디 갔기에 다짐했던 대로 초록빛을 담았지만 잎사귀가 가득한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연신 사진과 영상을 찍어대고 나 주변을 둘러보니 한 분은 이미 며칠째 그곳을 방문해 그림을 그려온 듯했다. 그래, 아름다운 것은 오래 봐야, 또 자세히 봐야 맛이지 않겠는가? 전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고 각자 감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11월 16일. 11월 주말에 여유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원주로 향했다. 나를 맞이한 건 완연하게 물든 은행나무. 노란색 은행나무를 구경하고자 한다면, 올해가 정점이었다. 그 정점을 다들 알았는지, 혹은 일 년 새 명성은 더 드높아졌는지, 관람객이 한층 늘었음을 체감했다. 해를 거듭하며 인기를 갱신 중인 은행나무 어르신이다. 올해는 드론은 당연하고 추운 날씨에도 노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컨셉 사진을 찍고, 반려견에게 노란 은행잎 머리핀을 꽂아 놓고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곳을 즐기러 왔다.

나는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나무 나이에 맞는 그 시대의 인물을 찾아보곤 한다. 역사 속 인물과 연결 지어 보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달까? 이 반계리 은행나무는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900살 정도 됐다고 안내하더니 올해 가보니 최소 1317년으로 추정된다는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국립산림과학원이 3D 스캔 기술로 정밀 분석을 했다고 말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자라온 나무일 것이라고. 그래서 그 당시 인물을 찾아보니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스님이 그즈음 살았을 거라 한다.
그 긴 세월을 통과해 지금의 나와 마주하다니. 역시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참 하찮은 존재다. 한편, 천년이 넘는 시간을 흘러오면 마주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다이나믹 했을까? 과거에는 그저 동네 나무들 중 하나로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했을텐데, 수백번의 크고 작은 전쟁을 겪고 그 사이 나라 이름도 몇 차례 바뀌는 순간들까지, 모두 지켜 봤을테지. 과거엔 먹고 살기 바빴던 사람들이 이제는 본인을 구경하겠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어 사진 한장 남기고자 갖은 준비를 해서 오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NF 인간이라 쓸데없는 생각이 많습니다 ㅎㅎ) 그렇게 나무 입장에서 하나씩 떠올려 보니 인간은 하찮지만 퍽 신기하고 또 귀여운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하지만 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랄까? 3년 연속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고 나니 올해는 처음만큼의 감흥이 크지 못했다. 지난해보다 은행나무를 감싸는 울타리가 커져서 감상 가능한 거리가 멀어져서인지, 인파가 더 늘어서인지는, 정말 흥미가 식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맘대로 잠시 거리를 갖기로 했다. 다시 은행나무를 보고 ‘우아’가 나올 때까지 방문을 미뤄보기로. 그래도 분명 알록달록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단풍을 봐야 한다며 어디론가 찾아 헤맬 지 모르겠다. 사실 동네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을은 차고 넘치는데. 이 또한 하찮은 인간의 매력이 아닐까 ㅎㅎ (그런데 다시 사진을 보니 감탄이 나오는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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