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짱

소모품 전성시대

2026.04.23 | 조회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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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와이프가 대전에 있는 언니와 통화를 할 때였습다. 와이프는 일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이어폰을 착용했다 뺐다를 반복했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난 뒤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충전이 안 됐나? 아님 고장 났나? 한쪽이 들리지 않는다고 와이프는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어폰을 산지 4년이 넘었고, 사용한 기간 동안 신형 이어폰이 나왔고 만약 AS를 맡겨도 부품이 있나 걱정이 됐습니다.

 

뭐 이것저것 안 되면 제품을 새로 장만해야 하겠지만 한번 충전해서 사용해 보고 이상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꽤 오래된 제품들이 많습니다. 웬만한 전자제품은 신혼 때 구입했던 것이고 이사 오면서 구입한 물건도 있지만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습니다.

 

선풍기 한 대는 목을 가누지 못해 멕아리가 없지만 시원한 바람을 내는 기본 목적에 충실해 버리지 않고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장나서 AS도 안 되면 버려야 하지만 그 전에는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식이 좀 된 물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용하는 모든 제품은 모두 다 소모품입니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수명이 가장 짧을 것입니다. 고장나지 않아도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려는 소비 성향은 거대한 자본주의를 움직여야 하는 구조와 맞물려 있습니다.

 

오래 쓰는 제품이 좋은데, 생산자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스마트폰은 2년이면 고장 나게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이미지는 AI로 제작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소모품 전성시대입니다.

 

너무 많은 제품들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신제품이 출시되고 돌아서면 또 다른 제품이 등장해 신형이라는 말의 유효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그런 시대입니다.

 

제품의 수명은 유효 기간으로, 제품을 안전하게(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관점을 조금 더 확대하면 제품에만 유효기간이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만나는 모든 관계에도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

 

이런 관계의 유효기간을 설명한 책이 있습니다. 신을 찾는 뇌(로빈 던바 저) 이 책을 제가 읽은 것은 아닙니다. 유튜브 일당백 채널에서 박문호 박사가 책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관계에 대한 유효기간을 설명합니다.

 

박문호 박사는 제가 좋아하는 지식인입니다. 나이가 많지만 그의 총명함은 젊은이들을 이겨낼 수 있는 근육으로 충분합니다.

특히 책이야기를 할 때 박문호 박사는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입가의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강연을 많이 해 전달력이 좋고 이야기의 핵심을 풀어서 쉽게 설명을 해줍니다.

박문호 박사가 말한 신을 찾는 뇌에서 보면 친한 관계에서도 연락이 없으면 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서먹해지는 건 기본이고 모르는 사람처럼 뇌가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  일당백에 나온 '박문호 박사'의 강연 링크

 

3개의 강연을 묶어 놓은 통합본 영상입니다. 이런 좋은 강연은 몰아보기 해도 좋습니다. 

6시간 21분짜리 영상이지만 저는 이 영상을 3번 봤습니다.

박문호 박사의 설명이 좋아서 그리고 내용을 다시 듣고 싶어서 봤습니다.

(OTT의 드라마나 영화만 몰아보기 하지 말고 이런 좋은 강연도 몰아보기 해봐요 🙂 )

 

관계의 유효기간을 우리는 가끔 체험합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 대학동창, 고등학교 동창 등 알고만 있었던 사람에게 뜬금없는 연락을 받을 때 우리의 반응을 기억해봅시다.

 

청첩장, 그것도 카톡으로 전해온 온라인 청첩장을 받는 익숙한 풍경, 다들 한 번쯤 있는 경험입니다. 그럼 우린 그 카톡을 보고 '아~ 축하해 줘야지' 하면서 웃는 그런 사람은 아주 적고, 대부분은 동물 농장과 숫자 또는 육두문자로 욕을 한 바가지 하죠.

 

저는 절대 이런 초대의 결혼식에 가지도 않지만 축의금도 하지 않습니다. 해봐야 고맙다는 인사도 없고, 인사도 단체문자나 카톡으로 휙하고 날립니다. 이런... 썩을... 🙂‍↔️

 

전에는 가지도 않은 결혼식에 참석해 줘서 고맙다는 카톡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 성의 더럽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관계를 유지하는 꼬라지가 연락을 끊고 유효기간을 자체 종료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볍게 쓱~ 하고 지나 갈 수 있는데 조의 문자나 카톡은 참... 사람 애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름 기준을 잡았습니다.

1년간 전화한 적 없는 사람, 3년간 문자나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 적 없는 사람은 그냥 모두 스마트폰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모두 지웁니다.

 

저도 저런 실수와 상대의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수시로 확인하고 지웁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전화번호는 저장하지 않습니다.

오래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사람도 저장하지 않습니다.

지우기 귀찮기고 하지만 어차피 지워지고 사라질 관계를 저장까지 하면서 누구지?라고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관계의 유효기간을 늘리고 연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제품의 유효기간은 한번 설정되면 변하기 어렵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면서 정말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도 소모품일 뿐입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과 연락처는 진짜 거추장스러울 뿐,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거 그냥 먼지처럼 쌓이기만 할 뿐입니다.

 

소모품 이야기를 꺼냈으니 조금 더 확장해보겠습니다.

 

우리 삶도 삶이 소모되는 일종의 소모품입니다.

내 삶은 관계를 연장하듯 제품의 수명을 연장하듯 우리는 인생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태어난 순간 죽음으로 다가가는 소모의 시간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순간이고 살아 있는 시간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유효기간을 우리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라는 단어로 모호하게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뜻하지 않는 순간에, 나의 선택이 아닌, 그냥 훅하고 옵니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여행을 떠났고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만의 종착역을 만날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로맹롤랑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일단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메멘토 모리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박웅현의 여덟단어에서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를 설명합니다.

 

첨부 이미지

이 책은 세 가지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박웅현 작가는 여덟 개의 단어로 설명한 책입니다.

 

나는 그 여덟단어에 동의하면서 이 책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인생은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해 즐겨야하고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이라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죽음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를 나에게 의미 있게 행복하게 살자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더 단순화 시키면,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면 현재(지금)를 즐길 수 있다고 책에서 설명합니다.

 

간만에 읽은 즐거움을 받은 책입니다. 한번씩 일독을 권합니다.

 

소모가 되고 있는 우리의 삶.

이 시간에도 소모되고 있죠. 제품도 음식도 관계도 우리의 인생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소모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소모되고 죽는데 막 살아버리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 맛있는 음식도 오가는 대화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요?

 

정답도 없고 뭐가 맞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자 선택의 몫이고 그 책임도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마치 정답 같은 삶이 있죠.

바로 자신이 소모하는 유한한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첨부 이미지

프란츠 카프카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는 자신의 시간을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만 하다가 갑자기 갑충(벌레)으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벌레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첨부 이미지

 

그에 반면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 조르바는 인생 그 자체가 그냥 아모르 파티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죽음도 자신이 맞이합니다. 병원 침대에서 누워 있다가 일어서서 창가로 가 두 발로 서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조르바의 죽음 장면의 묘사는 잊지 못할 장면입니다.

 

이어폰의 소모에서 삶에 대한 소모까지 너무 심오하게 왔나요? :)

요즘은 하나의 생각을 확장하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저는 이런 재미로 시간을 소모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모를 즐기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박웅현의 여덟단어 (책 132쪽)   다섯 번째 강의 현재에 나오는 부분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 씨와 TV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박경철 씨가 물었습니다.

 

박 CD(크리에이터디렉터)님 계획이 뮙니까

박웅현 작가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없습니다. 개처럼 삽시다

부연 설명을 부탁하니 박웅현 작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고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개처럼 삽시다. 매일 똑같은 곳으로 산책을 가도 지루해 하지 않고 똑같은 사료를 줘도 불평하지 않고 맛있게 먹습니다. 개는 개처럼 사는데 왜? 사람만 사람처럼 살지 못할까요?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과 너무 많은 불안이 우리의 삶을 좀벌레처럼 갉아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소모되는 삶에 생각과 걱정과 불안과 불평만 한다면 정말 답이 없는 인생입니다. 앞서 말한 카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고 웃으며 즐기며 행복할 시간으로 채워나간다면, 소모될지언정 후회 없이 인생의 종착역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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