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내 관심을 끄는 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점점 현실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상상과 허구의 세계인 소설과는 멀어지게 됐다. 자연스레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다른 전문가들과 나누는 대화를 보게 됐다. 그의 말은 조리 있고 깊이가 있었으며,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선 통찰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책이 출간되자마자 관심이 생겼고, 살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남편이 마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함께 읽었다.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부터 묵직하게 다가왔다. 삶이라는 주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에세이로 풀어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작가도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책의 서문에서 원래는 ‘인생 생존법’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려 했지만, 쉽지 않아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는 사실 김영하 작가를 ‘전형적인 연대생’ 이미지로 바라본 터라,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 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책 속에는 그런 이미지를 훌쩍 넘어서는, 있는 그대로의 복잡하고도 솔직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한 챕터만 읽자’며 가볍게 시작했다가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몇 개는 간단하게 책갈피📎 삼아 기록해 두려 한다.
📚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사람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가는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실망했던 기억이 꺼내 놓는다. 어린 마음에 겪었던 실망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 말을 해 보았지만 돌아온다는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사람은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준다. 아주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고 흔히들 내뱉지만 작가는 기대와 실망을 ‘왈츠’에 비유한다. 기대의 스텝이 크면 실망의 스텝도 커지고,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망을 피하려면 기대도 줄여야 할 텐데, 과연 그런 춤이 보기에도 아름다울까?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는 사람인지라 그 동작의 크기를 조절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스스로에게, 또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실망할 때가 많은데 그 감정을 조절한다?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 대상이 누구든,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나만의 착각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기대의 스텝도, 실망의 스텝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흔히 듣지만, 사실 사람은 평생 변한다. 노력으로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작가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흔한 말을 부정하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나오는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인용한다.
우리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쉽게 믿는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우리가 극 중 인물의 변화를 목격할 때나 현실에서도 극적인 사건이 촉발한 ‘도발적 변화’에만 주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변절, 타락, 성공, 추락 등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평소에는 “사람은 안 변해!”라고 자주 말했지만,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행동과 마음, 습관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고, 그 변화가 쌓이면 결국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실제로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 일상 습관, 생각하는 방식, 말투, 가치관까지 크게 달라졌다. 생물학적인 수준에서도 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 앞으로 30대의 나, 40대, 50대, 60대의 나 역시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 변화의 과정을 테세우스의 배처럼, 낡고 썩은 널빤지를 하나씩 떼어내고 더 새롭고 단단한 나무로 덧대는 일로 만들고 싶다.
📚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작가에게는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작가님이 될 거라고 말해주시면 열심히 해볼게요”라는 질문이 자주 쏟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작가 자신도 단지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작가가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고, 그렇게 쓰다 보니 작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사소해 보이거나, 이래서 과연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자주 휩싸인다. 작가는 그런 불안한 사람들에게 “그냥 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어딘가에 도달하게 되어 있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게 된다고.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된 계기, 어떤 꿈을 꾸게 된 배경은 결국 ‘결말’에 맞춰 되돌아보며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특별한 이론이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임에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식의 조언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전형적인 ‘꼰대’의 어조가 아닌, 솔직한 고백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삶』은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 대신, ‘나 답게 살아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겪은 고민과 고뇌를 진솔하게 나누는 글이기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내 경험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무더운 이 여름, N CH_ART 여러분께도 이 책이 조용한 울림을 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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