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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 피천득 <인연>

2025.09.11 | 조회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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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N CH_ART와 함께하는 분들에게 나누고 싶은 여러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전형적인 문과생이었다. 남들은 수학이나 과학의 똑 부러지는 정답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그 명확함이 오히려 인간미 없게 느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했다. 비록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과거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사회 과목에 흥미를 느꼈고, 역사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전공 서적마냥 두꺼운 책을 찾아 읽기도 해서 부모님은 당연히 내가 역사 전공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다.  

 

그랬던 내가, 중학교 3학년 겨울.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학원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 만남은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 선생님은 20대 중후반의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고, 패기 넘치는 선생님이 수업을 정말 재밌게 잘하셨다. 마침 사춘기였고 여중을 다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됐다. 선생님도 그런 나를 귀여워해 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아이돌 팬처럼 선생님의 수업을 열심히 듣고, 칭찬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국어라는 과목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그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학원으로 옮기셨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때의 나에겐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이돌이 갑자기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은 팬의 심정이 이런 걸까. 너무나도 슬펐다. 🥹 (국어 과목 점수에 위기가 찾아올 뻔)

 

하지만 국어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었고, 고2 때  ‘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학업 스트레스 속에서도 한 문장, 한 구절이 내 마음을 대변해줄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따로 메모해둔 문장들은 지금도 소중히 가지고 있다.

 

첨부 이미지

 

그 무렵, 교과서에서 피천득의 수필 「인연」을 처음 만났다. 그중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그 선생님을 꼭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내가 국어 교사가 되어, 언젠가 짠! 하고 나타나야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지금, 시간이 흘러 30대 후반이 된 내가 돌아보면… 그분을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그 선생님은 젊고 멋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니 좋은 추억으로 평생 간직할 수 있다.

 

이처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간의 수업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업'은 전공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국어와 함께하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인연’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작품에 유독 애착이 간다. 스무 살 무렵, 피천득 수필집 『인연』을 직접 구입해 읽었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해 영화나 다른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피천득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수필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작가의 따뜻한 감성과 섬세한 시선은 언제 읽어도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지 않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수필은 독백이다.
수필은 글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결국 우리가 블로그를 쓰거나 일기를 쓰는 것 역시 넓게 보면 수필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실제로 이 책을 ‘필사’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작가가 1910년생이라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이 책이 읽히는 이유이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한 사람을 만나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그 모든 인연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덕분에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내 마음에 늘 새기고 있는 문장이 있다. 바로 이 책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 가고 싶다.

 

나는 아직 범인(凡人)이라 ‘점잖게 늙어가기’가 참 어렵지만, 이 문장을 저장해두고 자주 꺼내 읽는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도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점잖게 늙어가기 위해 ‘좋은 말’을 하려 노력 중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실언을 일삼고 후회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계속 상기하면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설이 길었지만, 어느덧 바람도 차가워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런 날씨에 참 잘 어울릴 책인 피천득의 『인연. 물론 어느 계절, 어느 시기에 읽어도 좋은 책이지만, 지금 이 계절엔 유독 더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가볍고 편안하게,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어떤 길이든, 내가 가고 싶으면 그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N CH_ART 여러분도 이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씩씩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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