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26주차

산책론

2023.09.10 | 조회 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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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Part 1

1.
산책을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날씨 좋은 날, 적당한 평지를, 가벼운 옷차림으로, 땀 흘리지 않는 선에서, 30분 가량 걷는 것을 즐깁니다. 자칫 뛰거나 40분이 넘어가버리면 운동이 되어버립니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돼요.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적당함>입니다. <본격적>이 되어버리면 주객이 전도됩니다. 산책의 주는 하릴없이 걸어다니며, 아무래도 상관 없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우연한 경험이 우리들 산책 매니아를 고무시킵니다. 늘 걷던 거리라고 해도, 특정 시간대에만 들어오는 빛이. 특정 날씨에만 불어오는 바람이 새로움을 안겨줍니다. 느닷없는 산책 찬사가 괜히 따뜻한 에세이처럼 보여서 불쾌하네요.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2.
제 경우엔, 기록을 통제 당했을 때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오릅니다. 통제가 정말 통제인지, 기가 막힌 생각이 정말로 기가 막힌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최근엔 지구와 토요일 아침 산책을 즐깁니다. 그러다보니 귀에 이어폰을 꼽기도, 손에 휴대폰을 들기도 힘들어요. 뭐 완전히 못하는건 아닌데, 그래도 같이 교감하기 위한 산책에 눈과 귀를 차단해버리면 뭐하러 같이 나가겠습니까. 산책만 시작하면 귀신같이 잠들어버리는 지구지만, 그렇다고 한 손으로 유아차를 끌며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진 않아요. 최소한 목표로 정한 벤치까지는 직진 직진입니다. 

3.
그러다보면, 벤치에 도착하는 10여분의 시간동안 수백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왜, 샤워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 처럼요. 확실하진 않지만 첫번째로는 음악이나 영상, 글 등의 외부 요소에서 자유롭고. 두번째론 생각을 그때 그때 옮길 수 없으니,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곱씹다보니 양과 질이 늘어나서가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원치 않게 ‘어쩌다 떠오른 생각’이 ‘깊은 생각’으로 진화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 라는게 고민인 사람은 휴대폰 놓고 산책이나 카페라도 다녀오세요. 휴대폰 없는 외출이 상상만 해도 지옥같다구요? 그럼 샤워를 2시간 해보세요!

4.
여기서 웃긴 포인트는. “그렇게 해서 떠올린 생각이 뭔데?”라고 물어보셔도, 벤치까지 가는 동안 죄다 까먹었다는 것입니다. 떠올린 모든 생각을 다 기억할 순 없습니다. 아깝긴 해도, 제 경우엔 잊을만한 생각이니까 잊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합니다. 물론 뭐 잊어선 안되는 생각이 뭐 얼마나 있겠냐만, 기껏 산책 찬사를 쏟아내놓고 아무것도 못 건지면 너무 말만쟁이 같잖아요(말만쟁이라 적긴 하지만, 말만재이라고 발음해야 더 찰집니다). 그래서 가만히 고민해보니, 아 맞다! <기록이 통제된 상황에선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건졌잖아! 오늘의 에세이는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Part 2


친구아빠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회사일 끝내시고 회사 동료분들이랑 기분좋게 한잔하고 집에가시는길에 지하철에서 쓰러지셨다고 해요. 저는 35살입니다. 많지도(많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음) 적지도 않은 나이 이지만, 너무 당연하게 이제 친구부모님이 돌아가실 그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저한테는 너무 당황스럽고 놀란일이었어요.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일기쓰기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말이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번뜩이고 재치있고 재미난 드립도 잘치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 친구한테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이 있는 2시간동안 저는 진짜 아무말도 못했어요. 같이 간 친구들이 위로의 말이나 힘내라 뭐 이런얘기들을 했죠. 상중인 친구가 웃으면서 얘기하고 밥을 먹으니 어떤 한 친구가 , 아빠가돌아가신 그 친구에게 "그래 넌 이렇게 힘들일이나 어떤일이 생겨도 웃으면서 이겨내는 강한애였어, 이런모습이 너야"라고 말하는데, 만약에 나라면 이 상황에 넌 강한애야 라고 얘기들으면 그냥 기분 별로였을것 같아요 . 뭔가 이겨내고 웃어야한다고 하는게 너무 강압적으로 들렸달까요? 암튼 다 쓸데없는 얘기고, 나이만 먹었지 저는 위로의말 힘이되는말 이런걸 잘 못하겠어요 T발 C라서 그런걸까요? 그냥 카톡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 아빠 잘 보내드리느라 수고많았어. 내가 나이만 먹었지 이럴때 무슨말을 어떻게 해줘야 너가 힘이 될지 모르겠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왔다 미안해 그래도 아빠가 두딸래미들 이쁜 손자도 다 보시고 가셔서 다행이야. 내가 감히 너가 무슨 기분일지 몰라서 이해한다 힘내라 이런말도 쉽게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빠가 언제나 함께 하실거야 밥잘먹어 * 위로의말을 어떻게 하면 상황에 맞게 잘할수 있을까요? 책을 많이 읽고 어휘력이 좋다고 될 문제는 아닌거 같아요

 

1.
위로를 하지 마시오. 아니 정확하겐, 위로의 말을 하지 마시오. 매정하게 들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위로의 말을 떠올리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꺼내려 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방금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예를 꼽으셨지요? 선생님의 멘트라고 해서 누군가의 좋은 예가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심사숙고를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입장에 처해본 것도 아니고. 사람이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위로에 자신이 없다면, 위로의 말을 하지 마시오.

2.
그럼 우리는 어떻게 위로할 있는가? 위로는 말과 글로만 전달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17년, 직장 짤리고 모아둔 돈은 없고 한파에 보일러실 터져서 지하가 물바다가 됐을 때.  물바다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봄이 까지 냄비에 끓인 물로 샤워 할 . 힘내 될거야 너는 하고 있어 같은 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반면 "나와, 고기나 먹자" 무슨 예수라도 만난 기분이었지요. 물론 제가 드는 예시가 너무 육체적 금전적 고통이지, 말씀하신 감정적 고통은 아닙니다. 왜냐면 저는 감정적인 고통을 겪은 기억이 정상인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르기 때문에.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저에게 사연을 보냈잖아요? 댓가는 치뤄야 것입니다.

3.
말하자면 <고기> 핵심 키워드라기보단, <나와> 방점을 찍어봅시다. 위드 미의 나와도 좋고, 밖으로 나와도 좋습니다. 중요한건 어쨌든 함께 하는 이지요. 함께 한다, 옆에 있어준다 얼추 위로스럽지 않나요? 저같은 싸이코패스도 옆에 있어주는게 큰 힘이 되는데, 하물며 정상적인 감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그게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먹었어? 여기 앞에 순대 트럭 있길래 사왔어. 먹고싶어? 그래 그럼 먹는거라도 볼래? 모르겠어요 사실 고민은 이연복에게 v건담 어떻게 조종하는지 물어보는 느낌이라 일단 최선을 다해 대답은 하고 있는데. 어쨌든 정답은 없는거잖아요? 본인도 모를거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힘이 나는지. 어떻게 하면 위로를 받는지.

4.
이왕 모르는거, 그냥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걸 합시다. 아까 위로의 말을 하지 마시오 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 하세요. 같이 있어주는게 맞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맞구요. 바텀 듀오나 가자 하는게 맞다 생각하면 그게 맞아요. 최소한 저보다는 친구를 알거잖아요? 그럼 쌩판 모르는 저한테 물어보지 말고, 본인이 확신을 가지는 위로를 해봐요. 슬슬 정리해봅시다. 이게 맞나 아닌가 애매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 그대로 옆에 있어주세요. 위로라는 행위를 통해 마음 편해지기 위한거면 티가 난다는 . 이런 정도만 유의해서 위로해준다면 당신은 이미 프로 위로꾼입니다. 명시해야 할 것은, 당연히 프로 위로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생각과 관점을 이렇게나 당당하게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짜릿하네요. 저는 인간관계가 좁아서 고민입니다. 제 세상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기적으로는 단물을 뽑아먹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넓혀야 할 거 같은데 혹시 선생님도 이런 고민 해보셨나요? 아니면 어떻게 넓혀가야할까요. 워낙 조심스럽고 다가가기에 주저하는 타입이라 쉽지않습니다. 감사합니다

 

1.
<넓음>은 아무짝에도(마케팅 일을 하면 또 모르겠지만 보통은) 쓸모가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넓기만 한 인맥>은 무의미해요.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 할 줄 알았죠? 죄송한데 깊이도 딱히 쓸모는 없어요. 애초에 인맥이라는걸 쓸모를 기준으로 본다는 관점 자체가 글러먹었잖아요? 이왕 시원하게 글러먹은거, 어떻게 단물을 뽑을 수 있는지에 집중합시다.

2.
제 경우엔 사람보다 대화를 좋아합니다. 종종 즐겁게 이야기하는 절 보고 “어? 동규님 사람 만나는거 싫어하신다면서 되게 재밌게 잘 이야기하시네요?”라는 반응을 마주치는데, 그건 십중 구구 대화가 재미있어서. 조금 더 정확히는 대화 주제가 재밌어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서에 가깝습니다. 상대방을 이야기를 담는 그릇 취급하는게 조금 소름 돋습니까? 사실 전 거기에 더해서, 지금 나누는 이야기를 녹음이나 녹화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 최소한 이 모임에선 “기록물”이라는 아웃풋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헛짓거리는 아니게 되는거죠. 싸이코패스와 기회주의자가 합치면 이런 인간형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인맥을 여행과 비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운을 띄우고 싶지만 딱히 기억나는 예시가 없네요. 이제부터 제가 비교할거라서, 원래 많았던 걸로 치겠습니다. 어찌됐건, 저는 여행을 즐기지 않아요. 물론 여행의 즐거운 점은 무수히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고통과 고난, 귀찮음과 금전적인 소비가 저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저의 연인은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이런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저는 <기록하기 위한 여행>이라는 테마를 잡았습니다. 저에게 여행은 기록입니다. 여행을 즐기기보다,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잘 기록하여 콘텐츠로 만듭니다. 따라서 촬영하기 좋은 환경. 촬영 했을 때 잘 나오는 동네. 촬영하기 좋은 동선을 짜서 여행지를 선정합니다. 여기서 여행을 인간으로 바꿔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나는 철수를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철수를 만납니다”.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4.
물론 제가 아무리 미쳤어도, “야 너 만나는 이유는 너 찍어서 올리기 위해서야”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나름 무리해서 스몰 토크도 진행하고,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나서도 한참을 더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에 카메라를 챙겨가지도 않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에요, 가끔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아도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바다 수영 할 때. 캐리어 이동할 때. 한 밤의 산책 등등의 상황까지 기록에 집착하지 않아요. 인간 관계도, 이득에 집착하지 않아도 때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건 그런 사람을 내 곁에 두는 방법. 정확히는 내 곁으로 모이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게 어찌 보면 인맥을 넓히는 법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5.
저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 하는 타입입니다. 고1 때 KFC에 주문을 못 해서, 그냥 배가 안 고픈 척 한 적도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의 등장은 우리같은 대화 포비아에겐 거의 조나우 문명과도 같습니다. 그럼 평생 혼자 썩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내 성향이 그렇지 않음에도, 굳이 성격을 바꿔가며 상대방에게 달라 붙어야 하는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가 가지 말고 그들이 오면 되는거 아닌가'.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간에. 그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업계를 동경하거나 함께 달려가는 동료들이 선생님을 눈여겨 볼 것임이 확실합니다. 팔로워 1000명 있을 때와 3만명 있을 때 DM 답장 속도가 다르더군요. 뭔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진 몰라도, 뭔가 좀 있어보이는 사람에게는 싫다고 해도 달려드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럼 그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단물을 빨아 먹어 보아요. 그들에겐 선생님이 단물이기 때문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는걸 잘 못하는데 이번에는 약간 각이 보이네요. <누군가의 단물을 빨 생각 하지 말고, 그들의 단물이 되어라>

6.
글이 길어질수록 제 살을 파먹는 기분이군요. 여러분 지금까지 다 농담인거 아시죠? 저는 싸이코패스가 아닙니다. 성실한 답변을 위해 메쏘드 연기에 심취했을 뿐이에요. 오 제발 신이시여! 주간 윤동규 26주차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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