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을 죽인 건 손님이 아니라 보일러다
운영비의 절반이 연료비인 산업에서, 그 연료의 값이 5년 만에 절반 넘게 뛰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문을 닫는 데 1억 원이 드는 산업의 기이한 경제학.
2023년 1월, 서울의 한 목욕탕 사장이 가스 고지서를 받았다. 1년 전 같은 달에는 250만 원이었다. 이번 달은 400만 원이 넘었다. 그 겨울, 강동·송파 일대에서는 목욕탕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¹
언론은 그해 겨울을 '난방비 대란'이라 불렀다. 이 산업에 그것은 대란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의 일상이었다.
원가의 절반이 불이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경남지회에 따르면, 목욕탕 운영비의 절반 가까이가 연료비다.² 인건비도, 임대료도 아니다. 이 산업에서 가장 큰 원가 항목은 물을 데우는 불이다.
그 불의 값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자. 2020년부터 5년간의 인상률이다.³

1화에서 본 '가격의 역설' — 손님이 줄수록 요금이 오르는 나선 — 의 동력이 이것이다. 목욕비 1만 원 시대는 배짱이 아니라, 청구서의 복사본이었다.³
가게 단위로 내려가면 숫자는 더 구체적이다. 충북 보은의 한 목욕탕은 전기요금으로만 매달 900만 원 가까이를 낸다. 그래서 이 동네 목욕탕 대부분은 여름이면 한 달 넘게 아예 문을 닫는다.⁴ 문을 여는 것이 손해인 계절이 있는 업이다.
매출은 반, 원가는 1.5배
이 비용 폭등이 어떤 매출 위에 떨어졌는지가 문제다. 코로나 2년 동안 목욕업 매출은 61.2% 줄었다.⁵ 2023년 초 협회의 호소를 그대로 옮기면 — 손님은 코로나 이전의 50~70%인데, 가스요금은 1년 새 45%가 올랐다.⁶

매출이 반 토막 난 사업에서 최대 원가 항목이 1.5배가 됐다. 이 산업의 손익계산서는 양쪽에서 협공당했다.
문을 닫는 데 1억이 든다
이제 1화에서 아껴 둔 질문으로 돌아가자. 적자가 쌓이는데, 왜 그만두지 않는가.
목욕업중앙회 강동·송파지회장의 답은 간단하다. 폐업에는 보통 1억에서 2억 원이 든다.¹ 욕탕과 보일러와 배관을 뜯어내고 건물을 원상복구하는 비용이다.

그래서 이 산업에는 기이한 상태가 존재한다. 폐업할 돈이 없어서 적자 영업을 계속하는 가게들. 손님이 없어도 탕은 데워야 하니, 매달 수백만 원의 유지비를 태우면서.⁵ 청산조차 유료인 산업이다.
버티는 쪽의 셈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군포의 한 사우나는 월 3,000만 원의 유지비를 감당할 손님이 모이지 않자, 직원을 30여 명에서 10명으로 줄였다.⁷
일본도 같은 보일러 앞에 있다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아오모리의 58년 된 대중탕은 하루 200명이 찾는 가게였다. 그런데도 폐업을 결정했다 — 보일러용 중유가 리터당 100엔에서 130엔으로 뛰며 연간 60만 엔의 연료비가 얹어졌기 때문이다.⁸ 손님이 있어도 불값을 못 이긴 것이다.
시즈오카에서는 규제가 셈을 더 꼬아 놓았다. 대중탕 입욕료 상한은 520엔인데, 업주들이 말하는 손익분기는 650엔이다.⁹ 합법적으로는 흑자가 불가능한 가격표 아래에서 영업하는 가게들이 있다. 올릴 수 없는 가격과 내릴 수 없는 원가 사이 — 어느 나라든 이 산업이 갇힌 자리는 같다.
그런데, 보일러는 고칠 수 있다
반전은 보일러를 바꾼 가게의 장부에서 나온다. 천안의 한 사우나는 8,000만 원짜리 수열 히트펌프를 설치했다. 보조금이 5,000만 원이었다. 월 750만 원이던 가스비에서 연 1,800만 원이 줄었고, 자부담 3,000만 원은 2년 만에 회수됐다.¹⁰
제도도 그쪽을 향해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2025년 소상공인 에너지효율향상 지원사업은 예산 190억 원으로 설치비의 70%까지, 히트펌프를 포함하면 사업장당 최대 1억 5,000만 원까지 지원한다.¹³ 같은 사업으로 설비를 바꾼 530개 사업장의 평균은 월 240만 원 절감, 평균 투자 4,900만 원, 회수 2년 이내로 보도됐다.¹¹ 다만 이 성과 수치는 부처가 공식 공표한 자료가 아니고, 같은 부처가 정책자료에서 밝힌 회수 기간은 3~4년이다.¹² 목욕탕을 죽인 것이 보일러라면, 숫자상 살릴 수 있는 것도 보일러다. 회수에 몇 년이 걸리는지는 아직 갈린다.
그런데 이 명백해 보이는 투자가 산업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 1화에서 만난 28년 차 사장님 같은 이들에게 5,000만 원의 목돈과 2년의 회수 기간은 전혀 다른 무게이기 때문이다.¹⁰ 그 사이 행정은 설비가 아니라 수요를 받치는 길을 택하고 있다. 태백시는 2027년부터 65세 이상 전원에게 목욕비를 월 2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¹⁴
설비를 고칠 것인가, 수요를 보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그릇을 짤 것인가. 이 선택지들을 저울에 올리는 일은 마지막 화의 사고실험으로 미뤄 두자. 지금은 이 장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이 산업의 문제는 수요보다 원가에 있고, 그 원가의 절반은 기술로 줄일 수 있음이 이미 확인돼 있다.² ¹³
다음 화 — EP 03 · 사우나는 죽지 않았다, 언번들됐을 뿐
비용의 처방은 나왔다. 그렇다면 사라진 손님들은 어디로 갔는가. 도쿄에서는 지금 같은 뜨거운 방이 동네 목욕탕의 10배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예약이 찬다. 일본이 먼저 통과한 언번들링의 기록.
숫자에 대하여
전국 목욕장업소 수는 집계 기준(인허가 대장 vs 실영업 신고)에 따라 소스마다 갈린다 — 2000년 기준 8,904곳(한국경제)과 9,950곳(서울신문), 1화에서 쓴 한국일보 기준(2003년 9,919곳)이 각각 다른 층위다. 어느 기준으로도 방향은 같다: 20여 년간 약 40%가 사라졌다.
에너지 요금 인상률은 기준이 서로 다르다. 도시가스 +52.6%(15.6→23.8원/MJ)는 서울신문이 보도한 평균 단가 기준으로, 용도와 도매·소매 구분이 특정돼 있지 않다. 한국가스공사가 공개한 총괄원가 적용단가는 2022년을 정점으로 이후 하락해 왔으므로, 2020년과 2025년 두 점만 잇는 이 수치는 중간의 하락 국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협회가 말한 ‘1년 새 45%’는 2023년 초 시점의 체감 인상률로 기간과 지역이 또 다르다. 전기 +30%는 전 용도 평균 성격의 수치이며, 목욕장업이 적용받는 일반용은 2024년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수도 +20%는 지자체별 편차가 크고, 광역상수도 정수요금은 같은 기간 훨씬 완만하게 움직였다.
소상공인 에너지효율 지원사업의 성과 수치(530개소·월 240만 원 절감·회수 2년 이내)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공한 것이나 부처 보도자료로 공표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부처가 2025년 12월 정책자료에서 밝힌 자부담 회수 기간은 3~4년으로, 본문에 인용한 2년과 다르다. 천안 사우나 사례의 수치는 정부 실증 데이터가 아니라 해당 사업장 운영자의 증언이다. 제도 자체의 조건(예산 190억 원, 설치비 70% 이내, 히트펌프 포함 시 사업장당 최대 1억 5,000만 원)만 한국에너지공단 공고로 확인된다.
출처
1. YTN — 목욕탕 가스 고지서·강동송파 폐업·폐업 비용 (2023.1)
https://www.ytn.co.kr/_ln/0103_202301310903124722
2. 경남신문 — 한국목욕업중앙회 경남지회, 연료비 비중 (2026.4.7)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538841
3. 서울신문 — LNG 단가·전기·상수도·목욕비 인상률 (2026.4.14)
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260414018007
4. 오마이뉴스 — 보은 목욕탕 전기요금·여름 휴업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7851
5. 경남도민일보 — 코로나 2년 매출 −61.2%·유지비·폐업 불능 구조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159
6. 지디넷코리아 — 목욕업중앙회 난방비 호소 (2023.2)
https://zdnet.co.kr/view/?no=20230201132515
7. 한국경제 — 군포 사우나 유지비·인력 감축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41535221
8. 서울경제 — 아오모리 센토 폐업, 중유 가격
https://www.sedaily.com/article/20023128
9. 경향신문 — 시즈오카 입욕료 상한과 손익분기 (2026.3.23)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31157001
10. 한국일보 — 천안 사우나 수열 히트펌프 사례(운영자 증언, 2025.11.9)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0917180003127
11. 전자신문 — 소상공인 에너지효율 지원사업 530곳 (2025.12.28)
https://www.etnews.com/20251225000005
12. 기후에너지환경부 —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지원 (2025.12.17)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56735510
13. 한국에너지공단 — 2025년 소상공인 에너지효율향상 지원사업 공고
https://www.energy.or.kr/front/board/View2.do?boardMngNo=2&boardNo=24369
14. 경향신문 — 태백시 목욕비 월 2만 원 지원 (2027 시행)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12102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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