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검은 물, 신희린
관객 하나 없는 영화관에서 나는 영사기가 된다 스크린에 비치는 파도 마주 본 거울 속의 어둠처럼 영화관은 어둠이 빼곡하고
뻗어간 빛은 파도가 된다
당신은 그곳에 서 있다 내가 당신을 부르고 당신이 해안가에서 달려온다
거칠게 이는 파도를 바라본다
당신은 그곳에 없다
있었으나 당신이 없다.
당신은 누구지 당신은 누구지
흰 포말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손과 발이 파도에 잡아먹힌 사람처럼 당신이 앉아있다 나는 등 뒤에서 당신의 어깨를 잡는다 잡는 순간 거품이 되는 당신
갓 태어난 어둠이 자라나 교복을 입고 있다 손을 뻗을 때마다 풍경이 뒤섞인 물감처럼 뭉개진다 어둠은 손바닥에 묻어난 풍경이 밝아 애써 제 손을 숨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학교 종소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5분만 더 잘래 숨긴 두 손을 매만지며
스크린 속 주인공이 바뀐다 내가 아는 당신의 얼굴도 새로운 당신이 되어 나타난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린다 몸이 움츠러들 때마다 영사기는 빠르게 돌아간다
어지러운 빛이 나를 때린다
방안에 물이 가득 차오른다
주상절리에서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걸 지켜본다
갑자기 해일이 몰려오면 나는 반드시 당신을 데리고 도망칠 거야
난, 그냥 여기 있을래
당신은 한참을 침묵하다 말한다
조각난 빛들을 토해낸다 어거지로 기워 맞출수록 당신이 흐릿해진다 영화관엔 교복을 입고 있는 어둠이 앉아있다 짙은 어둠이 영화관의 어둠에 섞이지 않고 움직인다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복이 팔걸이를 더듬는다
당신은 누구지 당신은 누구지
빨간 대야에 잠겨있는 아이가 엄마를 부른다
관객이 꽉 찬 영화관에 내가 아는 당신이 들어온다
교복을 입은 어둠이 점점 선명해진다
엄마.
당신은 이곳에 없다
파도 소리 너머로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른다
H에게, 서인백
어느덧 마지막 여름이야.
20년 동안 가장 더웠던 여름이고,
또 가장 지루했던 여름이었네.
만약 내가 또 다른 여름을 겪게 되더라도
그 여름의 내가 지금의 나와는 다를 테니
이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이 마지막인 걸로 해두자.
나는 매번 너와 여행을 떠났던 여름을,
화창하고 뜨거웠던 여름을,
꽤나 좋아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를 껴안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기다렸을지도 몰라.
그치만 난 이제 더 이상 여름을 좋아할 수 없어.
사랑하는 너를 떠나보내야 했고,
그날은 너무 맑고 화창했단 말이야.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는데
하늘이 너무 예뻐서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흘려버렸다고.
내가 여름의 뜨겁고 맑은 하늘을 좋아했던 것도,
시원하고 깊은 바다를 좋아했던 것도,
모두 너와 함께 놀던 시간 때문이라고 하면
내가 이제 여름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될까?
그래 맞아.
나는 여름을 좋아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뿐이야.
그래서 나는 이번 여름이 내 생의 마지막 여름인 것을 알면서도
솔직하지 못하며, 멀리했고,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어.
다음에는 지금처럼 따뜻한 내가 아닌 차가운 나로 만나자.
숨죽여 기다리고,
숨쉬며 사랑할게.
여자들이 헤어지는 이유_01, 김하녹
M이 내게 물었어.
“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그래서 나는 말했지.
“ 그냥 네가 보고 싶어. 같이 밥 먹고 수다 떨고 싶어”
M은 이렇게 답했어.
“ 그건 당연하고! 선물을 주는 기쁨도 있잖아. 얼른 말해줘!”
그리고 상상 속의 너는 M과 나를 한 번 다정히 둘러보고 또 나를 보며 짓궂게 웃으며 말하지.
“ 아오. 그런 거 말고 물질적인 걸 말하라고! 마음은 물질에 담는 거야!!! ”
ㆍㆍㆍ그리고 현실의 너와 내 사이엔 까만 적막이 흐르네.
나, 참 기가 막힌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에, 갑자기 생긴 상황에도,
나는 네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생생히 떠올라 할 말을 잃었다.
다 잊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
그런데 전부 기억할 줄은 몰랐던 거야.
나는 너를 너무 선명히 기억하고 있구나.
기억이 아니라 감각하는 것 같아.
몸이 쪼개질 것같이 아파.
이 작품을 올린 전시의 주제는 '환상통'이었고,
무더운 여름날, 나는 이 작품을 작업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캔버스 앞에서 엉엉 울었어.
물감 한번 칠하고 엉엉
또 한 번 칠하고 와앙
정말이지 다음부터는 주제를 '행복','만수무강','무병장수' 이런 거로 해야 할까 싶었어.
이렇게 이름을 따라갈 줄이야.
환상처럼 따라오는 네 흔적이 참 얄궂게 아프다.
어느 날 꿈에는 네가 나왔어.
나란히 누워 쓰잘머리 없는 대화를 나눴어.
깨어나고 나니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들 말이야.
야, 이 나쁜 자식아.
백년해로 하자며.
백발 할머니 되어도 같이 아주 멋지게 살자며.
20대도 30대도 60대도 같이 보내기로 해놓고,
내 20대를 채우고,
공백에 나를 밀어 넣다니.
너 정말….정말 잔인해.
-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들 하던데.
그럼, 무의식 속에서는 우린 계속 친구인 거네.
그럼 그런 세계가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거기서는 계속 친구로 남자.
여기서처럼…
실없는 농담 하나 못하는 사이가 되지 말고.
나 있지.
정말 실없는 소리 많이 하고 싶어.
의미 없는 말. 두서없는 이야기들.
깔깔웃고 울고.
말하기 싫을 땐 안 해도 편안한 그 시간이 그립네.
내가 나일 수 있는 그 순간들이 살면서 생각 보다 많지 않더라.
와, 나는 네가 평생 죽도록 미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정말 뭐야 이게.
시간이 지나니
미움이 여과되어서
그리움만 잔뜩 남아
내가 거기 침전할 줄은.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러나 주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먼 곳으로 ㅡ 황인찬의 마음 中
여름에 혼자 떠난 곳이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는 애매해서 가고나면 돌아오기가 싫어. 최근에 읽은 황인찬 시인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야. 너무 마음에 들어서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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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냐냥
재밌게 보고갈게 Q
오묘한 고양이들의 시선
고마워 냐냥! 다음주 메일도 기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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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산짱돌주먹
표어가 한자면 한글로 음도 적어주심 좋겠어요 왜냐면 제가 한자를 초2 때 포기했습니다...... 그치만 글 읽으면서 대략적인 분위기는 파악했어요!!!!!!!! 좋은 글과 그림 감사해요
오묘한 고양이들의 시선
앗!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네😽 좋은 피드백 고마워! ミⓛㅅⓛ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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