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요즘 제 일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충만한 시간은 우리 집 강아지 트니와 산책하는 시간이에요. 정확히는 부모님 댁의 강아지인데요. 저의 집과 부모님 집은 도보 1분 거리라 거의 매일 만나는 거나 다름없어요. 아주 가까운 거리라서 트니도 저의 집을 기억하고, 자주 놀러 온답니다. 튼튼하게 자라라고 이름을 ‘튼튼이’로 지었는데 가족들이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트니’라고 줄여 부르더라고요. 다른 집 강아지들 이름은 귀여운데 우리 아이만 너무 시골티가 날까 봐 신경 쓰인다나요. 사실 제가 지은 이름이지만, 저도 가끔 머쓱하긴 했어요. 저희 집 성이 ‘장 씨’잖아요. 그래서 성을 붙여 부르면 ‘장 튼튼’, 뭔가 유산균 요구르트 이름 같은 느낌이거든요. 어쨌든 반려동물이 생기고서 저희 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됐어요. 가족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이 든 아빠, 나이 든 엄마, 나이 든 미혼 아들, 나이 든 미혼 딸’ 사이에 어리고 깜찍한 생명체 하나가 ‘짠’ 하고 나타난 거지요.
사실 가족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저와 아빠는 깔끔한 성격이고, 엄마는 당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 집중했고, 동생은 심지어 개를 무서워하는 트라우마도 있었으니까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강아지를 사람 아기처럼 안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엄마는 유난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웠어요. 저도 “그러게~ 저 아줌마들은 뭔가 사는 게 여유로워 보이네. 우린 생활이 팍팍한데.”라고 맞장구치곤 했죠. 그런데 부모님이 은퇴하시면서 고향이 아닌 지역에 살 이유가 없어졌고, 우리 남매가 살고 있는 경기도로 이사 오게 되었지요. 자식들이라도 옆에 있는 게 좋다고는 하셨지만 퍽 적적해 보였어요. 특히 아빠는 일자리를 찾으셨지만, 평생 전업주부인 데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던 엄마는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자꾸만 엄마들의 SNS인 카카오스토리를 보면서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 심란해하시는 느낌도 들었어요. 고향의 옛 친구 들은 나들이며 꽃놀이며 가는데, 엄마는 낯선 경기도에서 마음 둘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런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계기는 뭘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젊은 시절부터 위탁모 봉사를 했었고, 아이 돌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는 게 떠올랐지요. 아기들에게 애정이 참 많으셨거든요. 저희에게 그러니 손주를 빨리 안겨주면 되지 않냐고 하셨지만, 뭐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대신 강아지 막내아들이 짠 하고 생겨난 겁니다.
트니가 찾아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는데요. 가족의 삶은 참 많이 바뀌었어요. 실외 배변을 하는 트니는 부모님을 하루 두 번 이상 산책하도록 만들었고, 대화가 없던 집안에는 “아이고, 저기 저 배 깔고 누워서 자는 것 봐봐.”, “아이고, 이 녀석. 밥을 오늘도 한 끼도 안 먹었지? 누가 간식 몰래 줬어?”라며 트니를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졌어요. 부모님이 서로 조금 예민해진 시기에는 사람처럼 눈치 채고 안방에 가서 숨어버리는 트니를 보며, 금세 화해하곤 하셨지요. 무엇보다도 부모님에게 가장 큰 변화는 ‘긍정의 언어’를 놀라울 만큼 많이 쓰게 되었다는 거였어요. ‘예쁘다’, ‘귀엽다’, ‘착하다’ 같은 단어를 마흔 먹은 아들에게는 이제 쓰기 쉽지 않으니까요. 서로 민망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은 털북숭이가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갸웃하는 것만으로도 예쁘다는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가족들을 보며, 어떤 존재에게 사랑을 쏟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생기 있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 세계를 넓혀준다는 것도요. 동물 학대에 공분하고, 강아지들이 보호소에서 얼마나 있을 수 있는지와 강아지 번식장이 얼마나 충격적인 곳인지도 알게 됐지요. 그리고 길을 걷다가도 고양이, 강아지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견주들끼리 대화를 나누느라 이웃들도 퍽 많이 사귀게 됐어요. 어떤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걸, 그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지요.
구독자님은 어떠세요? 일상을 함께하는 반려 존재가 있나요? 꼭 동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는 최근에 식물에게도 ‘반려’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제 첫 회사, 제일모직 동기인 광수 형을 통해서인데요. 패션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뜻밖에도 지금 플랜테리어(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와 가드닝(정원을 가꾸는 일)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회사 이름이 참 희한해서 기억에 남았지요. ‘마초의 사춘기’라나요. 저는 물어봤어요.
“형이 마초인 건 알겠고, 사춘기는 뭐예요? 식물 회사 이름이 왜 이래요?”
“너, 내 취미가 꽃꽂이인 거 몰랐냐?”
충격이었어요. 광수 형은 전형적으로 수염을 기르는 남자거든요? 뭔가 꽃꽂이가 연상되지 않는 외모죠. 저는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 그의 자신감 있고 포스 넘치는 외모에 약간 주눅 들 정도였단 말이죠? 그런 그가 꽃꽂이를 한다니, 참 신기했어요. 그런데 회사 이름을 그렇게 독특하게 지은 데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프랑스에서 패션 공부를 하던 광수 형은 꽤 심한 향수병에 고생했었대요. 10대 때도 조용히 지나갔던 사춘기가 그때 왔다나요. 사람들을 만나도, 한국의 친구들이랑 연락을 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헛헛한 마음이 가시지 않던 때에 우연히 가드닝 수업을 듣게 됐대요. 식물을 만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거지요. 어떤 존재를 보살펴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에서, 자기 자신이 한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훗날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다 또 한 번의 사춘기가 찾아왔을 때, 자신을 가장 안온하게 만들어줬던 식물이 떠올랐대요. 자신이 가장 꿈꾸던 일은 패션디자이너였지만, 자신을 가장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일인 가드너(가드닝하는 사람)로 삶의 궤적을 바꾼 거지요.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단 동물만이 아닌 어떤 생명, 아니 생명이 아닌 존재조차도 내 삶에서 교감하고 공생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언젠가 상담 참여자 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자신이 인생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다시 깨달았을 때라고요. 사전에 ‘반려’의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짝이 되는 벗’이라고요. 여러분의 일상에도 짝이 되는 벗 하나를 초대해보면 어떨까요?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 좋아요. 내가 가장 편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선택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존재에게 사랑을 주는 연습 속에서 점차 나 자신에게도 사랑을 주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겁니다.
이번주의 추천
:: 동물농장 - 오봉이와 할머니
제가 반려동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오봉이와 할머니>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견 오봉이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할머니. 몸이 불편한 오봉이를 위해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대기에 늘 업고 외출을 하는 데요. 집 주소를 잊어도, 시장에서 물건 살 것을 잊어도 오봉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것은 잊지 않으려고 집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기억하려 애쓰는 할머니. 그 덕일까요? 그 어떤 알츠하이머 환자 보다도 병의 진행 속도가 더디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그 사랑과 교감은 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정말 할머니가 강아지 때문에 병에 맞서 싸울 힘이 생겨난 거라고? 트니가 찾아오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믿을 수 없었던 감정들을 지금은 저희 가족 모두 매 순간 느끼고 있답니다. '반려'의 소중하고도 특별한 힘, 여러분께도 전해드리고 싶네요.
월간 마음건강 소식
:: 10월 온라인 워크숍이 열렸어요 & 11월 워크숍 안내
지난 10월 26일 오전, 멤버십 구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10월 온라인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지난 달에는 '나와 타인, 그리고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글쓰기 :: 나 사용설명서' 라는 주제로 준비했는데요.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나의 정보들이 꾸준히 모이고 쌓여, '빅데이터'가 되어 나를 새롭게 해석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전해드렸어요. 이번 달 11월 24일에는 '끝나지 않았다! 전화위복 2024를 위한 리마인딩'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 해요. 우리는 12월이 되면 자꾸 한 해가 다 갔구나 생각하지만, 사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꽤 많을 것을 변화시킬수도 성장시킬수도 있지요. 남은 한 달은 결코 여분이 아니라, 의미있는 '변화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리마인딩을 통해 올해의 마무리는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가봐요. (메일로 1주일 전인 11월 17일에 초대장이 발송되니,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12월에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는 오프라인 워크숍도 준비하고 있어요. 멤버십 참여자는 물론, 구독자 전원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저희 에디터들이 열심히 구상하고 기획하고 있답니다. 다음달 레터에서 소식 알릴게요. 기대해주세요 :)
brand story
장재열의 월간 마음건강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매거진, 워크숍, 컨설팅을 통해 스스로 온전히 멈출 수 있는 마음의 자생력을 기르는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 소개된 다양한 가치를 다양한 매개체로 개발하고, 전달합니다. 더 많은 정보, 문의 사항은 아래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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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7일동안 임시보호했던 강아지가 있었는데요. 그당시 저는 한창 바빴던 시기라서 강아지랑 놀고싶지만 자주 못놀았던기억이있어요. 대신 새벽에 야근할때 항상 저랑 잠시나마 놀았던 기억이 생각나네요. 7일이라는 시간 엄청 짧은시간일수도있지만 정말 잠시나마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네요. 그당시 마음이 힘들어서 새벽에 야근을하다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는데 그 강아지가 제 슬픔을 알았는지 옆에서 조용히 있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더 슬프더라고요. 너가 내슬픔을 알아주다니 라고 말이죠.. 지금은 뭐하고사는지는 모르지만 원래 주인의 곁에서 잘살길 간절히 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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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
재밌네요 빙그레 웃고 갑니다~ 트니의 저 일관적인 표정 너무 귀여워요! 먹을 것을 보아도 덤비지 않는 저 말도 안 되는 인내심!(눈은 이미 디저트 앞에서 영혼을 팔은 듯요?!)을 울집 겸댕이들이 1/10만 닮았으면...ㅎㅎ 울집 시고르자브종 반려견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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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글을 읽는 내내 누나 미소를 짓고 있었네요~^^ 이쁘고 얌전한 트니🧡 저도 '사랑'이라는 6살 포메라니안을 키우고 있어서 더 많이 반가웠어요 그래서 재열작가님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너무 공감돼요 사랑이가 저희집에 오면서 저희도 많이것이 달려졌거든요 ㅎㅎㅎ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사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그저 잘먹고, 잘싸고, 잘자고 건강하기만 해다오~~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게되는 존재잖아요^^ 아이들 산책시킨다고 부모님들 건강까지 좋아지시니 1석2조 아닐까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는 순간 인생은 두개로 나눠진다고요 강아지를 키우기 전의 삷과 키운 후의 삶! 다시는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요^^ 트니야~ 잘먹고 잘싸고 잘자고 건강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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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와 저 마초의 사춘기 작품 엄청 좋아하는데! 특히 작년에 별마당 도서관에 있었던 꽃장식은 보자마자 진짜 입틀막.. 대박이다~~ 했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알게 되니깐 너무 재밌네요 ㅎㅎ 뉴스레터 인터뷰에 마초의 사춘기 분들의 이야기도 곧 볼 수 있으려나요? >.< 꺄 (아참 저는 반려 식물을 키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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