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벌써 일 년의 반환점인 요즘, 하늘 보셨어요? 참 푸르러요. 나뭇잎 푸른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지금이 가장 좋은 계절 같더라고요. 오늘은 저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마음으로 레터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생한 대화를 준비했거든요. 아, 한 명의 동행자가 더 있는데요. 저의 단짝 친구 운희 과장님입니다. 저와 그녀, 그리고 당신이 함께 공원을 걷는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즐겨주세요.
조운희 과장.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강연자와 담당자로서 였어요. 참 많은 강연을 가봤지만 이토록 정성껏 환대해 주는 관리자는 처음이어서 기억에 남았었죠. 강연 현장에 가면, 과차장급 관리자는 대부분 실무자들에게 역할을 나누어 주고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정도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분은 제가 오늘 밥을 먹었는지 왜 안 먹고 왔는지, 무대 올라가기 전에 이빨에 끼지 않을 만한 괜찮은 주전부리 거리가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정성껏 신경을 써주시는 거예요.
환대가 주는 힘이었을까요? 단 한 번 담당자와 강연자로 만났을 뿐인데, 그리고 열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데 그녀와 저는 어느새 십여 년 가까이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 일상의 안부를 묻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친구가 되어 그녀의 삶을 보니까 그 섬세한 환대와 배려 같은 것들을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더라고요. 언제나 좋은 상사, 좋은 선배였지만 그만큼 그녀는 언제나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삶이었어요. 거기다 고등학생 딸의 대학 입시까지 겹치면서 늘 피곤에 절어있는 그녀, 얼마 전 동네 어귀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물었어요.
"과장님은 대체 언제 쉬세요?"
"에휴~ 몰라요. 저는 사주에 그냥 밤새도록 밭 가는 소 같은 사주라고 나오니까 뭐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쥬"
"아니, 교회 다니시는 분, 그것도 목사님 따님이 무슨 사주예요? 사주 믿지 말고 좀 삶의 여유를 갖자구요."
언제나 자기 맡은 바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그걸 넘어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동료나 부하 직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까지. 거기다가 딸에게 최소한 할 도리 이상은 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늘 고군분투하면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물었죠.
"과장님 쉬는 시간은 뭘 해요. 쉬는 시간 있기는 하시려나"
"저요 저, 그냥 너무 힘들면 차 안에서 폰 게임해요. 집 도착해서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그 잠깐 동안에요. 어떤 날은 차 대놓고도 진짜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귀가하기 싫은 날 있거든요. 근데 그런 날에는 그냥 멍하게 캔디팡 아세요? 그거 그냥 계속하고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근데 그걸 한다고 딱히 쉬는 것 같지도 않아요."
너무 많은 시간 누군가를 위해서 애쓰면서 살고 있는 그녀. 그녀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생겨도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밥을 다 먹자마자 그녀와 조금 특별한 산책(어떤 산책인지는 레터 말미에 자세히 설명할게요)을 떠났습니다. 아주 더워지기 직전, 아직은 선선함이 남아있는 해 질 무렵의 동네 공원이었죠. 약간은 흐려서 더 좋은 날, 공원을 걸으며 새파란 나뭇잎들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어요.
"과장님, 참 좋죠?"
"아유, 너무 좋긴 좋은데 작가님 내일 새벽에 지방 강연 가셔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새벽 네시인가 일어나셔야 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녀는 여전히 그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었어요. 그런 그녀에게 저는 말했어요.
"아유 지금이 중요하죠. 너무 덥지 않겠다, 장미 활짝 펴서 너무 아름답겠다. 벌레 없겠다. 이런 시기 곧 지나가요. 내일 강연하러야 어떻게든 일어나서 갈 텐데 꽃들은 이 시간 잠깐 지나면 없어지잖아요. 지금이 저희 제일 좋은 계절인데 지금을 봐야죠. 지금을 살아야 하기도 하고요."
"아유 작가님 나이가 딱 좋죠. 저야 뭐 이제 나이 들어서."
오십이 넘어, 이제는 삶에서 좋은 계절이 조금 지나가버린 것 같다는 그녀. 그녀는 일상 속의 계절도, 인생의 계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역할과 페르소나에 충실하며 흘려보내는 것 같았어요. 그 마음이 아쉬워서, 저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죠. 사실은 구독자님께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아니요. 과장님 지금이 제일 좋은 계절이에요."
"왜요?"
"자, 생각해 봐요. 우리가 생물학적인 나이는 다르지만 둘 다. 부모님 아직 안 돌아가셨죠? 아직 크게 병치레하고 계셔서 간병하는 상황 아니죠. 일에서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서 그래도 사건 사고 터지면 수습은 할 수 있잖아요. 전 자녀가 없고, 과장님은 이제 대학을 보냈고. 챙길 아기 없죠.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오롯이 마음 편하게 꽃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네요.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이 시기가 조금만 지나면 우리들의 부모님 중에 한 분은 편찮으셔서 우리가 수발 들러 다니면서, 일과 간병을 하느라 정신없을 테고. 그 이후에는 돌아가실 테고. 돌아가신 뒤에 이 꽃을 보면 지금처럼 마음 편히 놓고 볼 수 있으려나? 잘 모르겠어요. '울 엄마 살아계실 적에 좀 모시고 올걸' 이런 생각 들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긴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시기조차 지나가고 나면 이젠, 내가 아파서 병원 가야 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고요. 어쩌면 이렇게 마음 푹 비워놓고 꽃 볼 수 있는 시기. 인생에서 얼마 없을지도 몰라요."
그 말을 마친 뒤 우리는 한 벤치에 앉아 말없이 30여 분, 눈앞의 꽃을 바라봤어요. 그냥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눈앞의 꽃을 보고, 조금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고, 또 쏴아아 하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죠. 그럴 수 있었던 작은 노하우 하나를 알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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