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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그리고 모든 멈춤을 위하여

7월 2일 ::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2025.07.02 | 조회 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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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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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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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마음건강 큐레이션으로 만나다가 개편과 함께 칼럼으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안단테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글로 여러분을 만난다는 것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일입니다. 굉장히 설레고 딱 그만큼의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미리 골라둔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만져도, 뭔가 부족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매번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구독자님을 만나러 갑니다. 부디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저 적당한 이야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어느덧 무더워진 계절, 상쾌함을 지키는 날들 되시기를 바라봅니다.


 

안단테의 그럴 수도 있는 생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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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목적

 

음악을 듣다가 멈춰 본 경험은 다들 있으시죠? OTT에서 영상을 보다가도 우리는 ‘정지’버튼을 누립니다. 이유는 무척 다양하지만 크게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되돌리기 위해서
잠깐 시간을 벌기 위해서
혹은 완전히 멈추기 위해서


 

이미 알고 있듯이 일상을 채우는 거의 모든 일들에 멈춤은 언제든 들어옵니다. 듣고 있던 음악을 멈추는 것만큼 쉽지는 않지만요. 심지어 되돌리는 일은 종종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만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도 하루에도 수십수백번 우리는 멈춥니다. 그 상황의 전과 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멈춤의 이유는 선택이었습니다. 되돌리기 위해서이든지 잠깐 숨을 고르려고 하는 것이든지 모두 다음 순간의 선택을 위함이더군요. 그렇게 멈춰져 있는 시간은 찰나이기도, 퍽 길어지지도 합니다. 때로는 언제, 어떻게 멈춤이 마무리될지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요. 멈춰져 있는 채로 흐르는 시간은 한 챕터를 잘 닫고 다음 챕터로 가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그 자체를 ‘잠시 멈춤’의 챕터로 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멈췄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멈춤의 시간을 지내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도 다릅니다. 후자에는 조금 긴 잠시 멈춤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자의로 혹은 타의에 의해서, 때로는 그런저런 것들이 뒤섞인 복잡한 이유로 멈춤의 챕터를 쓸 수 있음을 마음 한구석에 둔다면 조금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시작과 끝 그리고 멈춤

 

‘녹다, 용해되다’라는 뜻의 디졸브(Dissolve)는 영상·영화에서는 한 장면과 다음 장면을 연결하는 다양한 기법을 말합니다.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것은 영상도 마찬가지 인가 봐요. 일상에서의 ‘잠시 멈춤’은 일종의 ‘디졸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행위는 멈추어도 시간과 주변 상황은 쉬지 않고 변하니까요.

 

우리의 멈춤이 내내 해오던 한 가지의 마무리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다음에 하려는 일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멈춤의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해지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특히 나의 의지로 멈추지 않았을 때에는 더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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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쓸 수 없이 멈춤을 당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나름대로 큰 멈춤을 선택해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고, 나쁠 것 없지라는 생각과 안 해본 일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난 그저 이용해서 쓰기 좋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응급수술을 받고 퇴원했을 때, 사직을 권고받았습니다. '네 건강을 위해서'라면서요. 사실 그때까지도 절반은 이해가 되고 절반은 내 건강을 이렇게나 염려해 주는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했지만, 이후로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 조직에서 제가 어떤 사람으로 소문이 났는지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쉼을 선택한 저를 다시 움직이게 한 선택이었기에 그때의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이 컸습니다. 대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두어 달을 보낸 것 같습니다. 집 밖으로 나선 어느 날 발이 너무 아파서 ‘왜 이러지?’ 생각해 보니 몇 달 만에 양말을 신었더라고요. 양말과 운동화가 발을 조이는 정도의, 당연해서 자극일 리 없던 것들조차 꽤 큰 부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에만 있던 어느 날,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방영될 당시에는 보지 않았던 것을 그제야 보기로 한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제 가족이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한창 바쁘게 직장을 다니던 시기에 방영했기 때문에 그때는 ‘그랬나 보지. 좋았겠네.’ 생각하고 넘겼어요. 그런데 모든 게 멈추고 나름대로 열심히 쌓아왔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무너진 시간에 놓이니 ‘오빠는 그때 왜 걸었지?’, ‘그 길을 걸으면 좋은가?’ 궁금해졌습니다.

 

tvN 스페인하숙 中
tvN 스페인하숙 中

 

그리고 프로그램의 끝자락에서 오빠의 모습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참을 울었습니다. 주변에 말하지 않았지만 참 많이 울고, 여러 날을 다시 보며 울었어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였고,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걸으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고요. 삶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관성적으로 흐르던 모든 것이 멈춘 시기에, 가까운 가족의 전혀 몰랐던 이야기는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던 제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음~ 됐어. 다 괜찮아.’가 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오빠의 지난 이야기와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가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도, 욕망을 인정하는 일도 모두 수월해졌거든요.

 

이파리와 가지는 흔들리더라도 뿌리가 동요하지는 않게, 가끔 잎이 너무 무성해져서 바람에 흔들리는 일이 많아지면, 잎을 떨구고 가지를 쳐낼 수 있게 수시로 그리고 끝없이 저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전보다 조금 단단해진 어느 날, 지금의 일을 제안받았을 때 흔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하지 않음으로 멈추는 일

 

다시 직장인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고, 불안 요소를 철저히 거르고 차단해서 안전하게 유지하던 마음이 다시 다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2년이 지나도록 저는 참 괜찮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새로운 일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은 꽤 잘 피합니다. 무조건 안 한다기보다는 저의 능력과 현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찾거나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조율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일들은 또 흔쾌한 마음으로 하면 괜찮습니다. 그 과정이 편안하고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제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가 가능한 이유는 개인적인 인생의 시기와 상황이 적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십 대의 직장 생활이었다면, 삼십 대의 열정이었다면 혹은 겪어 온 일들이 없었다면 완전히 다를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렇다 보니 이러고 있어요'라는 정도의 이야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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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나만 아는 내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나에게 물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일’자체를 즐기는 저로서는 트랙 위에 있으면 또 괜히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리해서라도 저것은 하고 싶다며 욕심을 내는 사람이거든요.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 앞에서 의식적으로 이미 트랙을 뛰고 있는 나를 그대로 두고, 새 일의 출발점에 나를 세워봅니다. 저 트랙을 저 속도로 돌면서 과연 새 일을 시작을 할 수 있는지. 그 ‘할 수 있음’이 나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수준인지 혹은 할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양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게 될지. 그도 아니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원래 하던 일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질지 등등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 고민 이후에 한 결정은 스스로 이미 납득한 내용이라서 타인에게 설명을 하거나 조율을 하는 과정도 보다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은 저를 안전하게 해주는 장치가 됩니다.

 

실은 요즘 저런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음으로 한 해의 일을 멈추고자 합니다. 올해 그린 스케치가 사과와 바나나인데, 포도까지 그리면 색칠을 다 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남은 몇 개월은 사과와 바나나를 정성 들여 색칠하는 것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습니다. 제 마음과 달리 이 결정도 결국 타협해야 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다른 일들이 더해져 힘들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낮춰보지는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하게 멈춤으로 시작을 준비하는 일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남은 삶을 위해 충분히 멈추고자 합니다. 휴직이 될지 퇴사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도 삶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저에게 중요한 것은 제가 반백살이 되기 전에, 저희 집 청소년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남은 삶을 위한 온전한 멈춤을 가지는 것입니다.

 

버킷리스트가 없었던 제게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긴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걷는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과 이유를 나도 찾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의 알 수 없는 아픔과 그가 얻은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인생이라는 하나의 트랙에서 벗어나서 두 번째 트랙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요. 장황하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단순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오십살 되기 전에 좀 쉴래요. 하루 종일 걷는 일만 하면서 살던데로 살지 다르게 살지 깊이 생각 좀 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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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때 가지 못하게 된다거나 혹은 다녀왔는데 별거 없고 달라지는 것 하나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는 ‘충분히, 온전히 멈추는 것으로 시작을 준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십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버킷리스트로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라는 것이니까요.

 

멈추는 것으로 시작을 준비하는 일.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하려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어쩌면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온전한 혼자로, 혼자로도 충분한 한 사람으로

 

저희 집 아이는 저의 가장 큰 스승입니다. 아이를 가진 그날부터 오늘까지 스승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결혼 이주로 대인기피증까지 왔던 시기에 임신은 ‘나도 존재할 이유가 있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해 주었고,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였던 모든 시간에 저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엄마가 처음인 저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존재이니 스승이 아닐 수 없지요. (임신이 여성에게 주는 심리적 변화나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그저 저의 경우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혹은 겪으신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아이의 성장은 벅찬 기쁨과 처절한 아픔을 주며 매일 저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저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였기에 너무나 소중해서 혹시라도 제가 과한 욕심을 부리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의식적으로 아이와 저를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요. 육아의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리학 같은 것을 아는 것도 아니지만, ‘내 아이’, ‘내 아들’이라는 단어가 무의식중에 아이를 나에게 속해있는 존재로 여기게 할까 봐 두려웠거든요.

 

제가 그 아이를 존재 그대로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혹부리 영감처럼 욕심이 많은 저라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나의 욕심을 투영하고 나의 결핍을 흘려보내고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다치게 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여리고 선한데 예민하고 고집이 센 아이라서 제 말이나 행동에 다쳐도 제가 눈치채지 못할까 봐 더 무서웠어요.

 

아마도 4살 때부터 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우리 집 4세 남아’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누군가는 웃어넘겼고, 다른 누군가는 엄마라는 사람이 자기 아이를 저렇게 부르냐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에게는 깊은 고민 끝에 나온 무척 중요한 표현이었습니다. 굳이 성별을 붙인 것도 '4살이에요.'라고 하면 늘 성별을 묻는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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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저희 집 청소년은 진심으로 제 자신보다 소중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차차 제가 내려놓아야 할 가장 큰 욕심인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저희 집 청년’이 되어 가는 과정은, 혼자였던 제 삶이 두 사람의 삶이 되고 세 사람이 함께가 된 삶의 정점에서 다시 둘이 되고 곧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롯이 혼자서, 아주 온전하게 멈추려는 분명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로도 충분히, 스스로 행복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으로 서기 위해서입니다.


마치며

 

모든 멈춤에는 이유가 있고,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없습니다. 구독자님이 어떤 날, 어떤 이유로, 얼마만큼 멈추든 구독자님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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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0
    5 months 전

    안단테님의 소중한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노래,OTT에서 수 많은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지만 삶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지는 못했었는데 머리를 띵 얻어맞은 것 같네요. 일시정지의 사유를 되돌아가기 위해, 잠시 쉬기위해, 완전히 멈추기 위해 등으로 생각해보니 왜 쉬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프먼트 뉴스레터를 보다보면 적절한 휴식을 늘 이야기해주시는데요. 휴식의 시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못 쉬는 사람 중 하나이거든요ㅎㅎ 정지가 아니라 일시정지 한다고 생각하고 쉴 때 쉬는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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