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요즘 카페에 가시면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무엇을 고르시나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얼음이 들어간 음료를 찾고 있습니다. 공기의 촉감이 살금살금 바뀌고 볕의 온도가 달라지더니 여름 안으로 한걸음 더 들어왔네요.
실은 저의 계절이 매년 달라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 ‘얼. 죽. 아’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일 년 중 찬 음료를 주문하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그 빈도도 적어지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달력이나 절기가 말해주는 계절과 내 인생의 시계가 말해주는 계절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2025년의 제 여름의 시작은 출근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여름의 끝자락은 아침에 테이크아웃하는 커피가 뜨거운 음료로 바뀌는 날일 것 같습니다. 구독자님의 여름은 무엇으로 시작되었나요?
안단테의 마음건강 큐레이션 _일상
매일을 빽빽하게 살아도 '어느덧'은 온다
시간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요? 때로는 야속하고 가끔은 답답해도 언제나 흔들림 없이, 변함없이 참 꼬박꼬박 흐릅니다. 한번 실수도 없이요. 그런 녀석 덕분에 우리 모두 사용하는 마법의 문장도 생겼죠.
‘아, 시간이 왜 이렇게 빨라아~~~’
‘아이고 참 시간 되게 안가네...’방학이, 휴가가, 지루한 수업 시간이, 퇴근 30분 전의 시계가 그럴 거예요.
남녀노소를 떠나서 누구나 한 번쯤(아니 꽤 자주) 해본 말 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 한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그렇다는 것은 인생을 놓고 보아도 시간의 유한함이라는 전제를 넘지 못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저마다 참 열심히, 분주하게 삽니다.
이전 직장에 다닐 때 자주 했던 말은 ‘시간의 밀도’였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지점이고 그 밀도를 끝없이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큰 틀에서는 같은 생각입니다만, 그때는 일에 한해서만 밀도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것이 다르지요.
그렇게 시간의 밀도를 따지니 매일 매 순간이 참 빡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좌우를 가린 경주마처럼 달리면서 결코 멈추거나 물러나는 법을 모르고 푹 빠져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그런데 인생이 에피소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매일 혹은 어떤 기간 동안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있겠지만 인생이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떨어져 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때문에 우리는 가끔 ‘어느덧’을 마주하게 됩니다. 삶을 더 잘 살아보려고 바짝 긴장해서 열심히 바쁘게, 밀도까지 높여가며 빽빽하게 살아도 ‘어느덧’을 피해 가기는 어렵습니다. 마치 잡초처럼 어디서든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나거든요.
어쩌면 ‘어느덧’의 이유는 시간과 그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형태도 없고 색도 향도 없으니 그것을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요. 그러니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의 상황이 생기는 것은 필연인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생길 일이라면 ‘어느덧’을 마주했을 때 조금 더 긍정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시간 이 녀석은 보이지 않잖아요. 어쩌면 게으름 부리거나 우리 몰래 휴가를 다닐지도 모르겠어요. 흠흠.)
밀도나 속도보다 중요한 것
7~8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십 대 중반, 욕심과 욕망이 들끓던 시절에 찾아다닌 인문 강연 축제에서 큰 충격으로 남은 문장이 있습니다.
‘한 백 년을 살아보니까, 오십 정도까지는 가고 싶은 방향만 찾아도 충분하더이다.’
철학자 김형석(1920년생)
당시 98세의 나이로 강단에 선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굉장한 위안에서 오는 충격이었어요. 나의 삶과 자녀의 삶, 가족의 삶까지 모든 것이 어렵고 무겁다고 느끼던 저에게 ‘괜찮아’라는 말로 들렸거든요. 오십 정도까지는 내 인생이 닿고 싶은 방향만 찾으면 충분하다니요. 자식 여섯을 키워보니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찾게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그마저도 조급할 이유가 없다니요...!
우리 사회에서 결코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기도 했지만, 72세나 86세 어르신이 말씀하셨다면 시니컬했던 저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백세를 목전에 둔 할아버지잖아요. 신뢰와 안도가 한 번에 몰려오면서 지금까지 나를 몰아세운 어린(?) 어른들의 말과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도 했고, 살아온 시간의 관성과 쉬이 버릴 수 없는 욕심이 있다 보니 일상이 바로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단하고 짜릿한 자극이었던 당시의 모든 분들의 모든 언어 중 여전히 또렷한 기억은 그 한 문장이더라고요.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저에게는 무척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몰입해서 밀도를 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통해 닿고자 하는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덧’을 만날 때마다 지금 내 방향이 맞는지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물러서야 보이는 것들
서 있는 자리에서는 지금 나의 위치와 내가 향한 방향을 알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완전히 거리를 두고 볼 때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넘치는지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을 단순하게 경험했습니다. 이젤 앞에 앉아 그려야 할 대상을 파고들어 4~5시간 만에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과정에서 밀도 높은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형태와 그림 안에서의 강약 조절입니다.
그려야 하는 형태가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밀도를 높여도 그 그림은 이미 손쓸 수 없는 결과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전체의 균형에서 힘을 주어야 할 부분과 풀어줘야 할 지점을 잘 찾아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요.
그런데 도화지에 그림 한 장을 그릴 때도 앉은 자리에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시간 내에 완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그림에서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형태와 균형을 잡아야 하는 초중반까지는 더 자주, 더 정확하게 관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정이지요. 내 그림이 닿을 목적지가 잘 만들어지면 이후부터 밀도를 높이고 섬세한 표현을 하는 일에 즐겁게 몰입하면 됩니다.
김형석 선생님의 말씀은 그때의 감각을 상기시키며 더 강렬하게 와닿았습니다. 인생이라는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밑그림을 분명하게 그려내는 것이 꼭 필요하고 가장 중요할 수 있다고 느껴졌지요.
요 근래 저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만나고자 하는지에 대한 나의 기준과 가치관을 찾는 것에 꽤 많은 마음을 씁니다. 그리고 그 일에 의미를 두면서도 하루하루는 변함없이 정성스럽게 살면 그것으로 괜찮은 인생일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관망하기
전통적으로도 ‘물이 반이나 있네’ ‘물이 반밖에 없네’ 와 같은 관점의 전환에 대한 예는 참 많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에서부터 ‘럭키비키’까지를 관통하는 맥은 결국 하나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관점의 전환은 스무 살 교양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건넨 인사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잘 죽고 있나요?’
수업의 시작과 함께 건네신 그 인사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니 뭘 저렇게까지... 시인이라고 티를 내려고 저러시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뇌리에 박혀 이후에도 종종 떠올랐고, 곱씹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참 진해지더라고요.
우리는 언제나 ‘살아있음’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기본값이지요. 그래서 사는 동안에 이루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좇아 달려갑니다.
보편적으로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연봉이 높거나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거나 혹은 대단한 사업가가 되거나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 차, 가정을 가지려고도 합니다. 자녀를 낳는다면 그 자녀도 그러한 방향의 ‘잘 살아야’한다는 큰 흐름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면서요.
그 교수님의 인사처럼 ‘살아간다’의 다른 표현은 ‘죽어간다’일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순간부터 언젠가 만날 죽음에게 매일매일 다가가고 있으니까요. 단지 우리가(혹은 사회가) ‘살아있음’을 주인공으로 정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하던 흐름을 잠깐 멈추고 의식적으로 죽음에게도 조금 비중을 나누어주면 어떨까요?
대단하지 않지만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가끔씩 ‘나 오늘은 얼마나 잘 죽었지?’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발견한 재미있는 차이는 비움의 수월함에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잘한 일들이 먼저 떠오르다가 종종 미처 하지 못한 아쉬운 일들도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나면 ‘아~ 오늘도 잘 살았는데, 이거 조금 아쉽네. 내일 해야지! 그래도 고생했네! 자자!’라며 나름대로 긍정적이지만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더하는 방식의 사고를 합니다.
반대의 경우는 달라집니다. 하루 동안 죽음에게 얼마나 잘 다가갔는지를 물으면 소소한 일들을 떠올리기보다는 그리는 인생에 가까운 시간이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저의 경우에는 ‘충분히 정성스러웠나’, ‘마주한 사람들에게 다정했었나’,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했나’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아쉬우니 내일 더 잘해야지!’보다 ‘응, 그래도 참 애썼네. 고생했다. 잘 자야지.’가 되고는 하더군요.
왜 그러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고 그저 제가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생(生)은 더하는 과정이고 사(死)는 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정서적인 흐름이 그리 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오늘의 추천
사회적 분위기가 분명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양한 가치관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방식으로요. 저 역시 그 덕분에 사회 안에서 생각의 변화를 겪으며 느리게 인식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관심 가지게 되는 타인의 삶도 생기는 것 같아요. 연예인 두 사람의 관점을 소개하며 ‘묘비명 짓기’를 해보는 것을 살포시 제안합니다.
이찬혁의 '장례희망'은 그의 가정과 종교적인 배경을 차치하고서도 매료되었던 곡입니다. 젊은 나이에도 반드시 만나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린 그의 시간이, 도리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느끼게 해주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노홍철입니다. 묘비명을 ‘좋아. 가는 거야, 뿅!’으로 할 거라던 것은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최근 자신의 공간에 만들었다는 ‘관짝방’은 죽음 앞에서 얼마든지 유쾌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고민한다.’
‘20대 30대 때는 그런 생각 안 하지 않나. 이제 그런 것을 좀 부담 없이, 테이블에 브라우니를 두고 여기서 먹으면서 생각을 해봐라. 죽음이든 삶이든 오늘이든 내일이든 어제든.’노홍철 인터뷰 중
누구나 와서 브라우니 두고 먹으면서 생각을 해보라는 그의 말이 퍽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진지하고 무거워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문턱을 낮추게 되고 잠깐씩 떠올리고 잊을 수 있는 정도의 일상적인 흘러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임종체험’이 아닌 ‘묘비명 짓기’를 추천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을 먼저 경험해서 무겁고 진지해지고 싶지는 않아서요. 어느 날 죽음에 닿았을 때, 그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남기고 싶은지 생각하는 정도로 사는 동안에 가려는 방향을 조금 더 분명히 찾고 싶을 따름입니다.
마치며
한 해의 반환점을 지나기도 했지만 인생의 반환점도 지난(혹은 가까워진) 시기에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내내 고민한 저의 묘비명은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던 행복한 사람’입니다. 조금씩 변할 수도 있겠지만 큰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으며, 그런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밀도를 채우고 섬세함을 더하는 일상을 지내봐야겠어요.
다음 달에도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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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월간 마음건강에서 안단테님 글을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이번 글도 역시나 무지하게 좋군요. 전달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많으셔서 읽고나면 되게 배부른 느낌이에요. ㅎㅎ 연예인 노홍철은 알면 알수록 자기 소신도 뚜렷하고 참 멋진 사람인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열정보다 무료함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분처럼 삶에서 뜨거운 온도를 지속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요즘 저의 가장 고민이 남은 인생의 '방향성'과 '목적지'를 어디에 두고 노력과 시간을 쏟을것인가 인데요. 아주 시의적절한 글이었답니다.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께서는 전혀 조급할거 없다고는 하시지만.. 현생을 살아가는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저는 마음이 계속 조급해지네요. ㅎㅎ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안단테
유캔두잇님 안녕하세요:-) 너무나 큰 칭찬을 주셔서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감동했어요. 깊이, 고맙습니다. 유캔두잇님의 말씀도 정말 참 공감이 돼요. 사실…하루에도 최소 수십번씩은 크고 작은 일들 앞에서 조급해지지요. 그저 수시로 ‘아이고 급했네. 숨 좀 고르자’, ‘아. 맞다. 좀 물러나자.’ 이런 순간들을 무한반복 하면서 잊지는 않는 사람으로 내내 지내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목적지가 어디즈음인지 찾고 그 방향으로 가시는 길에 고속도로만 있지 않더라도 산책처럼 가실 수 있기를 기도할께요. 고맙습니다. 편안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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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죽음이라고 하면 괜히 두렵고 어두운 이미지로 볼 수 있는데 요즘에는 웰다잉의 의미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도 안단테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긴 한데요. '언제 죽어도 후회없는 삶을 살자'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루하루 후회없이 살되 지금 떠나도 후회되는 것 없이 떠나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마치 내가 죽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서요. 오늘도 안단테님의 글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봅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안단테
도로시님, 안녕하세요 :-) 언제 죽어도 후회없는 삶. 사실 정말 그렇잖아요. 사람 일이라는게 말이예요. 신이 있다면 원래 저에게 주어진 삶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지금보다 더 극단적(?)이었을 때는 매일 아침에 ‘오늘 죽을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열심히, 최대한 솔직하게 살아야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또 너무 과하게 열심히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식으로 하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도로시님이 말씀해주신 하루하루 후회없이 살되 지금 떠나도 후회되는 것 없이 떠나자는 말씀이 멋있게 느껴집니다. 비우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바탕에 있는 것 같아서요. 늘, 고맙습니다. 다음달에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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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저도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데요 안단테님이 말해주는 '시간의 밀도'와 닮은 말이죠~ 가끔은 뭘 그리 쪼개고 쪼개서 효율성을 높이며 뿌듯해하는지.. 그러고 있는 내가 참 애쓴다 싶어서 조금 내려놓았다가도 뭔가 또 한쪽 구석에선 채근하는 소리가 들려 다시 달릴 준비를 하죠 ㅎㅎㅎ 그래도 이렇게 레터를 통해 다시 상기 시키면서 중심을 잡아 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에 대한 후회나 반성보다는 그래도 하루를 잘 보낸 나를 칭찬해주자는 이야기로 정리했어요 지금껏 채찍을 때렸다면 이제는 당근을 주면서 잠들어 볼께요^^ '다정하고 정성스러웠던 행복한 사람' 안단테님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단테
사랑이누나님 안녕하세요:-) 쪼개고 쪼개서 효율성 ㅎㅎㅎㅎ 맞아요 맞아요.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아는 뿌듯함이죠 ㅎㅎ 저도 예전에 타이트하게 지낼 때 ‘와…이렇게까지 열심히 살면 진짜 능력이 생기든 돈을 벌든 뭐 하나는 이룰 것 같긴 하다!’ 생각했었는데, 종종 ‘아니 그런데…뭐 하나가 생기면…뭐하지? 안 생기면 큰일나나?’ 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요즈음은 그냥 ‘삶이라는 게 원래 오락가락도 하고 다짐했다가 흔들리기도 하고, 뒷걸음도 걷다가 달리기도 하는 그런건가보다’ 그러고 있어요. 사랑이누나님 오늘 저녁, 주말 동안에도 당근 가득한 시간되시길 바라요. 그리고 저의 묘비명을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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