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안녕하세요. 에디터 민정입니다 :) 새해가 밝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중순입니다. 시간이 정말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어요. 이달부터 새롭게 꾸려진 레터는 재미있게 읽고 계시나요? 저는 매월 금요일에 발행하던 레터를 수요일로 옮기게 되면서, 더욱 많은 구독자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설렌답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저의 소소한 일상 속 한 조각을 맛있게 훔쳐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레터, 시작해 볼까요?
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의존적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의외로 굉장히 의젓한 사람이 돼요."《대화의 희열》 中
어느 날 유튜브 영상 속 오은영 박사님의 말을 듣고 멈칫했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의젓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살았거든요. 가끔은 인생 2회차냐,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른 모양새를 하곤 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또래에 비해 꽤 의젓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뭐든 타인의 도움을 구하기보단 직접 해결하는 아이였거든요. 답이 없는 문제를 갖고 징징대는 법이 없었어요. 이혼 후 매일 술에 절여져 사는 엄마, 극심한 스트레스로 어긋나버린 오빠. 그 때문에 집안에 바람 잘 날 없던 시절에도 가만히 울고 있지 않았습니다. 홀로 집을 나와 상경한 후 주도적인 나만의 삶을 꾸렸어요. 기댈 구석 없이 시작한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찾아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을 떠나 혼자서도 잘 살아낼 방법을요. 그 시절, 제 곁에 있어 주었던 친구들은 여전히 어린 날의 제 독립심과 용기에 박수를 쳐주곤 해요.
그랬던 저의 의젓함이 완전히 무너졌던 시기가 있어요. 바로 신랑과의 연애가 무르익어가던 무렵입니다. 별거 아닌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 말도 안 되는 고집를 부리며 신랑을 제 옆에 묶어두려 하기 시작했어요. 참 이상하죠. 저는 그 당시에도 모르지 않았거든요. 지금 내가 뱉는 말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얼마나 충동적인지,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말이에요. 그런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향한 사랑이 커질수록, 그가 주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저는 어리광 부리는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화면 속 오 박사님의 멘트가 이어졌어요. 모든 아이들은 부모에게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나를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의존적 욕구'가 있는데, 이것을 부모에게서 제대로 채워내지 못하면 '허구의 독립'이 형성돼 의젓한 사람이 아니라 '의젓해 보이는 사람'이 된다는 내용이었죠. 그런 아이는 어른이 되어 배우자나 자식에게서 그 욕구를 채우려한다고. 그 과정 속에서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는 설명과 함께요.
영락없는 제 얘기더라고요. 여유롭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황들, 거기서 비롯된 지친 마음을 자식들에게 토해내던 엄마의 목소리가 비수로 날아와 제게 꽂힌 적이 많았어요. 그러니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이미 본인의 삶만으로 버거워 보였거든요.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건 당연히 나일 것이라 느끼지 못했어요. 부모에게 자식은 짐일 뿐이고, 내 엄마에겐 그 무거운 짐짝이 두 개나 있다고 생각했죠. 그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할지언정, 더 얹어주는 자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겉으로 굉장히 독립적이고 의젓한 아이로 보였지만, 커다란 구멍을 가진 채 자란 어른이 된 거였죠.
그런 나를 너무나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니 가면처럼 쓰고 있던 의젓함이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혼자 있기 싫으니 같이 있어달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요. 조금만 아파도 큰일이 난 듯 울먹였어요. 나 다쳤으니까, 아프니까, 얼른 달래 달라고 징징거리면서요. 할 수 있는 일도 자꾸만 도와달라고 하게 됐어요. 저 접시 좀 꺼내줘, 이 뚜껑 좀 열어줘 같은 부탁이 잦아졌습니다. 집이 가난하기도 했지만 "용돈 어디 쓰는지 엄마한테 다 보고할 바에 내가 돈 벌고 만다"며 17살 때부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신랑의 벌이에 기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온전히 쉬어보기도 했어요. 오 박사님의 말에 의하면 이런 현상을 '정상적 퇴행'이라고 한대요. 굉장히 각별한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의존적 행동이라 하더라고요.
누구보다 의젓한 줄 알았던 저는 결코 의젓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토록 갈망하던 안정감을 얻고 나니, 제 안 곳곳에 숨어 있던 결핍들을 마주하게 됐어요. 가족이 싫다면서 누구보다 먼저 가정을 이루고, 혼자 다 감당할 것처럼 굴다가도 언제든 기대 울고 싶어 하고, 무슨 일이든 해결책이 가장 중요하다 해놓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금세 힘을 내는, 굉장히 다양한 양면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거죠. 본캐와 부캐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적으로 설정해 둔 캐릭터로 어른스럽게 잘 지내다 신랑 앞에서만 진짜 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에서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의젓하지 않아도 괜찮다는걸요. 가끔 서툴고 불안정한 모습을 들켜도 내 인생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걸요.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건 되려 나와 더 친해진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민정아, 아직 어릴 적 상처들이 다 아물지 못했나 보구나?"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도 배웠죠.
혹시 여러분에게는 꽁꽁 숨겨두었던 나만의 본캐를 들키게 되는 사람이 있나요? 애써 쌓아두었던 벽이 자꾸만 허물어지거나, 평소의 나답지 않은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사람이요. 그럴 때 "난 왜 이렇게 성숙하지 못할까?"라며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세상에 이유 없는 결핍은 없더라고요. 어떤 날엔 에라 모르겠다! 상대에게 기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그 사람이 뻥 뚫린 내 결핍을 꽉 채워줄 인연일지도, 나도 몰랐던 '진짜 나'를 가르쳐 줄 은인일지도요.
오늘의 추천
'Close to you'
오늘은 포근한 올드팝 한 곡을 추천합니다. 들을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요즘 부쩍 자주 듣는 곡이에요.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신랑과 자루가 자주 생각나더라고요. 저에게 너무 소중한, 너무 많은 사랑을 주는, 내게 내려진 천사라 느껴지는 존재들이요. 영상 속 자막에 가사가 담겨 있으니, 사랑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들어보시길 추천드려요!
brand story
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와 매거진은 늘 애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쉼의 밸런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연구하는 마음건강 예방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에서 만듭니다. 아래의 홈페이지 버튼을 눌러, 본 아티클 외에도 교육, 워크숍,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오프먼트의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뉴스레터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도 만나보세요. 조금 더 긴 호흡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매거진 전용 아티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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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아직은 추운 겨울 아침에 이어폰을 꼽고 포근하고 몽글한 노래를 들으니 갑자기 다른 세상에 와있는거 같아요! 오늘도 민정님의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쉽지않은 환경에서 바르게 의젓하게 멋지게 자기자신을 만들어간 민정님이 내면에 꽁꽁 숨겨두었던 진짜 민정님을 남편분을 통해 만나게 됐다는 것이 저에겐 감동으로 전해지네요 민정님이 무장해제 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저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괜찮다~괜찮다~해주는 이곳이 있어서 하루하루 제 삶도 제 마음도 더 괜찮아집니다! 감사합니다
민정
'무장해제'라는 말 정말 딱인 것 같아요! 너무 편안하고 기분 좋아지는 단어네요💗 제 레터가 사랑이누나 님께 잠시나마 무장해제되는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따스한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다음 달에 또 만나요! (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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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아직 어릴 적 상처들이 다 아물지 못했나 보구나?"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도 배웠죠. 저도 최근에 제 이야기를 스피치로 준비하면서 제 자신의 어릴적상처를 다시 돌아보고 그리고 뒤늦게라도 소리치고 울면서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토로한적있었네요. 부모님이 돌아가시전에 이 이야기를 안하면 너무 후회될것같다고 말이죠. 내 상처를 알려주고싶었어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말이죠. 그래서 전에는 모든게 다싫었는데 조금 쏟아내니 마음이 전보다는 응어리진게 조금 부드러워진것같아요.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민정
정말 너무나도 이해되는 마음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부모님의 마음이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내 상처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요.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은연중에 내뱉고는 했지만, 저는 아직 충분히 전달하지는 못한 것 같네요. 말하는댄서 님께서는 그런 부분들을 표현하셨다니, 정말 용기 있으시네요! 무엇이 되었든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셨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토닥여 드리고 싶어요🍀 솔직한 경험 공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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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프로도
정상적 퇴행이 두려워요. 그래서 스스로 재양육을 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를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우선 자책을 덜 해봐야겠어요ㅎㅎ 레터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민정
저는 저도 모르는 새 그런 과정들을 거쳐왔지만, 미리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상적 퇴행이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새로운 관점이네요. 마음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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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저는 저의 반려노트북(ㅎㅎ) 맥북과 함께 추천해주시는 노래를 들으며 야심한 밤🌰에 오프먼트 레터보는 시간이 아주 소중하답니다. 최근에는 레터를 읽을 시간이 없어서 계속 레터들이 쌓였어요. 오늘밤에도 할일이 많지만 오늘까지 안보면 더 밀려버릴 레터들이 생각나서 다른 일을 미루더라도 레터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근데 민정님의 이야기도 공감되었는데 마지막에 추천곡을 들으며 너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네요.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많이 깨닫는 요즘입니다. 주변인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크고 그 존재가 있음에 정말 감사하네요. 여기 레터쓰시는 필진분들은 따로 음악공부도 하시나요? 어쩜 매번 이렇게 찰떡같은 노래를 추천해주시는지... 감동입니다. 그리고 민정님의 이야기를 이렇게 밖으로 꺼내기까지 참 쉽지 않으셨을텐데 오늘도 큰 용기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의젓한 편이라 어렸을 때의 충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도 허구의 독립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소중한 시간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정님의 하루하루를 늘 응원하겠습니다!
민정
ㅎㅎㅎ추천곡이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뿌듯하네요! 앞으로도 자주 추천해 봐야겠습니다🙂 자주 남겨주시는 댓글에 큰 힘을 받고 있어요! 항상 저의 글에 따뜻함을 더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도로시님의 모든 날들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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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민정님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단단한 심지가 느껴져서 너무 든든한 느낌이에요. "누구보다 의젓한 줄 알았던 저는 결코 의젓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토록 갈망하던 안정감을 얻고 나니, 제 안 곳곳에 숨어 있던 결핍들을 마주하게 됐어요. 가족이 싫다면서 누구보다 먼저 가정을 이루고, 혼자 다 감당할 것처럼 굴다가도 언제든 기대 울고 싶어 하고, 무슨 일이든 해결책이 가장 중요하다 해놓고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금세 힘을 내는, 굉장히 다양한 양면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거죠."라는 민정님의 담담한 고백이 저도 공감되는 것 같아요. 저도 결혼을 조금 빨리한 상황인데 어쩌면 누구보다 가족이 중요해서 안정감을 얻고 싶어서 내 가족의 불완전함을 보는게 어려웠던 게 아닐까 그래서 회피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도 불완전해도 괜찮지만 조금 불완전한 가족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보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데 조금 더디더라도 서툴더라도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진짜 나와 가족을 보려고 노력해보려고요. 덕분에 또 이렇게 용기를 얻고 갑니다. 감사해요.
민정
심청 님! 반갑습니다😊 즐거운 일상 보내고 계시나요? 오늘도 제 레터를 심청 님만의 따스한 눈길로 읽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심청 님 역시 내가 선택한 가족에게서 느끼는 안정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라 더욱 공감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저도 덕분에 늘 용기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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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저는 의젓하지 않은 사람같아요. 연인에게는, 친한 친구에게는 한없이 의존적인 사람이거든요. 나약하고... 그렇지만 전 이런 제가 좋아요. 이런 나약하고 의존적인 제가 좋아요. 이런 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제가 좋아요. 그리고 이런 나약하고 의존적인 저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는, 제 옆에 그대로 있어주는 소중한 인연들이 고맙고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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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의젓한 사람', '든든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가끔 그런 말들이 체할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감사하긴 하지만.. 그냥 좀 듣기가 싫달까요..? 저는 저 자신을 제일 잘 알잖아요. 나는 '의젓한 사람'도 맞지만 사실은 '의젓해 보이는 사람'이기도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저도 더 체하기 전에 어리광도 막 부리고 쓰윽 기대어 결핍을 보여줄 수 있는 운명의 짝을 만났으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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