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에디터 민정입니다. 작년 가을, 첫 레터를 발행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025년이네요. 저는 새해가 되면 모든 것들이 초기화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특히나 이뤄내지 못한 것들, 실수한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이요.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차오르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지나간 한 해에 유난이 아쉬움이 남는다면, 지우개로 박박 지워내기조차 버겁다면, 앞장에 잠깐 덮어둔 채 다음 페이지를 써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덮어두었던 페이지까지도 내 삶의 소중한 조각이 되어있을지 몰라요.
언젠가 제가 참 존경하는 분께 '부끄러워질 기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무언가에 부끄러운 마음을 느껴 보았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꺼내볼까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저는 중고등학교 내내, 아니 졸업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였어요. 도대체 이미 지나간 일들을 왜 이리도 자세히 알아야 하는지, 왜 달달 외워야 하는지, 게다가 왜 시험까지 쳐 점수로 매겨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죠. 공부라는 것 자체를 즐기던 아이는 아니었지만, 특히나 국사 시간은 괴로움 그 자체였어요. 흥미에 따라 과목별 편차가 극심했던 저는 수학 성적 우수상을 받음과 동시에 국사 반 꼴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사적 풍경이 담긴 '사극'도 즐겨보지 않았어요. 어쩐지 그 모든 게 지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신랑의 바램으로 한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바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웅'입니다. 저와 달리 걸어 다니는 역사책이라 불릴 정도로 지난 시대의 기록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신랑 덕에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너를 안아봤으면...너를 지금, 이 두 팔로 안고 싶구나"
영화 '영웅' 中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나문희 배우의 대사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후 사형 집행을 앞둔 아들을 그리워하며 읊조리던 말이죠. 여러분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 아시나요? 그 작품을 보고도 울지 않던 제 눈앞이 나문희 배우의 대사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흐려졌어요. 그날 역사물에 그리도 관심 없던 저는 상영관에 앉아 내내 코를 풀어야 할 정도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나보다 소중한 반려동물이 생기면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저도 모르게 달라진 거였죠. 교과서나 시험지에 실리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 여겼던 몇 줄짜리 사건들이 내게 언제고 들이닥칠 수 있는 '가족의 붕괴'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거든요.
그제야 알게 됐어요. 학창 시절 내내 국사 선생님이 입이 닳도록 전하려 했던 것들은 고작 성적표 따위에 낙인 될 숫자를 위해 무지성 암기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걸. 지금 내가 당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일상은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했을 사람들의 피눈물로 만들어졌다는걸. 그러니 지금껏 내가 태어난 나라의 역사에 무지했던 것은 평생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라는걸요.
이후 시대극이나 역사물을 볼 때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가슴 아프지 않을 수가,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지난달, 여의도에 모인 수많은 국민들의 외침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날의 함성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자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자들의 목소리가 모여 온 나라에 울려 퍼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이대로면 좋겠다.
아무도 안 죽고, 아무도 안 다치고..."
최근에 본 영화 '소방관' 속 대사에요. 동료를 잃은 구급 대원이 옥상에 앉아 나지막이 저런 말을 뱉더라고요. 그냥 이대로면 좋겠다고. 아무도 죽지도 다치지도 않은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일은 비단 독립운동이나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보다 귀한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지구를 위해 환경 보호에 힘쓰는 것, 소중한 내 반려동물이 겪었을지도 모르는 지옥을 상상하며 동물 보호에 관심 가지는 것,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밤낮없이 불길에 혹은 사건사고에 뛰어드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었다면 지나간 역사가 그토록 아프지도, 평화로운 일상이 이토록 간절하지도 않았을지 몰라요. 우리 모두에게 나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기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지금의 삶을 지켜내고 싶은 거겠죠. 여러분에게는 꼭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아마 그걸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
이번주의 추천
'나문희 -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겠지만, 오늘의 레터에서 언급했던 영화 '영웅'의 한 장면을 남겨봅니다. 이 영상은 아무리 여러 번 봐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는 자, 그런 아들이 가려는 길을 묵묵히 각오하는 엄마.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저렇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과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brand story
장재열의 off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공간, 사물, 교육을 통해 온전히 멈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브랜드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서 소개된 다양한 개념들이 구체적인 제품과 공간, 워크숍으로 구현되어 당신의 일상에 멈춤의 순간을 만듭니다. 아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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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역사를 흥미로 좋아했는데 민정님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왜 민정님과 같은 시각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지?라는 생각과 함께 역사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되네요. 지금의 일상에서 단순히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민정님의 레터를 통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니 지금의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민정
요즘 역사의 가슴 아픔을 느낄 때마다 조금 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라도 조금씩 알아가야겠지요! 항상 다정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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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저도 소방관 영화를 보았는데요. 결말을 알고도 영화를보았는데, 사실 그냥 영화였으면 뻔한 레파토리영화라서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실화라서 더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영화였지만 실화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불타는 순간순간이 너무 놀라고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이들었네요. 그러면 그들의 직업의식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들었고 저라면 상상도못했을 일들을 항상 해내고있는 분이 존경스러울 지경이네요. 최근에 봐서 그런지 저도모르게 감상평을 여기다남깁니다 ㅎ
민정
맞아요! 저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그런지 그 끝을 알면서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 애써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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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학창시절 역포자 였던 저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특히 요즘같은 말도안되는 시대역행이 일어나고 있는 시국에는 더더욱이요 그래서 요즘 한국 현대사 책을 읽고 있는데요 정말 마음이 답답해지는 역사들이 줄줄이 나오더라고요 최근에 있었던 대형참사들만 해도.......... 정말........ 더이상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사는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나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라고 선언하는 거 같아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믿어요! 글을 읽는 동안 환하게 웃던 민정님 얼굴이 떠올라서 더 반갑고 행복했답니다^^
민정
사랑이누나님! 송년 워크숍에서 뵙고 이렇게 또 댓글로 만나게 되니 새삼 더욱 반갑습니다🥰 행복한 새해 맞이하셨나 모르겠어요! 앞으로 더욱 자주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맞아요. 저도 아직 마음만큼 지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역사를 알야아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점점 더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제대로 알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말씀에 강하게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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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하루
요즘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은근 많더라고요. 역사 속 이야기가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저는(특히 근현대사) 요즘 정치 이야기도 딱히 관심도 없고 그랬답니다. 아니, 그렇답니다. 사실 아직도 관심은 솔직히 없어요. 음 그럼에도 역사를 조금 더 사랑해보는 시선을 가져보고 싶어요. 왠지 모르게 세상을 편식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였는데 덕분에 역사라는 키워드를 하나 품고 갑니다.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민정님☺️
민정
저도 무지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어떤 분야든 내가 유난히 끌리고, 관심 갖게 되는 적절한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 대신 다른 중요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계실 테고, 살다가 필요에 의해서 혹은 삶의 관점이 변하면서 역사가 궁금한 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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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영화 '영웅' 저도 참 재미있게 본 영화랍니다. 마지막 즈음에 나문희 배우님이 아들을 위해 손수 옷을 지으시며 슬픔이 절제된 목소리로 '그냥 죽으라' 라고 말할 때 정말 펑펑 울었던 기억이나요. 다시 보고 싶네요 ㅎㅎ 오늘 글도 잘 읽었습니다. :)
민정
영화 '영웅' 정말 재밌었죠! 저도 나문희 배우가 나오는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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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저도 민정님처럼 학창시절에는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 역사를 알아야 세상을 제대로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여러차례 응시해보았습니다.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시험준비를 기점으로 역사에 더욱 관심갖게 되더군요.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 희생하신 누군가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고, 힘들었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이전 공부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말씀주신 영화 소방관과 영웅 모두 아직 관람하진 못했지만 꼭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민정
남겨주신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 영화 영웅과 소방관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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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저는 20살부터는.. 아무리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이 있어도, 너 지금 당장 천국갈래 아니면 더 살래? 라고 누가 물으면 곧바로 당장 천국에 갈래를 선택할 만큼 인생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는데요. 작년 중순부터 엄마가 생사를 오갈만큼 크게 아프신 이후로는 그 생각이 더 짙어진 것 같아요. 이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 생각은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잃을수도 있다는 너무나도 큰 아픔을 직면하기 힘드니 내가 먼저 가버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인한 생각같네요. 참 씁쓸하고 슬퍼서 서글프네요. 사랑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민정
밀리님, 자기 전 지난 레터들을 쭉 - 내려보다 이 댓글을 참 늦게 발견했네요 😊 요즘은 좀 어떠신가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사랑도, 삶도, 죽음도 무어라 정의 내리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 나가는 게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밀리님의 일상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라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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