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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2025.06.18 | 조회 94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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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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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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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민정입니다! 어느덧 6월 중순이네요. 유난히 봄이 짧았던 탓인지, 올해의 시간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달아나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한낮이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밤바람에도 여름 냄새가 스며 있더라고요. 다가올 한여름을 생각하면 벌써 두렵지만..! 모두 오늘의 따뜻한 햇살을 즐기실 수 있길 바랍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시작이 빠르면 결말도 좋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열정은 넘치는데 오래 가지 못했고, 잘하다가도 갑작스레 힘이 빠졌죠. 삶이 오래달리기처럼 속도보다는 호흡과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025년의 반환점에 서 있는 지금, 오늘은 조용히 멈춰 숨을 고르고 싶은 제 바램을 담은 레터를 보냅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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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중학교 3학년, 오래달리기 평가 날이었어요. 이대로면 A등급이니 골인 지점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체육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시더라고요. 그렇게 운동장을 무려 8바퀴나 쉬지 않고 달린 덕에 여학우들 사이에서 몇 없던 A등급 중에서도 1등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 1등의 비결은 간단했어요. 바로 선두 쫓기입니다. '쟤 작년에 오래달리기 1등이었대!'라며 감탄 받는 친구의 뒤통수만 보고 달렸죠. 한 바퀴, 두 바퀴 그 아이의 뒤만 바짝 쫓다 마지막 바퀴를 절반 남긴 순간, 제게 남은 모든 힘을 동원해 전력질주했습니다. 금세 선두를 제쳤고 그렇게 저는 1등을 하게 되었어요. 이후 모든 체력장과 실기 시험을 유사한 방식으로 치렀고, 덕분에 그해 전교 여학생들 중 가장 높은 체육 성적을 받았답니다.

 

그때의 기억은 제게 신체를 쓰는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자신감의 근거가 되어 주었어요. 성인이 된 후 새로운 운동을 접할 때 역시 그 자신감을 발판 삼아 금세 치고 나갔죠. 그런데 이런 제게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어요. 다름 아닌 '페이스 조절'입니다. 뭐든 시작이 앞섰던 사람만이 마지막까지 앞서있지는 않다는걸, 머리로는 알면서 몸이 따라주지 않더라고요. 어떤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상위권은 유지해야지"라는 생각이 늘 저를 지배했었거든요. 오래달리기 평가 날, 선두로 달리는 친구 바로 뒤를 쫓았다고 했잖아요? 그 전략 역시 애초에 선두 그룹을 유지해야만 나중에 더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왜 성적도 그렇잖아요? 평소 중위권이라도 돼야 공부를 더해서 상위권으로 올려볼 의지가 생기는데, 하위권에 있다 보면 목표치가 너무 멀게 느껴져 쉽사리 의욕을 잃게 되는 것처럼요.

 

그래서일까요? 새로운 길을 마주할 때마다 미친듯이 잘 달리다가도 금방 넘어지는 삶을 참 오래도록 살았어요. 이거 재밌겠다! 하고 시작했다가 관두고, 저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재능을 보이다가도 포기했죠. 페이스 조절이 안 된다는 건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더라고요. 의욕만 앞선 데다, 시작과 동시에 결괏값이 중상위권 이상에 머물지 못하면 '난 안 되나 봐'하며 무기력해지길 반복했습니다.

 

프리다이빙하는 저입니다..헿...
프리다이빙하는 저입니다..헿...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프리다이빙(freediving)을 배우게 됐습니다.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같은 장비 없이 수중에서 무호흡으로 잠수하는 스포츠에요. 한 마디로 물속에서 계속 숨을 참은 채로 활동하는 거죠. 늘 그래왔듯 단기간에 실력이 늘었고, 신랑과 함께 '우리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는지 보자'라며 수심 트레이닝을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신랑이 먼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고, 수심 기록을 표시해 주는 시계에는 26.9미터라는 기록이 떠있었어요. 그 숫자를 보니 오래달리기하던 그날의 승부욕이 다시금 불타올랐습니다. '26.9미터? 딱 그거보다 한 발짝만 더 다녀와야지'하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죠. 줄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내려가다 시계 화면에 뜬 27미터를 보고서야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저는 무사히 물 밖으로 올라왔을까요? 다행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올라오는 내내 숨이 부족해 굉장히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내 몸과 물 밖이 그토록 멀게 느껴진 건 살면서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니 함께 놀던 모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 얼굴만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프리다이빙 시 무리하다 보면 LMC(Loss of Motor Control)라는 저산소증이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이건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기 전 배터리가 부족하다고 알림을 띄워주듯, 내 몸에 산소가 부족해 곧 블랙아웃이 올 수 있으니 당장 물 밖으로 나와 쉬어주라는 신호거든요?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퍼렇게 질리며, 눈동자의 초점이 나가는 등의 모든 LMC 경고등이 제 몸에 켜져 있었던 거죠.

 

그렇게 기절 직전 상태까지 가고서야 비로소 페이스 조절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체감했습니다. 물에서는 아래로 내려갈 때보다 위로 올라올 때 훨씬 힘들거든요? 그러니 숨이 딱 절반 남았을 때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게 아니라, 더 충분한 숨이 남은 지점을 반환점으로 삼았어야 했는데 저는 더 잘해내고 싶다는 승부욕에 눈이 멀어 그 계산에 완벽히 실패한 거죠. 그것도 즐겁자고 시작한 취미 활동에서 말이에요. 스스로에게 위험성을 느낀 저는 이후 프리다이빙 시 숨을 과도하게 참지 않기 시작했어요. 조금씩, 천천히 놀다 체력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의식적으로 휴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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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이빙과 비슷한 것 같아요. 호기롭게 오른 등산 후 하산 앞에서 막막해지고, 상반기에 지나치게 샘솟았던 의욕 탓에 하반기에 쉽게 지치기도 하는 것처럼요. 아마 학창 시절 오래달리기 1등은 삶에서 저의 체력이 최고점이었을 때였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몰라요. 나의 에너지는 한정적이고, 심지어 조금씩 계속 낮아질 텐데 여태 그걸 망각하고 기고만장했던 거죠.

 

그래서 올해의 반환점에 선 지금,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해요. 기왕이면 시작은 조금 느렸지만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내가 들이마신 숨을 미리 가늠하면서, 이쯤에서는 좀 쉬어줘야겠다 스스로를 멈춰주는 연습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아직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조급하다면 혹은 너무 열심히 달려와 지쳤다면, 내게 남은 배터리를 한 번쯤 들여다 봐주는 거 어떠세요? 조금 빠르다고 뿌듯해할 것도, 느리다고 문제 될 것도 없어요.

 

삶은 결승선이 있는 경기장이 아니라, 해답지 없이 나를 알아가는 오랜 산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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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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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사회복지사의 프로필 이미지

    불타는 사회복지사

    1
    6 months 전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느낄수 있는 소중한 경험인거 같습니다 한편으론 부럽습니다. 생각만 할뿐 현실에 부딪혀 시도조차 못할때가 많은데 민정님 글보도 다시 한번 해보고자 하는 불씨가 생겼습니다 부디 이 불씨가 이번에는 오랜시간 타고 있을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 해보겠습니다

    ㄴ 답글 (1)
  • 도로시의 프로필 이미지

    도로시

    1
    6 months 전

    민정님의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이야기해주실 때가 많아 뭔가 감정이입하며 읽게 됩니다. 프리다이빙 이야기를 보며 저도 어느 순간 숨을 참고 있었어요ㅎㅎㅎㅎ 민정님은 달리기도 잘하시는군요! 워낙 다재다능하셔서 이것저것 색다른 경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세상을 살아갈 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사회라는 것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인생이 경쟁이기 때문에 최고가 되지 않는 한 끝도 없는 경쟁을 하게 되는거죠. 게다가 세계 1등이 되더라도 순위는 늘 바뀌기에 안심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어차피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니 너무 높은 곳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 입니다. 여기에서 좀 더 발전하려면 나보다 좀 나은 사람을 목표로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민정님의 글은 언제나 술술 읽혀요. 재열작가님 글 같은 느낌이에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ㄴ 답글 (1)
  • 낮의 프로필 이미지

    1
    6 months 전

    저도 다양한 것이 궁금하고 재밌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잘 하는 사람.. 민정님이 말씀하신 선두주자들을 보면 급 의욕이 떨어지고 흥미가 떨어지더라구요. '저 선두주자만큼 잘 해내야지' 하는 욕심 때문에 제 풀에 지쳐버리곤 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안의 소리보다 바깥의 시선과 속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오늘 뉴스레터의 '해답지 없이 나를 알아가는 오랜 산책'이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네요. 저도 찬찬히 저만의 산책을 해나가볼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1)
  • 사랑이누나의 프로필 이미지

    사랑이누나

    1
    5 months 전

    와우~! 저 글 읽으면서 숨참고 읽은거 있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 하면서 숨을 꾹 참고 수면으로 올라왔다는 말에 저도 같이 숨을 내뱉었네요~ 휴~~~~~~~ 무언가를 해 냈던 경험이 있기에 어떤 것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오래달리기로 자기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이 있으니 더더 그랬을거고요 민정님의 밝고 쨍한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 이런 경험들에서 시작됐다고 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해답지 없이 나를 알아가는 오랜 산책! 다가오는 7월도 열심히 나만의 답지를 채워가볼께요!!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날 건강 잘 챙기시고 더위 조심하세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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