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음건강 베이직

80%만 채우며 살아보기

2월 26일 ::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2025.02.26 | 조회 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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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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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

상담가 장재열이 늘 애쓰며 사는 당신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선물합니다.

작은콩의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재미없고 밍밍하지만, 그만큼 편안한 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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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커피, 술, 우유를 끊은 사람이 사람 만날 때 마실 수 있는 것은?

카페에 갔을 때 메뉴판을 보고 곤혹스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오로지 커피 메뉴 아니면 우유 스무디만 있는 곳들이 그렇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해 식이요법을 시작하며 커피와 술, 유제품을 끊은 이후 카페인, 알콜, 우유를 빼면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없어서 아메리카노에 샷을 빼고(=맹물) 달라고 해야 하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곤 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일수록 커피 메뉴는 원두를 종류별로 정말 다양하게 구비해놓는데, 그에 비해 차 메뉴는 인기가 없는지 티백 몇 종류 간신히 구색만 맞춰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본 커피보다 비싸고요. 하지만 너무 달고 차갑기만 한 스무디, 주스 종류는 좋아하지 않으니 결국 뜨거운 물에 티백 하나 달랑 넣어진 차라도 이게 어디냐 하며 감사히 마시게 됩니다. 요즘은 그나마 디카페인과 식물성 우유 옵션이 있는 곳들이 많아졌지만, 그마저도 같은 메뉴인데 저만 혼자 적지 않은 추가금을 낼 때면 살짝 마음이 아픕니다. ‘아프면 나만 서럽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씁쓸한 마음으로 되새기곤 하죠. 하하.

사실 커피도 술도 원래부터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마시던 달달한 믹스 커피가 아닌 순수한 블랙커피를 처음 접했던 건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였는데, 다이어트 식단에 아메리카노라는 것이 끼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열량도 낮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좋은 건가 보다, 하고 마셔보기 시작했는데, 따뜻한 물을 드립백 위에 부으면 나는 달콤한 향과 달리 너무 쓰기만 하고 맛이 없어서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역시 살 빼는 음식은 맛이 없다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을 때 그동안 궁금했던 소주의 맛은 '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입에 착착 감기는 시원한 맛…! 이 아니라,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실험할 때 맡았던 알콜 램프 냄새. 그냥 딱 그 맛이더라고요.

하지만 좋든 싫든 나이를 먹을수록 술과 커피는 점점 제 일상으로 자주 들어왔습니다. 특히 이들이 꼭 필요한 때가 있으니 바로 일을 할 때와 이성을 만날 때였죠. 이걸 언제 다 하나, 한숨만 나오는 쌓여있는 과제도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면 커피의 좋은 향과 카페인이 끌어 올리는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순식간에 ‘일 모드’로 집중할 수 있었고,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 어색했던 분위기는 한두 잔의 술이면 금세 편안해져 알코올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모를 설렘이 들곤 했습니다. 입맛은 자주 접하는 대로 길들기 마련인지라 시럽 없이는 못 먹던 아메리카노도 밥을 먹고 나서 안 마시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고, 술은 소주를 넘어 맥주, 막걸리, 와인 등등 종류별로 섭렵하는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이젠 사회생활을 위해 의무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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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와서 관절염에 좋지 않으니 끊어야 한다니! 물론 매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중독자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타의로 인해 금지를 당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으로 괴롭더군요. 한 번에 끊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은 전 대안으로 디카페인 차와 무알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뭐,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습니다. 차는 커피만큼 진하진 않지만 나름의 향이 괜찮았고, 디카페인 커피는 일반 커피만큼 맛이 좋았죠. 무알콜 맥주는 솔직히 맛없었지만(특히 미지근한 상태로는 절대 마시지 마세요) 점차 일반 맥주와 더 비슷하게 개발된 제품들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은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비슷하긴 한데도 무언가 속이 빈 듯한 공허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재미가 없어.'

맞아요. '재미'가 없었습니다. 디카페인 커피는 밤을 새워서 일을 하는 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무알콜 맥주는 아무리 슬퍼도 취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술 파티에서 혼자 맨정신인 기분을 아시나요?) 그러니 힘들게 무리해서라도 무언가 성공해 얻어내는 짜릿한 즐거움이나, 절제하던 이성을 놓고 아무렇게나 노는 쾌감 같은, 그러니까 2% 감칠맛을 더해주는 ‘사는 맛’ 같은 게 없었던 거지요. 덕분에 밤낮을 지키는 생활 습관을 어길 수 없었고 아무리 속상해도 제정신을 부여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적정선 안에서 살아가는 바른 생활은 건강할진 몰라도 탄산 빠진 무알콜 맥주처럼 밍밍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비슷한 대체품에 의지하더라도, 무미건조한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저의 숙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오신 분이라면 이쯤에서 그래도 이것도 나름의 맛이다, 아니면 다른 즐거움을 찾으면 된다, 같은 긍정적인 멘트가 나올 거라 기대하시겠지만, 안타깝게도 술과 커피 없는 인생은 정말로 재미가 없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 파티처럼 즐겁지도 않고, 잠을 깨우는 카페인의 향기처럼 설레지도 않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억울하거나 슬프진 않습니다. 그 자리에 대신 편안한 일상을 얻었거든요. 알코올을 끊은 덕에 염증 반응이 줄어 그만큼 덜 아팠고, 카페인을 끊은 덕에 잠을 일찍 푹 자니 훨씬 회복이 빨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시간과 체력으로 의미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삶은 잠깐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만족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만큼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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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과정은 슬픈 상실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설렘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저 편안함으로 변한 것이라고요.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든 첫 만남은 설레고 두근거리지만, 시간이 지나 가까워지면 그런 감정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잔잔한 편안함이 자리 잡게 되잖아요. 문득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상대와 가까워졌다는 좋은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이제 제 삶의 민낯과 제법 친해진 게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병이든 아니면 무언가 다른 원인이든 미워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설렘을 뺀 삶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100%를 쫓지 않고 80% 정도만 채우면서요. 비록 저녁 일찍 10시쯤 잠드느라 밤 11시에 하는 인기 드라마 본방을 놓쳐야 하고, 아주 멋진 바에 가서 오렌지 주스를 시키며 초등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긴 하지만. 원래 몸에 잘 맞는 편한 옷은 멋이 덜한 법이니까요. 하하. 그러다 너무 심심할 때면 술을 끊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 하소연을 안주 삼아 소주잔에 맹물을 담아 마시며 버텨봐야겠죠. 숙취 없는 아침은 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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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누나의 프로필 이미지

    사랑이누나

    0
    about 1 month 전

    어제의 음주로 숙취가 있는 지금 작은콩님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혼자 웃었네요 '숙취 없는 아침은 덤이랍니다' 지금 제가 간절히 원하는거라 그런가봐요 ㅎㅎㅎㅎ 애주가인 저는 글의 핵심은 안보이고 술에 대한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지 그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프네요 😂 무알콜 맥주가 정말 많이 비슷해졌다지만 채울수없는 그 2%와 바꾼 작은콩님의 인생이 저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좋은 글도 읽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에요 작은콩님 건강 잘 챙기시고 잔잔한 편안함이 늘 함께하기를 응원합니다😊

    ㄴ 답글 (1)
  • 밀리의 프로필 이미지

    밀리

    0
    about 1 month 전

    저도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너무 100%, 더 나아가 120% 200%를 쓰는 것이 제 문제라는 점이 얼마전 문득 생각에 들더라구요. 저도 롱런하는 제 삶을 위해 인생의 80% 70%... 때로는 30% 10%까지도 유연하게 쓰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

    ㄴ 답글 (1)
  • 유캔두잇의 프로필 이미지

    유캔두잇

    0
    about 1 month 전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카페인이 몸에 잘 받지 않는 체질이어서.. 한번 끊어보려고 하는데 참 잘 되지 않더라구요. 어디를 가려고 해도, 작업할 만한 공간을 찾으려 해도 커피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몸에 잘 받지 않는 커피를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홀짝 홀짝 마시고 있습니다. ㅎㅎ 하지만 올해는 최대한 덜 마셔보려고요!

    ㄴ 답글 (1)
  • 도로시의 프로필 이미지

    도로시

    0
    28 days 전

    인간은 참 신기합니다. 지금도 젊은 편이긴 하지만 더 젊었을 때는 그렇게 술 마시는게 즐겁고 재미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위가 계속 안 좋아져 이제는 저도 술을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 요즘 세상은 술강요도 안 하는 세상이라 그냥 위가 안 좋다 하면 음료수 시켜주시더라고요ㅎㅎ 이렇게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꽤 즐겁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술 없이도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 수 있어 좋더라고요. 작은콩님의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아쉬움을 또 다른 설렘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괜히 알콜프리 노래가 생각나네요~~~ㅎㅎㅎㅎㅎ 나는 알콜프리 근데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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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하는 프로도의 프로필 이미지

    인사하는 프로도

    0
    27 days 전

    강렬했던 과거의 설렘들, 이를테면 늦은 시간까지 뛰어놀고- 뜨거운 사랑을 하며- 가 떠오르네요. 나이가 들수록 다시 그럴 수는 없겠지 와 함께 그때가 그립다거나 조금 더 미친 듯이 놀아볼 걸... 같은 생각이 들면 왠지 서글퍼지기도 하더라고요. 약간의 아쉬움을 자연스럽게 건강해지고 성숙해지는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80%의 미학을 여유롭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겠어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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