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콩의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이른 아침 달리기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고요하지만 하루를 막 시작하려는 약간의 긴장감이 도는, 출근 전 아침 시간. 처음엔 살을 빼는 데 좋다는 말에 공복 걷기를 시작했다가, 조금씩 욕심이 생겨서 뛰듯이 빨리 걷기 시작했고, 그게 점차 달리기가 되었죠. 비록 이불에서 나오는 일은 늘 힘들었지만 아침에 달리는 기분은 썩 좋았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서 빠르게 달려간다는, 꼭 세상을 앞서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심해지면서 뛰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발목과 무릎 통증이 잦아졌거든요. 무리한 운동은 피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달리기는 산책이 되었고, 운동 시간도 관절이 풀리기 전인 이른 새벽 대신 낮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속상하고 갑갑했습니다. 걷기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달리는 기분보단 훨씬 시시했으니까요. 하지만, 매일 계속 걷다 보니 달릴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평일 약간 늦은 오전 즈음, 한적한 동네 산책길의 풍경은 바쁜 출근길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편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걸어가시는 어르신도 계시고, 아장아장 걷는 조그만 아이들도 있고요. 종종 절뚝이며 잘 걷지 못하는 이들도 보입니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주류 바깥, ‘변두리‘의 사람들이죠.
예전의 저라면 그들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 앞을 막기 전에 빠르게 앞질렀을 테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에서는 빨리 걷는 것이 미덕이자 상식입니다. 대중교통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디에서든 ‘빨리’ 볼일을 끝내고 ‘빨리’ 비켜서지 않으면 뒷사람에게 앞을 막는 민폐가 되어 버립니다. 저 또한 누군가 앞에서 꾸물거리면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지기보단 짜증부터 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던 것 같아요. 막상 내가 그런 앞을 막는 귀찮은 존재가 될까 봐 말이죠. 그래서 달려도 달려도 늘 불안했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뒤처져 잊힐까 봐, 바깥으로 밀려날까 봐 너무도 무서웠어요.
하지만 병에 걸린 후 밀려 내려온 ‘변두리’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부드러운 흙길은 편안하게 발을 받쳐주었고, 복잡한 빌딩 숲 안에선 손바닥만 하던 하늘이 이곳에서는 아주 넓게 보였습니다. 옴짝달싹 못할 좁은 곳에서 치이고 밟히며 꽈배기처럼 꼬였던 시간도 너른 이 공간에서는 기지개를 켜며 자유로워집니다. 그제야 그 안에서 호흡도 걸음도 제 속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동안은 앞만 보았습니다. 숨이 차니까 내 호흡에만 집중했고, 당장 내 발을 딛을 바로 앞 바닥만 바라봤습니다. 여유롭게 주변을 살필 틈 따윈 없었어요. 하지만 천천히 걸으며 뒤에서 넓게 바라보니 달리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더군요. 느리게 가는 사람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 말이죠.
일등이 아니어도 살아가는 이들은 많습니다. 다만 그러한 삶들은 자신을 떠벌리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 평범한 이들이 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이 사회가 유지되고 굴러갑니다.
달리지 않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달리지 않고도 사는 사람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사실, 달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월간 마음건강 소식
<마이크로 리추얼 : 사소한 것들의 힘> 올해의 책 후보 선정
안녕하세요 여러분, 장재열입니다. 저의 책 마이크로 리추얼 : 사소한 것들의 힘 이 올해의 책 후보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레터에 함께 하시게 된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저와 여러분을 이어준 고마운 책이에요 :)
1년에 약 5만 5천 권의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한 분야의 가장 좋은 책 10권 안에 선정된 것만 해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최종 선정작은 독자들의 선택을 통해 최종 선정되는데, 제 책을 읽고 정말 좋은 기분을 느끼셨던 분이라면 한 번씩 투표해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저는 후보작 선정만으로도 기쁘지만요. 모두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brand story
장재열의 off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레터는 공간, 사물, 교육을 통해 온전히 멈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브랜드 offment의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에서 소개된 다양한 개념들이 구체적인 제품과 공간, 워크숍으로 구현되어 당신의 일상에 멈춤의 순간을 만듭니다. 아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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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작은콩님의 글을 볼때마다 쉼없이 몰아치던 저의 일상에 쉼표같은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아쉬워하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던 저였는데 작은콩님의 글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지금순간 이대로의 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달리지 않아도 걷지 않아도 지금 순간 그대로의 나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작은콩
심청님 너무너무 따뜻하고 진심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제겐 독자님들의 댓글 읽는 순간이 쉼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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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덕분에 자꾸 달리려는 마음속에서 달리지 않았을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알고 가요.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는 것, 달리고 싶지 않을 때, 달릴 수 없을 때도 주변의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일상속에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솔직하고 따듯한 이야기 감사해요 작은콩님 🥰
작은콩
달리고 싶을 땐 달려야겠지만 늘 달려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죠. 요즘은 쉬어가야 할 땐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생각하려 해요.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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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저도 걸어다닐 때 누구보다 빠르게 걸어가는 편이라서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도 많은데 혼자 뭐가 그리 바쁜지 앞서가느라 바빴고 괜히 뒷사람한테 피해줄까봐 빨리 걸으려고 했었습니다. 세상에는 천천히 가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혼자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빨리 걷겠지만 가끔씩은 천천히도 걸어보겠습니다. 아, 어쩐지 그래서 산책할 때는 마음이 평화로웠군요. 일상 속의 슬로우 템포를 점차 늘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콩님~
작은콩
도로시님🥹💛 도시에서는 늘 나도 모르게 바닥만 보고 빠르게 걷게 되죠. 그건 우리 탓이라기보단 삭막한 분위기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대신 하루의 중간중간에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찾도록 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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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하
내려놓고 겸허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습관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완벽만을 추구하게 되는 거 같아요 1등이 아니어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서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되고 주위의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네요 작은 콩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해 재열님의 마이크로리츄얼을 알게 된 일이 가장 행운이었어요 덕분에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었어요 올해의 책 선정 축하드려요
작은콩
완벽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완벽을 추구하게 되죠🥹 저도 늘 그래요! 하지만 불완전한 하루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면 그 자체가 이미 의미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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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얼마 전에 부산 옆 김해 사는 친구가 서울에 와서 함께 전철을 타고 가는데요 빠른 환승, 빠른 하차를 위해 플랫폼 번호를 맞춰서 이동하는 거에 깜짝 놀래면서 이렇게 까지 빡빡하게 조급하게 살아야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서울에서 지하철 타려면 이래야 한다고~ 출퇴근 시간에는 진짜 전쟁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서울에 못살 것 같다고 했어요 작은콩님 얘기처럼 우린 뭐가 그렇게 바쁘고 조급해서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걸까요? 친구에 그 얘기가 한참을 머릿속에 남았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보니 다시 생각나네요 평범한 이들이 자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이 사회가 유지되고 굴러갑니다! 이 말에 100% 공감합니다 오늘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콩
누나님 댓글로 자주 뵈니까 반갑고 좋아요🥹💕 그러게요! 일분 일초 매순간을 효율적으로 살 필욘 없는데, 살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살게 되죠.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서울이다 보니, 그 사이에서 더더욱 치열함이 커지는지도요. 가끔은 이 밖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스스로를 환기시켜줄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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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저는 매일 달리는사람입니다. 이글을 읽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것같네요. 오늘 하루 마무리는 달리지않고 천천히 제걸음대로 걸어보려합니다. 덕분에 또 새로운하루가 된것같네요. 감사합니다
작은콩
댄서님의 일상에 제 이야기가 가 닿다니 영광이에요! 천천히 걷는 산책은 어떠셨으려나요? 항상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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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저도 지금 몸과 마음이 명확히 아픈 상태인 것 같아요. 그러니, 달리지 않고, 뛰지 않을래요. 때로는 걷지도 않을래요. 앉아있고 싶으면 앉아있고, 누워있고 싶으면 누워있다가, 걷고 싶으면 걷고, 그러다 조금 뛰고 싶으면 뛰고, 그러다 또 걷고 싶으면 걷고. 앉아서 쉬고 싶으면 쉬고. 그렇게 갈래요. 저만의 길과 속도로요!
작은콩
밀리님! 댓글에서 단단한 돌처럼 꽁꽁 뭉친 의지가 느껴져요. 맞아요. 때로는 뛰지 않아도, 아니 움직일 수 없다면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뛸 때가 왔을 때 뛰면 돼요. 몸과 마음이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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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프로도
사람은 달리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달리는 삶이 더 좋은 것이다 라는 믿음이 뿌리 깊게 박힌 것 같아요. 사실 두렵습니다. 달려도 두렵고, 달리지 않아도 두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언젠간 제 속도대로 무리하지 않고 한걸음씩 내딛기를 바라는 하루입니다 ㅎㅎ 우리 모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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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가 느린 사람이랍니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지요. 처음엔 그게 정말 부끄럽더라구요. 나도 가장 앞에서 뛰어가고 싶은데 남들의 뒤통수를 보며 걸어가야 하는걸까. 그런데 사람들마다 각자만의 속도가 있고, 가장 중요한건 누가 가장 앞에 서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꾸준히 멀리 나아갈 수 있느냐라는걸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WE MAKE THINGS TO OUR OWN RHYTHM'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베어베터의 문장이에요.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의 지속가능한 고용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인데 베어베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믿고, 모든 속도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일하는 곳이라고 이야기 한답니다. 저는 서툴지만 매일 나를 다독이며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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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이전에 유독 한국 사회가 일직선으로 달리고, 경주하고, 경쟁하는 사회라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저도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주변환경을 보는 중요성을 알고있는데, 그럼에도 자꾸 조급함이 드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뭔가 놓친게 있는 걸까요? 저도 마음 편안히 여유를 느끼며 걷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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