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콩의 조금 느린 서른 즈음의 일기
현실이 갑갑할 때면 가끔 로또를 삽니다. 워낙 당첨 운이 없는 편이라 5,000원짜리 한 번 당첨된 적은 없지만요. 여기서 핵심은 월요일 오전에 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저녁 8시 이후 당첨 소식이 올라오기 전까지 한 주 동안 ‘내가 만약 1등에(되도록이면 여러 명 말고 혼자) 당첨된다면?’하는 상상으로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일부러 확인을 안 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될 가능성은 별로 없으니 그냥 그 좋은 기분이라도 오래 간직하려고요. 이렇듯 인생엔 때론 열어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작가라는 꿈도 그랬습니다. 처음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모든 게 즐거웠어요. 처음인 만큼 작은 변화나 반응도 크게 느껴졌죠. 처음으로 협업 제안도 받아보고, 제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독자님이 생겼을 땐 '어쩌면 나도?' 아직 열어보지 않은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마음먹고 열심히 하기 시작하자 점점 부족한 한계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할 시간과 체력도 부족한 상황에 열심히 쓴 글이 무반응인 경우도 많았고,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면 선 끊어진 우주 공간에 혼자 떠다니다 사라져 버릴 것처럼 외롭기도 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긁지 않은 복권’인 줄 알았던 내가 막상 긁어보니 꽝이었더라,로 끝날까 봐요. 더 진심을 다해 하다가 끝끝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로 실패해 버리면 난 뭐가 될까? 그래도 희망처럼 믿었던 내 작은 가능성이 알고 보니 빈 껍데기였다면? 차라리 이제쯤 제 주제를 알고 포기하고, 아, 나도 꿈이 있었는데. 예전에 작가했으면 지금쯤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 술자리에서 곱씹는 군내 나는 추억 안 주 정도로 묻어두는 것이 적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적어도 내 마음은 안전할 테니까요.
‘아직도 좋아하는 일 같은 걸 쫓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가보기로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은 일일지 몰라도 제겐 힘들 때 살아갈 이유를 주었던 일이었거든요. 병을 만나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던 때 하고 싶은 일은 아픈 몸을 일으켜 하루를 살아내 게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아픈 걸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같은 병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 수 있게 해 준 점이 가장 소중했어요. 제 글과 그림에 위로받았다는 댓글은 제게도 마찬가지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의 이야기는 또 어떤 독자들의 마음에 어떤 온도로 가닿을까, 상상하다 보면 또다시 나누고 싶은 말들이 떠올라 쓰고 그려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걷듯이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열심히 걸어가 봤자 1등이 되긴 힘들다는 것은 잘 압니다. 어차피 달리고 나는 사람들은 늘 있을 테니 까요. 하지만 느려서 꼴찌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몸엔 사용 기한이 있거든요. 관절병은 계속 진행이 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병이 더 생길지는 알 수 없죠. 지금은 다행히 잘 걷고 잘 지내고 있지만, 이 평화가 언제까지일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제게 미룸이라는 선택지는 없었기에 그냥 다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 이 들 때면 다시 빈 창을 켜고 글을 씁니다. 흔들리고 불투명한 마음만큼 더 선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마음속 불안을 비우고, 쓸데없는 찌꺼기를 치우고, 생각을 단순화하고, 연필을 깎듯이 매일 스스로를 더 날카롭게 깎아냅니다. 그러면 남을 이기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내 벽은 깨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병을 만나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떤 담보를 건다 해도 삶은 아무것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런저런 이유로 미뤘던 여행지는 불이 나고 물에 잠겨 갈 수 없게 되었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던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꼭 봐야지 하다 잊어버린 전시는 끝이 나 버렸습니다. 언젠가를 기약하며 미루었던 일을 할 수 있는 '그때'가 왔을 때쯤 내 몸은 고장 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지만, 1등이 되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하는 것을 미룰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해 봐야죠. 인생에 때는 있다 하더라도 그걸 어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물론 나이가 들수록 심적 부담은 배로 커지겠지만, 아직까진 그걸 감수할 만큼 이 일이 좋은걸요. 20대, 아니 10대 때부터 먼저 준비했다면 훨씬 빨랐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늦은 때라도 그나마 지금이 내 인생에선 제일 젊은 날이니까요. 언젠가 좀 늦은 나이라 하더라도 정말 성공한 작가가 된다면, 저처럼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또 다른 '때'의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사실 뭐 그냥 좋아하는 일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선언(?)하는 게 아닌가 너무 부끄럽습니다만. 혹시 지금 무언가 시작하기에 용기가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제 서툰 일기가 부디 조그만 응원이 되어드리길 바라요. 우리, 힘내보자고요. 파이팅.
bran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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졔
응원받았습니다. 작가님도 파이팅! 저도 파이팅! 이 글 읽는 우리 모두 파이티잉-!✨
작은콩
너무 귀여운 댓글이에요! 팅팅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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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댄서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긁지 않은 복권’인 줄 알았던 내가 막상 긁어보니 꽝이었더라,로 끝날까 봐요. 이 문장 너무 와닿네요.. 어떻게 보면 이루지 못한 꿈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살고있도록 도와주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난 꼭 저걸 이룰테야라고 또 오늘하루도 도전하는 저입니다. 하하하 정말 문장 너무맘에드네요.
작은콩
가능성으로만 남겨두는 일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할 것 같아서 열심히 긁어보고 있네요. 하하. 댄서님도 당첨 나올 때까지 저랑 열심히!! 긁어보자구요.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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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와아, '생을 마칠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삶'이라니...행복한 삶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한껏 슬플 때 '나는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더 슬퍼지는 주문을 걸긴 했지만 후회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비슷하긴 해도 꼭 일치하진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슬프지 않아서 그런가...마음에 걸리는게 퐁퐁 솟아납니다. 아직은 저도 월요일 오전의 심정으로 제 복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저는 복권의 당첨면을 제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봐야겠어요. 마음에 닿는 멋진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콩
수민님 댓글은 꼭 한편의 글처럼 진심이 꼭꼭 담겨있는 게 느껴지네요. 제게도 수민님의 마음이 톡톡 와 닿는 것 같은걸요. 수민님만의 복권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앞으로 발전해나가는 모습 제게도 보여주시길 기대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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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young0124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거다.'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 이렇게 또 글을 읽다보니... 내일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더라도 오늘은 후회없이 잘 보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간 순간 기운 빠지는 때도 있지만... 1등을 꿈꾸지는 못하더라도..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진 오늘의 내가 되었을 것이라 믿으며 또 하루를 살아보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작은콩
은영님 맞아요- 1등 아니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그냥 가고픈 방향으로 어제보다 좀 더 나아가면 되는 거겠죠. 화이팅이에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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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하
작은콩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에서 용기를 읽어갑니다 저는 아직 용기가 부족한데요 글을 읽는 동안은 덕분에 마음이 편했습니다
작은콩
프란시스하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셨다면 저도 기쁘겠습니다☺️💛 저도 용기 많이 부족한데요, 이렇게 댓글로 종종 채워주러 와주세요. 서로 용기 충전기가 되어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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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해 봐야죠. 인생에 때는 있다 하더라도 그걸 어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우와 새로운 시각이에요...! 늦었고 다르지만 이런게 살면 안된다는 법은 없고 정답은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작가님이 용길 주시는 만큼 작가님도 이번 겨울이 더욱 용기 있고 따듯하시길 🖤
작은콩
한나님! 늦었죠... 늦었는데 어쩔거야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하하. 저는 한나님의 댓글 덕분에 따수운 겨울 보낼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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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프로도
저는 이제서야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는 입장이라 더욱 공감이 되었어요. 참 두렵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이 그저 좋아서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아직은 메모장에 끄적이는 정도이지만 언젠간 저도 작은콩님처럼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이야기 감사합니다 :)
작은콩
프로도님!! 저처럼 하고 싶으시다니 너무너무 영광입니다. 글 저도 너무 읽어보고 싶은데요. 언젠가 글을 공개하게 되신다면 저도 꼭 초대해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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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작은콩님의 이야기는 가장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니라 느껴질 수 있는 우리들을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해줘요. 그래서 내용과 상관없이 늘 용기와 위로를 받는다는거 아세요?? 늦었다고 생각이 들어도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 1등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게 한 주를 보낼 수 있는 작은콩님만의 꿀팁,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만가지지만 그럼에도 하는 것을 미룰 수 없는 이유도 무수히 많다는 것! 그래서 우린 또 하루하루 자기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거겠죠!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다가 떠날때, "정말 잘 놀다 갑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떠나고 싶어요 작가님이 보시기에 서툰 일기라지만 저에겐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고퀄의 일기라는거 꼭! 알아주세요 오늘도 핑계를 찾지 않는 하루를 만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콩
사랑이누나님...! 매번 글 정독해주시고 긴긴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뉴스레터 발행 후에 댓글 달러 들어올 때면 꼭 비밀 편지를 열러 오는 것처럼 설렌답니다🥹 조금 게을러지고 힘들어서 쉬는 건 괜찮지만! 안 될 핑계만 찾으면 시간은 봐주지 않겠죠😭 같이 조금씩이라도 힘내보아요. 평온한 주말 되시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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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작은콩작가님 용기내어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더욱 용기가 생겼어요! 저도 요즘 평소에 하는 생각이 인생이 무한한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말고 모레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어느덧 올해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그냥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지금하자 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오늘 죽어도 여한 없는 삶을 살자가 저의 목표인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잘 살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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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내가 어떤 담보를 건다 해도 삶은 아무것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내년에 대학원에 입학합니다! 너무 두렵지만 또 정말 설레기도 합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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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캔두잇
저 지금 무언가를 시작해양 하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파이팅해요! 오늘 글은 묵직하게 던지는 메시지가 많아서 세 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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