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안녕하세요. 에디터 민정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계기로 꿈을 갖게 됐나요? 현재 직업을 갖고 있다면 그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가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인가요? 아니면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전공을 살려 11년째 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전공을 살리고 싶지 않아 막막한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삼십 대 초반이 되서서, 가정까지 이룬 지금에서야 새로운 길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요?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작했던 일에서 꿈을 발견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민정의 가장 충만하고도 불완전한 이야기
스스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행위를 참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만큼 소질이 있기도 했고요. 친구들이 당시 유행하던 웅변이나 태권도, 수영, 바둑 같은 예체능 계열 학원을 다닐 때 저는 엄마에게 졸라 칼라믹스라는 고무찰흙 학원에 다녔죠. 만들기 열정 탓에 혼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버리려고 내놓은 우유갑이나 페트병을 다시 방 안에 가져와 연필꽂이나 양말 보관함을 만들었거든요. 예쁘게 재탄생된 각종 재활용품을 보며 뿌듯하던 저와 달리, 엄마는 "왜 쓸데없이 쓰레기를 주워오냐"라며 화를 냈어요. 성인이 된 후에는 그런 제게 꾸짖음이 아닌 칭찬을 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재주를 살려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답니다.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다는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제게 많은 영향을 줬어요. 회사 생활에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나 어릴 때 참 손재주 좋았는데, 뭐 재밌는 취미거리 없나? 하며 주변을 기웃거리가 되더라고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익숙했던 저는 퇴근 후 시간을 내 프랑스 자수를 배우고, 가죽 공예를 배우고, 뜨개질도 배웠습니다. 공방에 가 수업을 듣는 게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워지자 유튜브로 독학해 재봉틀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한창 악세사리에 빠져있던 시기에는 잠깐 핸드메이드 귀걸이 쇼핑몰을 운영해 보기도 했죠. 피곤한 날도 많았지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회사 업무와 무관한 세계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만드는 데 몰두하는 시간은 제 일상 속 환기가 되어주었거든요.
안타깝게도 그 환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점점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쫓기기 시작했어요. 처음 몇 번은 새로운 경험, 그 자체로 즐거웠지만 어느새 '돈까지 써가며 배우고 있는데 이걸로 소소한 수입이라도 얻어야지'라는 마인드가 생기더라고요. 누군가는 퇴사 후 여행을 다니다 세계적인 유튜버 되고, 누군가는 어쩌다 올린 영상 하나로 유명인이 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취미조차 성과를 내야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난 진짜 안 되나 보다. 이렇게 평생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 다니며 사는 건가? 뭐가 이렇게 하는 족족 안 풀려? 지쳤고, 암담했고, 절망적이었어요.
그렇게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로는 돈을 벌 수 없겠다는 걸 깨닫고, 모든 배움을 멈추고 지내던 때였어요. SNS에서 우연히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는 게시물을 보게 됐습니다. 마침 수업 장소도 집 근처고, 시간도 딱이더라고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좀 민망한 얘기지만, 저는 서른이 되도록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어요. 학창 시절 흔히 필독서라 불리는 책들도 생전 관심 가져 본 적이 없고요. 이런 내가 글쓰기 수업이라니... 좀 웃기기도 했죠. 하지만 그만큼 '정말 잘할 생각 없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절로 편해졌습니다. 생산성 높은 취미 생활을 내려놓고, 온전히 쉬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소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던 제가, 그 수업에는 매번 제일 미리 도착해 가장 앞자리를 선점했고요. "민정님은 소질이 있긴 한데 과제를 너무 안 해와~ 이러면 진도도 못 나가고 실력도 절대 안 늘어요!" 이런 잔소리로 시작하던 공방 수업들과는 달리, 글쓰기 수업에서는 한 번도 과제를 거르지 않았죠. 유난히 적극성을 보이는 스스로를 보며 내가 이걸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자각했습니다.
늘 할 이야기가 많은 제게 아무 이야기나 써 내려갈 수 있는 백지는 나만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어요. 심지어 회사 생활에서는 종종 걸림돌이 되던 저의 솔직함이 글쓰기에서는 가장 큰 강점으로 빛났죠. "글쓰기 스킬 중에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세요? 솔직하게 쓰기예요. 그런데 민정님은 이미 가장 큰 산을 넘었네요." 수업 중 작가님이 해준 이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수업이 끝나고도 꾸준히 글을 썼어요.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하던 이야기를 세상 밖에 꺼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면식도 없는 분들의 위로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달린 댓글을 보며 느꼈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렇게 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습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말이에요.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한창 SNS에서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열람하기가 유행하던 시기에, 저도 호기심에 생기부를 열람해 봤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글쓰기와 관련된 분야에서 받은 상장들로 수상내역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거예요. 더 웃긴 건, 그토록 집착했던 손재주로 받은 상장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내가 글로 상을 받았었다고? 어릴 때 글 쓰는 걸 좋아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독 엄마가 제 일기장을 자주 훔쳐보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발 좀 보지 말라고, 왜 오빠 일기는 안 보면서 내 것만 보냐고 울먹이던 저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죠. “오빠 거는 재미없는데, 니 거는 억수로 재밌단 말이야~”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동안 손재주가 좋다는 스스로의 편견에 나를 가두고 있었구나. 정작 진짜 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놓치고 있었구나'라는걸요.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또 다른 공방을 기웃거리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여러분 앞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는 못했을 거예요.
한참 가죽 공방에 다닐 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이걸 왜 배우고 싶냐고 물으면 '창업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냥요'라고 말한 사람들 중에서 오히려 창업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요. 저 역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잘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글쓰기가 결국엔 가장 오래 붙잡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멈추고자 섰던 그 자리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준거죠. 그러니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멈춤의 순간에 서 있다면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가끔은, 아무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요.
오늘의 추천
『전국불효자랑』
그렇게 정말, 정말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슬쩍.. 저의 첫 공저 도서를 추천해 보려고 해요! 맞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책 안에 제 이름을 싣게 되어 저 많이 들뜬 상태예요! 이번 레터에서만큼은 속 시원하게 자랑해 볼게요ㅎㅎ
우리는 모두 강제로 삶을 부여받았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세상은 온통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강요하죠. 도대체 왜? 태어난 것도 내 의지가 아닌데, 효도까지 필수로 해야 한다고? 그렇게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최면과 '이만하면 괜찮아'라는 합리화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불효를 선택한 작가 열세 명이 『전국불효자랑』이라는 한 책에 모였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싶은 가족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께도, 혹은 가족의 불화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께도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라 감히 추천드려봅니다. 불효꾼이 되기로 결심한 여전히 살아 있는 열세 명의 불효 자랑 이야기에 관심 부탁드려요.
brand story
월간 마음건강 by 오프먼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와 매거진은 늘 애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과 쉼의 밸런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연구하는 마음건강 예방 브랜드 오프먼트 offment에서 만듭니다. 아래의 홈페이지 버튼을 눌러, 본 아티클 외에도 교육, 워크숍, 공공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오프먼트의 프로젝트를 만나보세요. 그리고 뉴스레터와는 또 다른 깊이가 있는 월간 마음건강 매거진 버전도 만나보세요. 조금 더 긴 호흡과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매거진 전용 아티클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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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민정님의 재미있는 글 솜씨가 담겨져있는 전국불효자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공저라니 더욱 멋있는데요!? 제목부터가 얼른 책을 읽고 싶게 만듭니다. 이목을 싹 끌어요~ 오빠분 일기장보다 민정님의 일기장이 재미있었다니ㅎㅎㅎㅎ 올려주시는 글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글이 언제나 술술 읽히거든요! 손주재도 많으시고 글솜씨도 좋으셔서 고민이 많이 되셨겠어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돌아돌아 다시 글쓰기로 가신 점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요즘에는 귀찮아서 할까말까 고민만하던 블로그를 재정비하여 다시 시작했는데 재미가 쏠쏠 합니다. 업로드가 밀린지 좀 되었지만요ㅎㅎㅎ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다는 것에서 공감합니다. 제가 더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습니다. 늘 잘 읽고 있으니 오래오래 함께해주세요!!! (무플이라 낙담하실까봐요ㅠㅠ)
민정
ㅎㅎ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로시님! 요즘 날이 굉장히 더운데, 잘 지내고 계시죠😊?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 오빠의 일기장은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 꾸역꾸역 쓴 느낌이었고, 제 일기장은 그날 그날 느낀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놔서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해요..! 지금에 와서야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는지도?'라고 느끼고 있지만 당시에는 엄마가 일기를 훔쳐보는 게 너~~~무 너무 싫었답니다(ㅋㅋ) 도로시님도 재정비하신 블로그 재미있게 즐겨보시길 바라요! 드문드문 하더라도, 오래 하게 되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저도 오래오래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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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오늘도 이렇게 민정님의 비밀이야기 한 챕터를 엿보게 됐네요! 내재되어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재능이 발현되는 그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민정님 글을 보면 정말이지 1~2년이라는 시간이 거짓말 같단 말이죠 ㅎㅎㅎ 역시 타고난 재능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품고 있나봐요^^ 민정님의 첫 공저 도서는 정말 정말 잘 읽었습니다 민정님 글로 시작해서 앞,뒤 이야기들까지 읽으며 많은 감정들이 오고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정님을 비롯한 함께하신 작가님들이 이렇게 멋지게 세상을 마주하며 꿈을 펼치고 있음에 저는 마냥 존경심을 표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멋져주세요^^ 민정님의 첫 사인회에 사인을 받은 1인으로 민정님만의 북토크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날이 넘넘넘 더워요;;;;; 더위 조심하시고 배탈도 조심하시고 우린 선선해질때쯤 다시 만나요😘
민정
글을 쓰는 사람이라니.. 내가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니..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저에게 작가라는 직업은 자주 사색에 빠지고, 학창 시절부터 책 읽기를 아주 좋아하던, 조용한 장소들을 선호할 것 같은 이미지였던지라 더욱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전국불효자랑> 드디어 읽으셨군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사랑이누나 님 덕에 지난 컨트리뷰터 살롱 때 뿌듯함과 뭉클함까지 다양한 행복감을 느꼈어요ㅎㅎ 항상 진심을 다해 전해주시는 응원 고맙습니다! 다음 살롱 때도 꼬옥 만나요 우리 🩷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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