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구독자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 길로 가야 할까, 저 길로 가야 할까, 마음 한켠에서는 조심스레 신호를 기다리지만, 세상은 늘 성급하게 답을 재촉하죠. 그럴 때마다 생각해 봅니다. ‘이럴 때 잠깐이라도 기대어, 조심스럽게 마음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혼자 끙끙대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때로는 단 한마디 말보다, 함께 있어 주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깨닫곤 합니다.
강동훈의 Slow Mood, Good Book
물론, 때로는 그 한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순간도 있겠지요. 그럴 때 우리를 조용히 감싸주는 것은,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편지 한 통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의 ‘마음을 적시는’ 편지로 가득 채워진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의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워진 그 이야기를 펼쳐보려 합니다.
마음이 닿는 작은 순간
첫 번째 큐레이션 : 김수우, 김민정《나를 지켜준 편지》
『나를 지켜준 편지』는 부산의 50대 시인 김수우와 서울의 20대 청년 김민정이 주고받은 따뜻한 기록입니다. 30년의 세대차, 물리적 거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여성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10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파도 같은 삶의 고비, 시대 문제, 지구 저편의 아이들, 책, 글쓰기, 용기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통으로 가득합니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민정 씨를 포함한 세 자매는 모두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매달려야 하는 학습 노동에 민정 씨는 지쳐버렸고, 법서만 잡고 씨름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결국 대학 4년 차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기로 결심하고, 다양한 것을 배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치열한 일 년을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민정 씨는 ‘밥벌이 찾기’에 필요한 다양한 숫자들 앞에서 형편없이 모자란 자신의 수치가 짐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민정 씨의 고민에 김수우 원장은 이런 대답을 전합니다.
“고뇌하는 한 개인이 숫자의 광막함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을 가로지르는 힘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열한 고뇌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요. 고뇌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수 없다면, 숫자로 가득한 전체 문명사회의 흐름도 결코 바꿀 수 없을 거예요.”
김수우, 김민정《나를 지켜준 편지》中
자기 내면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한 청년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 시작합니다. 덧붙여 ‘고민은 새로운 꿈의 첫걸음으로 참 지혜로운 것’이라며 고뇌는 늘 새로운 고뇌를 만들고, 답은 늘 새로운 답을 만드니, 고뇌하는 일에 지치지 말자는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며 예전 생각이 났어요.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아야 한다고 허덕이던 시절이요.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보다 더 멋진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그래서 늘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누군가 "너의 고민이 이미 소중하다"고 말해줬다면, 덜 외롭고 덜 불안했을 것 같아요.
고민 많았던 민정씨도 어느덧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원이 된 민정씨는 막연한 감정적 책임감을 느꼈고, 곁에 있는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 주는 역할을 하며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해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 욕심이었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어린 친구들의 하소연을 한참 듣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다 보니 오히려 본인이 지치기도 했고, 일상에 큰 위로가 되던 친구와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고 단절하게 되는 경험도 했다고 합니다. 나이는 들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에, 김수우 원장님은 이렇게 답했어요.
“말의 의미란 너무나 자의적이어서 서로 가닿을 때마다 틈을 만듭니다. 라캉은 언어란 차이와 부재의 무한한 과정에 불과하므로 ‘공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어 자체가 결핍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이 욕망이지요. 언어는 끊임없이 미끄러집니다. 의미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자꾸 흘러가고 자꾸 비껴갑니다. 그래서 하소연을 듣고 위로하려는 노력은 그 의도에 비해 지치기 쉽습니다.”
김수우, 김민정《나를 지켜준 편지》中
언어가 가진 한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뜻이 닿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에서 삐끗하고, 마음이 빗나가 버리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노력을 멈춰야 할까요? 김수우 시인은 이렇게 말해요.
“그럴지라도 육체를 가진 우리는 ‘가능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냥 말없이 손을 잡아 주거나 차를 한잔 건네거나 시를 한 편 전하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말보다 더 큰 울림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체온을 가진 자들이니 체온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위로가 될 듯도 싶네요.”
말이 때로는 비껴가고, 닿지 않아도 괜찮대요. 중요한 건, 체온을 가진 우리니까,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거라고, 말이 화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낄 줄 아는 지혜로운 제자가 되기를 조심스레 응원해 줍니다.
숫자로 사람을 재려는 세상에서도, 뜻이 닿지 않아 마음이 삐걱거려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민하는 시간은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서툰 위로라도 따뜻한 체온을 담으면 분명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어요. 그러니 아직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서툰 시도를 하나하나 해보는 과정이니까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소중한 누군가에게 편지 한 통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서툴고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꼭 근사한 말을 찾지 않아도, 그저 마음을 담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간다면, 그 편지가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따뜻한 체온처럼 남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가진 이 작은 용기가, 서로의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연한 사건에 나를 노출시키는 용기
두 번째 큐레이션 : 구본형《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자기혁명가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는 지금은 고인이 된 구본형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월간지에 연재했던 '구본형의 편지'를 정리해 엮은 유고집입니다. 이 책에는 각자 인생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민을 안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스펙 쌓기에 전념하느라 직업의 의미를 잃어버린 S, 결혼을 앞두고 망설이고 있는 J, 오늘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일에 매몰된 워커홀릭 M,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고 싶은 A….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고민했을 바로 그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아침에 일어나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뜻이 맞는 이들을 모아 글쓰기 커뮤니티도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새롭게 연극에까지 관심을 두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아주 열정적으로 자신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구본형 작가에게는 그 모습이 탐탁지 않았나 봅니다. ‘길 위에서의 열정’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크로아티아 여행기를 끝내야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잡다한 일들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제자에게 구본형 작가는 <잡다한 일로 꼭 하고픈 일을 못 하는 P>에게 라는 편지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내가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즉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때때로 살아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지만, 그것 때문에 내 내면의 규율과 북소리가 꺼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그런 것이다.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증
아마추어의 다양한 재미와 달콤한 유혹에 빠져, 프로만이 누릴 수 있는 고된 수련 뒤에 깊어지는 숙성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이 고개, 이 바위를 넘으면 더 나아갈 수 있고, 더 잘하게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이때부터 찾아오기 시작하는 훈련과 땀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저도 지금 딱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2년 차 서점으로서 일정 수준 자리매김은 했지만, 여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읽고, 더 제대로 읽어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점 문을 열기 위해 해내야 하는 다양한 업무와 과제들로 인해 독서에 시간을 더 할애하지 못하는 상황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펼쳐져 있는 잡다한 일들을 조금씩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던 시기였어요. 그런 마음에 구본형 작가는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기억해라. 신은 누구에게나 공헌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너를 잡다하게 써 낭비하지 마라. 너를 딱 맞는 네 일에 집중해 쓰도록 해라. 그리하여 오래 그 일을 배우고, 좋아하고, 이윽고 그 일로 먹고살고 즐길 수 있는 통달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증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너를 딱 맞는 네 일에 집중해 쓰도록 해라.’는 말에 다시 한번 밑줄을 그었습니다. 내게 딱 맞는 그 일을 찾는 것은 아마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관문 같은 질문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내 일, 내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구본형 작가는 『Y에게, 젊음은 미리 늙지 않는 것이다』라는 편지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젊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아주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라고 생각하네. 지나고 보니 인생은 결국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로 짜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져 기쁘기도 하고, 오래 준비하고 바라던 일이 무산되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삶에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지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건들이 곧 인생의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네.”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증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우연한 사건들’ 속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만남과 낯선 상황, 때로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동반한 경험들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과 진짜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안전한 틀 안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나의 다른 얼굴,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가능성들이, 우연이라는 이름의 바람을 타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살아내는 젊음’의 본질이 아닐까요. 젊음이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자신을 열고, 실패와 두려움을 감수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자세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이들을 향해 구본형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합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인생에 기여한다네. 너무도 쉽게 늙지 말게. 위대한 것이 그대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주와 공명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그 일’을 반드시 해내게.”
구본형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증
삶은 흘러가는 것이지만, 나를 어디에 어떻게 흘려보낼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력하게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흘려보낼 수 있다면, 삶은 단순히 소모되지 않고 빛을 내게 됩니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 분명히, 나와 세상이 꼭 맞물리는 지점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불안과 설렘을 품은 채 우리의 ‘딱 맞는 일’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길을 잃더라도, 그 모든 과정이 결국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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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의지로 선택하는 것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 당해지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죠.... 최근에 친구가 공들여 쌓아오던 것들을 의도치 않게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요. 친구들이 함께 응원하며 <평온의 기도>를 얘기해줘서 알게됐어요 [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받아 들일 수 있는 평온을 /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무언가를 놓아야한다는 건 그것으로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임을 깨닫는 오히려 저희에게는 귀한생각을 얻은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흘려보낼지는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오늘도 좋은 글, 좋은 책 감사합니다^^ 북로드맵에 오늘도 올려놔야겠어요 * 제철행복을 한장 한장 읽으면서 소중한 시간을 만들었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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